본문 바로가기
일기/비망록

20250308 - 기대치 & 배신감

by 스프링데일 2025. 3. 9.

나는 엄청나게 똑똑한 엘리트로 자라오거나 살아온 편은 아니었다.

인생의 진로는 언제나 계획을 세울 수 없는 불확실성의 덩어리였을 뿐이고, 누구나 힘든 일은 있었겠지만 내 인생에서 선택지 같은 것은 별로 없었다.  마치 공부를 잘하던 아이가 원하던 학교에는 붙지 못했지만 조금 떨어지는 몇개의 학교에는 합격해서 그 중에서 "선택"을 한다던지의 상황이 나에게는 없었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그냥 대학교를 못 가는 상황이어서 몇 년을 놀았고, 몇년 후 아무 곳들이나 지원을 했는데 이사는 엄두도 내지 못했기 때문에 갈 수 있는 유일한 집에서 가까운 학교를 갈 수 밖에 없었는데 그 학교가 그냥 꽤 좋은 학교였을 뿐이다.  뭔가 미래나 장래를 고려한 선택은 아니었다.  그래도 전공은 내가 원하는 정치학을 들어갔기 때문에 수업은 재미있게 들을 수 있었다.  경제학이나 컴싸를 했으면 좀 다른 길이 있었을까? 솔직히 별로 흥미가 있지도 않았다.

이건 학교만에 대한 얘기는 아니다.  미국에 이민을 온 것도 마찬가지였고, 알바를 시작하던 무렵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어려서 선택지가 없었을 수도 있었겠다고 지금으로서는 이해해보려고 하지만, 그래도 선택지가 없었다.  굶어 죽을 상황이라 어떻게든 시작한 알바는 그냥 말그대로 알바가 되었고, 좋은 인연을 만나 여기까지 살아왔지만.. 나에게 그 알바를 내 의지로 그만둔다거나 하는 선택지 같은 것들은 없었다.  물론 그것과는 별개로 사장님들께 지금도 감사하고 있다.

첫 취직도 마찬가지였다.  졸업을 앞두고 나는 더 이상 학생의 신분이 아니게 되었다.  그리고 처음 연락온 회사가 지금의 회사였다.  그래서 다른 선택지들과 "비교" 같은 것은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굶어죽지 않으려고 취직해버렸다.

결론적으로 지금까지는 굶어죽지 않고 잘 살고 있다.  중간 중간에 고마운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 어떤 때는 고마운지 몰랐지만 나중에 돌이켜보니 고마운 점이 많아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반성하고 조금이나마 그 사람들에게 보답하려는 행동도 할 수 있는 입장이 되었을 때 그 호의와 은혜를 잊지 않도록 노력하기도 해왔다.

취직한지 13년.. 나는 요즘 어떤 사람들에게는 성실하다, 업무 태도가 좋다, 성과가 좋다 등의 칭찬들도 많이 받지만, 그에 반해 적들도 많이 생겼다.  내가 싫어하는 적들은 열심히 안하는 사람들, 남들에게 책임을 넘기는 사람들, 핑계가 많은 사람들 등.  회사를 어느 정도 다니면서 사람을 보는 눈이 생겼다.  이 사람을 보는 눈은 무언가 도덕적/업무적인 객관적인 눈이 아닌 그저 나의 주관적인 눈으로, 내가 회사 생활을 하면서 잘 지내야할 사람, 잘 지내도 되지 않아도 되는 사람, 잘 지내면 안되는 사람들을 내 기준으로 나눴을 뿐이다.

조금씩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세운 내 방식은 내 스스로를 단단하게 해주었다.  물론 아직도 갈 길이 멀고, 나보다 오래다닌 분들 앞에서는 아직도 겸손해야겠지만, 적어도 나보다 오래다닌 분들은 나보다도 더 긴 시간 동안 스스로를 성찰하고 앞으로 나아갔음은 분명해 보인다.

