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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비망록

20240212 - Supercycle

by 스프링데일 2024. 2. 12.

취직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로빈후드라는 주식 거래 서비스를 알게 되었다.  당시에는 아이폰 용으로만 나와서 안드로이드를 쓰던 나는 조금 더 기다려야 했고, 그거랑 상관없이 학자금 갚을 것이 많았기 때문에 주식거래는 먼 미래의 이야기 같이 느껴졌었다.

내가 그 전에 해본 주식거래는 더 몇 년전의 경제학 수업에서 진행했던 모의거래 프로젝트.  나는 그 때 무엇이 진심이었는지 열심히 했었고, 수업에서 1등을 한 적이 있었다.  모의 거래 = 내 돈 아님 = 책임 없음.  당시엔 아무런 배경 지식도, 시장에 대한 정보도 잘 몰랐기 때문에 그저 한국과 미국 경제 뉴스들을 읽으며 대충 그럴듯 해 보이는 데다가 넣었다 뺐다 하는 식으로 (나중에는 그게 데이트레이딩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어떻게든 진행을 했었고, 그 당시만 해도 로빈후드 같은 거래하기 편한, 그리고 수수료가 없는 서비스는 없었기 때문에 많은 제약들이 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나는 그 때 가상이지만 돈을 번 적이 있었다.

그 후 몇 년이 지나 학자금을 다 갚았고 안드로이드 로빈후드가 나왔다.  별 배경지식이 없는 채 이것 저것 사보았다.  그저 데이트레이딩을 하면 된다는 생각에 레버리지가 걸린 ETF들도 아무렇게나 샀다.  아마 내가 좋아하는 회사들도 아무렇게나 샀던 것 같다.

초반에는 돈을 조금 버는 것 같았다.  자신감이 생겼고, 조금 더 공격적인 자세로 리밋도 걸고 옵션들도 넣어가며 해봤지만, 잔고는 금새 마이너스를 향해 갔다.  그리고 +10% 정도를 얼마간 유지하던 포트폴리오가 내려가기 시작하자 지레 겁 먹고 마이너스 몇 퍼센트에선가 모든 돈과 내려간 자신감을 빼버렸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다.

로빈후드에서는 그 사이 몇 가지 API들을 공개했고, 이제는 클라이언트 없이 API콜로만 거래가 가능해졌다.  나는 이제 나만의 인공지능을 만들기로 했다.  몇 가지의 봇들을 만들고 각기 다른 유명한 로직들을 내 방식으로 조금씩 “개량“ 해서 과거 거래 데이터들을 기반으로 수익률을 계산해본다.  물론 당일 거래량이 제일 많은 종목들을 찾아 따라가는 봇도 한 마리 후보에 넣는다.  그리고 제일 좋은 수익률을 보여준 녀석의 로직에 따라 거래를 진행한다.  로직 체크와 거래 판단은 매 5분마다 한다.  (API값들이 5분 단위로 갱신 되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32.47% 를 잃었다.  알고리즘 트레이딩도 복잡해봐야 의미가 없다.  복잡하고, 더 많은 로직을 넣는다고 수익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여기서 알게된 것은,

1) 과거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2) 주식 전문가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들이 전문가라면 돈을 벌고 싶을 것이고, 그들이 벌어야될 돈을 왠만해서는 남들과 나누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정보를 공유하는 것도 귀찮겠지만, 사실 투자를 한 다는 것 자체가 수익을 극대화 하겠다는 것인데, 남들과 나눈다는 말 자체가 모순이다.  자기가 벌어서 나눠주면 나눠줬지.  아니면 자기가 더 벌기 위해 가격을 올리기 위한 것.
3) 주식 전문가들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투자로 번 수익보다, 비결 등을 공유한다고 만든 책이나 비디오로 번 수익이 많을 것이다.  이게 주식 전문가들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4) 따라서 주식 전문가들의 말을 들을 필요는 없다.
5) 물론 투자은행이나 증권회사들이 발행하는 공동 펀드 등은 의미가 있다.  3번과 목적 자체가 다르므로 (=리스크를 나눈다)
5) 우리가 주식 투자 시에 미리 습득해야할 정보는, 주식 종목 추천이 아니라, 시장 상황을 보다 객관적으로 분석해서 알려주는 간접 정보일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 종목 및 회사는 직접 고르면 된다.
6) 5번이 어렵다면 ETF를 사면 된다.  ETF 자체가 리스크를 분산하면서도 같이 수익을 나누기 위한 것.  똑똑한 애들이 결국 (수수료가 아닌, 수수료는 보통 걔들 회사로 간다) 자기들 월급 벌기 위해서 이미 열심히 고민했을 것이다.

대충 이런 결론들을 내리고 난 후, 나는 신문 기사들을 꾸준히 읽긴 했던 것 같다.

나는 저 -32% 정도의 수익률을 가진 채로 몇년을 보냈다.  그리고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드디어 시작될 기미가 보인 것 같아 내 돈을 조금 더 넣고 - 현재 기준에서는 결과적으로 저평가되었던 것으로 보이던 시점에 - 반도체 관련 ETF를 더 샀다.

그리고 근 8년만에 본전을 찍고, 초반의 +10% 수익률까지 왔다

하.. 큰돈은 아니었지만 긴 시간이었다.
덕분에 저축한 것과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올해 상반기까지만 하고 조금 쉬어야겠다
하 시발 힘들었다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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