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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비망록

20230918 - 디딤돌

by 스프링데일 2023. 9. 19.


주말에는 동생의 결혼식이 있었다.

먼 곳에서 가족들의 아무런 도움없이 홀로 해내어나간 준현이, 2010년쯤 LA를 간 뒤 거기서 자신의 모든 터전을 일군 LA 교포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 녀석의 결혼식에 참석한 수 많은 멋진 친구들을 보며 역시 내 동생이 자랑스러웠다.  사실 형으로서 해준 것은 없다.  그렇지만 이 녀석이 잘 되어가고 있는 것을 보면 해준 것은 없지만서도 안심이 된다.

나는 사실 준현이가 어떻게 살아오고 있는지는 잘 모른다.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친구들과 어떤 이야기를 하고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이제는 제수씨가 된 분과 어떻게 생활을 일구어 나가는지.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녀석이 부럽다.  친구들과 함께 미래를 그려나가던 녀석은 훌쩍 커버려 어엿한 어른이 되어있었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내가 모르는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을 것이다.  한편으로 생각해본다, 내가 동생이고 이 녀석이 형이었으면 어땠을까?

물론 나는 내 잘난 맛에 살기 때문에 내가 딱히 준현이보다 모자라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렇지만, 나도 미국에 살면서 너무 힘들었다.  4월에 만났던 초등학교 때의 나를 기억하던 친구들을 보면 나는 분명히 준현이와 같은 모습이 있었던 것 같은데 어디서부터 어긋난 것일까?  아니면 원래 그런 성향이 나에게 있었던 걸까?  준현이는 포용력이 뛰어난 것 같은데 나는 병신같은 것들을 싫어했기 때문에, 만약에 어떤 병신같은 주변인이 자신이 병신이라고 인정하지 않은 채 타인을 병신으로 매도하면 용납할 수 없었다.  거기서 벌어진 차이일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포용력이나 참을성 같은게 없었다.

20년도 넘은 뒤 만났던 한국의 친구는 나에 대해 이런 얘기를 해줬었다.  "너는 애들을 조종하는 것 같은 성향이 있었던 것 같은데, 나쁜 의도는 없는 것 같고 다 같이 잘되게 해주려 그러는 것 같았어. 그래서 나는 너가 정말 신기했어."  왠지 맞는 말 같았고, 나에게 그런 모습이 있었던 것을 알아준 예전의 친구가 고마웠다.  나는 반대로 그 친구에게 배울 점이 있었기 때문에.. 그냥 이민을 오지 않았다면 내가 걸어갔을 다른 길을 상상하며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다.

몇 년만에 아빠를 다시 봤다.  아마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다.  아직도 자신의 잘못을 모르는 것 같다.  아무런 힘이 없던 사춘기 시절의 나에게 가했던 무자비했던 폭력은 여전히 뻔뻔하게 기억하지 못한 채, 나와의 관계개선을 요구한다.  그렇지만 나는 이제 더 이상 아빠를 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원래 어릴 적에 엄마보다 아빠를 더 좋아했었다.  열심히 일하는 아빠는 멋있었고, 나한테 별로 뭘 대단한걸 해준 것은 없었지만 아빠는 꽤 사회적으로 인정받던 사람이었고 나는 그런 아빠를 우러러보긴 했었다.  단지 우리집은 원래부터 가난했기 때문에 남들보다 가진 것은 없었지만, 우리집보다 잘 사는 다른 친구들이 부러웠던 적은 있어도 그들의 아빠들이 내 아빠보다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리고 중학교 때 부터, 아빠는 이유없이 나를 가둬놓고 패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폭력에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이유는 없었다.  아마 사춘기가 시작된 나를 잡으려고 했던걸까? 지금도 그 의도는 모르겠다.  나는 점점 움츠러들었고, 그 폭력은 미국에 이민오고 나서도 계속 되다가 어느 날 내가 집에 경찰을 부르고 나서 진정되었다.  (사실 나는 한국에 살 때는 부모가 체벌을 가한다고 경찰을 부르는 것이 문화 차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었기 때문에, 점점 그렇게 되는 나를 보며, 아니 그런 상황에 빠져가는 스스로를 보며 속상했었다.)  친구 관계도 힘들었고, 모든 것이 힘들었던 것 같다.  한편 아빠는 준현이에게는 잘해줬다.  최신식 컴퓨터를 사줬고, 대학교에 갈수 있게 (얼마 돈은 없었지만) 돈을 알아봐주기도 했다.  나에게는 어떤 캠프를 보낸다고 지역 한인신문에 김성현이라는 학생이 돈이 없어서 힘들고 불쌍하다 라며 예민한 나를 더 힘들게 했다.  그 의도는 잘 모르겠다.  아마 약간의 책임감 같은 것들은 있었던 것 같은데, 나는 아빠로 인해 얻은 것들 - 미국 생활 도 포함하여 - 한 번도 내가 원한 적이 없었던 것들이고, 내 의지는 없었다.