입사 초기에는 나처럼 회사에 적응못한 친구들이 많았다.  "이건 내가 원하던 삶이 아니야," "이 회사에는 미래가 없어" 등.. 사원 1~2년차 하던애들이 뭘 알았을까? 나도 물론 그랬다.  어떤 친구들은 나가서 더 좋은 삶을 선택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나가서 좋은 삶을 꾸린 친구들은 거의 보지 못했다.  그들도 몰랐을 것이다.  더 좋은 대접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겠지.  물론 나도 몰랐다.  하지만 나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그리고 회사에서도 거의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았다.  물론 그 사이사이 고마운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에게 감사함을 표현할 줄 모르는 내 스스로의 거만함에도 문제가 있었다.

다만 나가지 않고 그저 버텼기 때문에, 나간 사람들과 "나가져 진" 사람들이 어느 정도 회사로부터 정리될 무렵 나에게도 기회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기회가 오기 전이나 후에도 나에게 달라지지 않은 것이 있다면, 나는 무엇이든 우선은 열심히했다는 것.  나는 내가 하는 열심히의 기준이 그렇게 높은지 몰랐다.  물론 나보다 더 열심히 하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겠지만.. 적어도 13년 동안 회사를 다녀보니 나는 열심히하는 쪽이었다는 것을 점점 실감해간다.  

그래서 열심히하지 않는 사람들과는 어느 순간부터 거리를 두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들의 회사 생활에 대한 불평이나 인생관에 대해 얘기를 들어도, 별로 귀기울이지 않았다.  아무리 다른 부분에 매력이 있거나 배울 점이 있어도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 거부감이 들곤 했다.  무언가를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들은 다른 일도 열심히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곧 믿음이 되었고 가치관이 되었다.

"나 정도면 열심히 하지" 라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냥 업무를 포함한 인생의 전반적인 일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이 사람이 어느 정도 필사적으로 스스로를 단련하는지, 다른 것이나 타인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인지 보여서 그냥 실망해버렸을 뿐.

더군다나 열심히하는줄 알았던 사람의 그렇지 않은 면을 보았을 때는 사람을 잘못 보았다는 자책감이 들고, 나의 방식, 내가 생각하는 "열심히"의 기준 등이 그렇게 정확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도 생겼다.

나는 최근에 어떤 사람에게 큰 실망을 했다.  그 사람은 열심히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하지만 무언가가 내 마음을 계속 걸리게 했고, 결국 내 마음 속에서 그 사람은 열심히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아버렸다.  같은 목적을 향해가는줄 알았기 때문에 내 입장에서는 그 사람에게 조금 더 호의를 베풀거나 하는 것들이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이 열심히 해서 우리가 회사에서 갖고 있는 공통적인 목표를 잘 달성할 수 있기를 바랬다.  내가 그렇게 도와줄 수 있는 입장이었으니깐.

하지만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결론이 내려진 이상 이제 또 다른 길을 찾아가야겠다.  그 사람은 원래부터 그랬던 사람인 것이고, 나는 그저 헛된 믿음과 기대치를 가질뻔 했다는 것.  지금이라도 되돌릴 수 밖에 없다.

그저 나는 또 나의 일을 해나가야겠다.
그리고 정말 괜찮은 사람들을 또 찾아나가야겠다.

그 사람은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사람의 그렇지 않았던 모습이 그 사람의 본 모습인줄 알았기 때문에 조금 더 기대를 했을 뿐이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것 같다.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에 그저 열심히할 수 밖에 없었던 내 입장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

누군가는 나를 어려운 사람, 불편한 사람으로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상관 없다.

그렇게 보지 않은 사람들과는 잘 지내고 있으니깐.

단지 나이 먹어가는게 좀 속상하다ㅋㅋ

'일기 > 비망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50321 - GDC / 엄마의 생일  (0) 2025.03.22
20250222 - Bicentennial Man  (0) 2025.02.23
20250105  (2) 2025.01.10
20241224  (2) 2024.12.25
20241126 - 환상의커플  (0) 2024.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