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엄마의 생일이 다가왔다.
먼 곳에서 동생과 제수씨가 찾아왔고, 제수씨는 일 년만에 보는 것이었는데 많은 이야기를 나누진 않았지만 오랜만에 보는 느낌이 아니어서 반가우면서도 어색하지 않았다. 사실 제수씨를 일년만에 봤다는 사실이 별로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로 엄마의 작년 생일와 올해 생일사이의 일년이라는 시간이 너무나 빠르게 흘러간 것 같아, 앞으로는 더 시간이 빠를 것이라는 어떤 기대감? 예상감 같은 것들이 있다. 기대는 되지 않는다, 다만 시간이 점점 빠르게 흐르고 줄어들 것 같아 조금 두려울 뿐이다.
무엇이 두려울까?
세상에 널린 수 많은 재밌는 것들을 어느 순간 못하게 될까봐?
어느 순간 내가 아무런 목적없이 그저 삶을 살아갈까봐?
어느 순간 내가 아무 의미없는 사람이 될까봐?
내 주변의 소중한 것들이 점점 사라질까봐?
나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심심할까봐 걱정은 된다.
엄마는 올해 66번째 생일이었다.
언제까지 건강할 수 있을까?
나는 너무 오랫동안 말을 안들었고 엄마 속을 많이 썩였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엄마와 둘이서 사는 생활 - 평소에 대화는 많이 안하지만 - 속에서 엄마가 경제적으로 어려움 없이 사는 모습에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다. 어차피 가족을 버린 아빠가 엄마를 챙기지 않는다면 그건 내 일이 맞을 것이고, 딱히 엄마를 챙긴다고 내 삶에 지장이 있는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현재의 삶에 만족한다. 엄밀히 말하면 내가 엄마를 챙기는 것도 아니고, 그저 우리는 한 집에서 같이 살 뿐이다.
그렇게 올 한해도 엄마의 생일이 지나간다. 나는 조금은 더 빨리 찾아올 지도 모르는 내년의 엄마의 생일이 두렵다. 사람들은 다 나이를 먹어가는거겠지, 나도 그럴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나는 누구와 연결되어있을까?
살다보니 나의 인간관계는 넓지않다고 생각했고, 깊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현재까지는 넓고 깊은 편들이 많았던 것 같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인간관계의 홍수 속에서 늘 도망치는, 누군가의 말에 의하면 AT필드가 존재한다고 한다. 그런 마음의 벽을 통해 타인과의 거리를 둠으로써 스스로를 지키려는 어떤 의지. 이런 성격은 선천적인 걸수도, 아니면 후천적으로 격변했던 환경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려는 방법 중 가장 쉬운 녀석으로 골라 어느 순간 터득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고마운 사람들이 많고, 소중한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첫 번째는 될 수 없을 것이다.
당연한 것이다. 나도 그들을 나의 첫 번째로 하지는 못하니깐
그저 엄마의 생일이, 엄마가 건강하게 지금까지 지내와준 것만으로 기쁘면서도, 앞으로 이런 날들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렇긴 하지만.. 이러다가 엄마가 한 90살~100살까지 건강하게 산다면 그건 그거대로 기쁠 것 같다.
그때 쯤 내 인생은 어떻게 변해있을까?
최근 일년을 돌아보면 한국을 두번 다녀왔었고.. 그 외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친구 하나를 잃은 일, 그리고 가장 최근.. 이번 주에는 GDC 행사가 있었다. 일주일 내내 모르는 사람들,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들이 있었다. 나는 체력이 약한 편이라 쉽게 피곤해진다. 술을 먹으면 눕고 싶고 그냥 자고 싶다... 이번 주는 술도 너무 많이 마셨다.
"현자는 우자를 경멸하지 않는다. 경멸은 항상 그 반대방향으로 작용하지." - 락토 빌파
언젠가 눈을 마시는 새에서 봤던 인상 깊은 문구. GDC에선 요즘 그 책을 게임으로 만들고 있는 크래프톤의 사람과도 인사할 기회가 있었다. 책 얘기는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회사에 남아서 나와 잘 지내는 어른들. 그 때쯤엔 나와 비슷한 직급이었던 그 형들과 누나들은 파트장이나 그룹장, 임원등 다른 사람들의 사정까지 책임져야하는 높은 자리에 있었다. 물론 그렇게 되지 않은 분들도 있지만, 누구나 그런 입장이 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기에, 저마다의 사정과 목표 속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간 것이리라.