한국에 갈 때마다 성희 삼촌은 꾸준히 만났다.  성희 삼촌은 한심한 삶을 살아온 것 같긴 하지만 본성은 착하고 친절한 사람이고 사실 똑똑한 사람인 것 같다.  그런데, 성희 삼촌도 고등학교 시절부터 아빠한테 맞았다는 것 같다.  삼촌의 그런 반골 정신은 아마도 그런 부조리함에서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아빠의 폭력성이 어디서 온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삼촌이 그렇게 된 것에도 아마 기여는 했을 것이다.  그리고 김마로가 나처럼 그렇게 된 것도 - 아빠의 잘못은 아니고 삼촌의 잘못이지만 - 간접적으로는 아빠의 잘못도 있을 것이다.  나는 김마로를 사랑하고 아껴주고 싶지만, 김마로는 주변인들을 너무 힘들게 한다.  내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마 내가 오히려 그런 사람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주변에 어떤 위해를 가할 것 같으면 - 사실 위해를 가한다고 말하는 걸 수도 있지만 오히려 내가 까불다가 위해를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 더 많았지만 - 일부러 상황을 극단적으로 몰아가고 그 상황에서 빠져나오고 단절해버렸던 적이 많았다.  내가 삼촌을 꾸준히 만났던 이유? 삼촌은 - 아빠와의 관계는 잘 모르겠지만 - 나에게 보여준 친절함이 있었고, 왠지 모르게 동질감도 있었다.  그래서 삼촌과의 대화 속에서 늘 답을 찾으려고 했었다.

아빠가 성희 삼촌을 아끼지 않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 자기 기준에는 - 병신같은 동생이었을텐데도 집을 산다고 했을 때 없는 돈을 마련해서 - 고모들 힘까지 빌려 - 도와줄 정도였으니깐.  그렇지만 삼촌이나 나는 그런 것을 아빠에게 바란 적이 없었다.  나는 고등학교 때 준현이 허벅지를 한번 깐 적이 있는데, 준현이가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지는 지금도 자신은 없다.  고맙다고 말해주지만, 나는 사실 이제는 준현이한테 맞을까봐 걱정해야될 처지일 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삼촌이 했던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ㅋㅋㅋ

내가 결혼하기 싫은 이유는, 아빠의 마음이나 상황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순간이 올까봐..그리고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내가 나의 아내나 자식에게 그럴까봐.. 그것이 두려워서 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절대 아빠처럼은 되지 않을 자신은 있다.  나는 아빠를 닮긴 했지만, 아빠에게는 없는 엄마의 모습도 닮았으므로.

어차피 누구 탓을 하랴.  나는 그저 내 인생을 살 뿐이다.  

엄마도 엄마의 사정이 있었겠지만 최소한 엄마는 정신을 빨리 차렸다.  그리고, 이제 엄마 옆에는 나밖에 없다.  내 옆에 엄마밖에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의 일기는 아빠에 대해서 쓰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준현이의 결혼식을 다녀와서 자아성찰을 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내 동생은 너무 자랑스럽다.  앞으로도 잘 됐으면 좋겠고, 내가 해줄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도와주고 싶다.  내 도움이 필요할 것 같지도 않지만...

저번 주에는 한국에서 출장자 분들이 오셔서 많이 바빴다.  일정은 생산적이었지만 몸이 많이 피곤했던 것 같다.  몇 년전부터 나에게 아무 이유 없이 친절했던 어떤 상무님이 있었다.  나는 이 분에게 도움드린 것들이 없었는데, 내가 어떻게든 도움이 되려고 했던 사람들은 나를 괴롭혔지만 - 아마 내 방식에도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 이 분은 늘 나에게 용기를 주셨다.  그래서 나에게 같이 하자고 말씀 주셨을 때 무조건 도와드린다고 말씀드렸다.  그게 올해 초.  출장자 분들과 워크샵이 끝나고, 회사 로비에서 그분들을 배웅해 드렸다.  그리고 상무님과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왔다.  나는 아직도 상무님이 어렵기 때문에 먼저 말을 잘 꺼내지는 못하고 어색해하고 있는데, 상무님께서는 갑자기 이렇게 말씀하셨다.  "워크샵 때문에 이번 주에 원래 하던 일들을 많이 못하고 피곤했죠? 고생 많았어요."  그 말을 듣고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닙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속으로 울고 있었다.  그 분께서 사장님이 되실 때까지, 아니 더 잘 되실 때까지 힘이 되어 드리고 싶다.  사실 생각해보면 나는 몇 년 전부터는 회사에서 고마운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또 한분의 상무님, 레이니 누나.

그리고 셋째 외삼촌도 이번 결혼식에서 나에게 그동안 수고했다는 말을 해주셨다.  외삼촌이 더 건강했으면 좋겠다.  내가 기억하던 외삼촌의 젊었던 모습.  그게 지금의 내 나이다.  한편 수연이 누나를 반년 만에 보고, 지순이를 처음 봤다.  아직 사춘기가 시작되기 조금 전이다.  나는 이 녀석에게 멋진 삼촌이 되고 싶다.  그냥 형이고 싶은데, 삼촌이겠지.  외삼촌이 그래줬던 것처럼, 나도 이 녀석에게 멋진 외삼촌 - 또는 오촌 아저씨 - 로 기억되고 싶다.

준현아, 너가 GOD의 어머님께를 틀었을 때 나는 흘러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어.  너는 결혼해서 이제 너의 삶을 시작해 나가지만, 여기까지 오기까지 정말 많은 역경과 고난이 있었을꺼야.  그걸 다 이겨낸 네가 너무나 자랑스럽고, 나에게 그런 멋진 동생이 되어줘서 너무나 고마워.  언제나 널 응원해.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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