그런 분들은.. 다들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어린 시절의 내가 봐도 똑똑해보였다. 학벌이나 껍데기가 좋은 사람들은 회사 내외부적으로 어디나 있었지만, 그리고 내가 모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어린 시절의 나를 왠지 모르게 나를 귀여워해주고, 내가 까불어도 화내지 않고 나에게 잘 가르쳐주었다. 그래서일까? 내 생각에 나보다 많이 똑똑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내가 조금 이상한 (이것도 좀 주관적인 기준이지만) 행동을 하더라도 그대로 바라봐주고 기다려주었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그런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고, 내가 보기에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보이는 나의 동생들이나 후배들과도 잘 지내고 싶다. 아직 그런 사람을 발견하진 못한 것 같지만...
십년 전쯤 두 명의 친구는 각각 비슷한 취지의 충고를 해주었었는데 내가 어떤 "완벽주의" 같은 것을 추구하는 성향이 보인다고 했다. 사람은 단 누구도 완벽한 사람이 없는데, 그렇게 추구하며 사는 것은 타인도 피곤하게 하지만 무엇보다 본인이 제일 피곤할 것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개인적인 관계라면 얼마든지 나는 관대해질 수 있다. 하지만 업무에서라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세상은 모르는 것 투성이다.
Company는 밥을 함께 나눠먹는 것이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함께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은 함께 일을하고 돈을 벌어 각자 밥을 나눠먹는 것이다.
회사는 그 특성상 여러 사람이 함께하기 때문에 조직력이라는 것이 필요해지고, 그 조직력을 강화하기 위해 여러가지 제도를 도입하며 직급 등을 두어 인력을 포함한 자원들을 차등 관리한다. 여러명을 관리하는 직원은 말 그대로 다 함께 더 많은 밥을 나눠먹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그렇지만 직급의 유무를 떠나서, 높은 사람이든 낮은 사람이든 이렇게 함께 밥을 지어먹는데에 뭔가 기여한다는 인식을 동료들에게 인식해줘야할 것이다.
목요일에는 내 상사, 내 상사의 상사, 내 상사의 상사의 상사의 상사를 포함한 꽤 높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내가 하는 일의 의미와 중요성을 설명하는 자리가 있었다. 이 발표 준비를 위해 3주가 걸렸고, 첫 2주동안 친구 하나를 잃어버렸다. 그렇지만 이것도 결국은 내가 결론내리고 나아가기로 한 길. 부사장, 전무, 상무 두명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의 가치를 증명해야했다. 잘 했을까? 나는 이 사람들을 보며 느끼는 것이.. 나는 아직도 멀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승진하자마자 들어온 첫 임무였는데 너무나도 벅찼다. 다른 사람들도 처음 이 직급이 되었을 때 이런 마음을 가졌을까?
다른 분들에게 여쭤봤을 때는 보통 쉬워진다고 하시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난 쉬워보이지가 않았고, 갑자기 너무 빨리 승진한건가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는데.. (사실 타인들과 비교해보면 평균적인 속도일 뿐이긴 하다) 아직 한달도 안 되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앞으로도 더 나아가야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내가 나아가기 위해서는 내 동료들이 잘되어야하고, 내 상사가 잘 되어야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 상무님이 사장님까지 하셨으면 좋겠는데... 라면 트럭을 하고 싶으시다고 한다. 만약에라도 내가 언젠가 상무의 입장에서 여러가지를 경험해보는 날이 생긴다면 나도 그런 꿈을 꾸게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언젠가 상무님이 말씀하신 그 이야기에 대한 가치 판단은 우선 보류해두기로 한다.
목요일 저녁에는 오랜만에 유흥의 날이었다. GDC에서 만난 유명한 사람들과 함께 술자리를 하고, 샌프란 다운타운에서 웨이모를 타며 공각기동대의 세계를 느끼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리고 회사 선배에게 내가 전혀 모르던 많은 것들을 배웠다. 여자를 여자로 봐야하는데 그저 동등한 사람으로 보이기 때문에 아무리 예뻐도, 여자라고 해서 특별히 잘 대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그저 친구처럼 대하고 싶을 뿐이다. 어디서부터 비뚤어진걸까ㅋㅋㅋ
아무튼 다들 사정이 있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나이들어가며 혼자인 것도
엄마가 나이들어가면서 점점 나이들어가는 소리를 하는 것도
이번 GDC 동안 팀의 다른 분들도 각자 모두를 위해 여러가지 일들을 해내셨다.
올 한해도 여러가지 발전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조금 더 겸손해지면서 앞을 향해 나아가자.
내가 믿는 사람들이 나를 필요로 한다면, 조건없이 그들을 도와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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