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연못
개구리 뛰어드는
물보라 소리
동양문학은 어릴 때부터 꾸준히 읽어왔긴 했지만, 그래봐야 중학생 수준의 것들 이후로는 특별한 목적없이 아무 책이나 읽었던 것같다. 이를테면 "고등학생 권장도서, " "대학생 필독도서" 같은 편집된 목록들이 있었겠지만, 미국에 온 이후로는 학교에서 권장되는 약간의 책들을 읽었고, 개중에는 "호밀밭의 파수꾼" 이나 "세일즈맨의 죽음, " "위대한개츠비" 등의 미국적 가치관이 담긴 재미있는 녀석들도 있었다. 진취적인 방향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던 것같고, 끝에는 허망함이 있었다. Sweet Thursday 같은 책들도 있었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걔도 허망했던 것 같다. 한편, 한국의 책들은 주로 환상문학을 읽었는데, 내가 읽었던 녀석들이 그래도 무언가의 목적의식을 내포했던 녀석들이라 다행이었다.
문제는 일본에서 건너온 라이트노벨이라는 녀석들인데.. 이 책들이 가치가 없다는건 아니지만 장르의 이름값을 하듯 가벼운 소설이었기에, 재미는 있었지만. 작품의 주제를 해석하는건 온전히 내 몫이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들을 보고 배울점은 많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스스로에게 질문을 내릴수 있다는 점에서는 꽤 의미있는 정신적 사유의 시간을 제공해줬는지도 모른다. 다행히 수상작 몇개만 읽고, 라이트노벨의 세계는 더 깊이 들어가지는 않았다.
그 이후, 내가 다시 문학을 접했던 것은 대학교의 일본문학 시간이었다. 과거로부터 상대적으로 잘 보존되어와서 그랬겠지만, "마쿠라노소시," "헤이케모노가타리" 등의 책들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그 중에서 나와 감성적으로 맞는 것은 "마쿠라노소시" 였고, 그전부터 써오던 블로그와도 어느정도 스타일이 맞는 책이어서 탐독했던 기억이 있다. 벚꽃잎이 지는 모습, 지붕위에 쌓인 눈을 바라보며 남긴 세이 쇼나곤의 글들. 한국적이지는 않지만, 서양의 것보다는 조금은 익숙한 감성 속에서 글의 주제를 자연과 일상에서 발견하는 방법을 배웠던 것 같다.
처음 블로그를 쓸 때는 정말 초등학생의 글 같았고,
장편소설을 읽어가며 주제를 길게 풀어서 쓰게 됐다.
환상문학을 읽을 때는 글에 상상력을 더했고,
수필과 에세이를 읽을 때는 내 생각을 더했으며,
라이트노벨을 읽을 때는 만연체로 글을 썼었다.
한참 시간이 지나 한국에 갈 기회가 많아졌을 때, 교보문고에 가는 것은 매번 빼놓지 않았다. 한국의 수필과 소설들은 재미있는 부분들이 많았다. 일본과 다른 점이 있다면, 사물의 감성보다는 사람의 감성에 조금 더 집중된 느낌이었을까? 물론 수 많은 책들 중 그 편린의 일부만을 갖고 비교하는 것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한국의 책들은 조금 더 직설적이었던 것 같다.
아무튼, 교보문고의 느낌은 너무 좋았다. 주로 갔던 곳은 광화문과 논현이었는데, 책들의 냄새, 앉아서 책들을 읽는 아이들, 커피샵의 활기찬 사람들을 보며 나도 저들의 일부가 될 수 있었을텐데 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같은 나라에서 태어났는데 관찰자의 입장이 된 내 모습이 처량하게도 느껴졌고, 내가 태어난 나라가 내가 돌아갈 곳이 아니라는 것도 속상했다. 이곳의 언어는 나에게 가장 익숙한데, 이곳의 생활은 나의 것이 아니었다.
그 때 부터는 한국과 일본의 책들을 같이 읽었다. 음.. 한국과 일본의 책들도 미국 책들처럼 허망했다. 다만 그 허망함을 나타내는 느낌이 조금 달랐던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허망했다.
사람들은 왜 책을 쓸까? 자서전을 쓰는 사람들의 심리는 알 것 같다. "나를 좀 알아달라," "나를 기억해 달라" 는 스스로가 잊혀질 것 같은 두려움을 이기려고.. 아니면 "내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니깐 날 알아줘" 라는 목적의식을 갖고 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소설의 경우는 어떨까? 자서전과 비슷하긴 하지만 자서전보다는 간접적이다. 작가는 자신의 페르소나를 소설 속 어느 등장인물, 또는 등장인물들에게 나눠서 투영시키고, 말하고자 하는 바를 독자들에게 간접적으로 전달한다.
내가 싫었던건 자기계발서였다. 나름 남들에게 자랑할만한 것들을 가졌다는 사람들이 "내가 이렇게 잘났으니깐 돈내고 날 따라해봐라" 같은 말투로 쓰여진 책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들의 자기계발 방법이 싫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신의 방법이 틀리지 않았다고 남들에게 인정을 구걸하는 듯한 목적이 보여 꺼렸던 것 같다. 정말 잘났으면 굳이 그렇게 잘났다고 자신을 표현해야했을까? 그래서 나는 차라리 소설이 좋았다. 자신이 아닌 제 3자를 주제로 한 자기계발서라면 차라리 괜찮았다. 마키아벨리 찬양론이라던지, 성경이라던지.
사람들은 왜 글을 쓸까?
말로는 잘 표현되지 않는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글을 쓸 당시의 자신의 상태를 기록하기 위해서. 예전에 읽었던 어떤 역사 연구 방법론 중에, 어느 시점에 출판된 책이나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작자의 의도만을 파악하는 방법과 제작자가 살아온 환경과 배경을 파악해서 해석하라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전자의 경우는 꽤 주관적인 해석이 나올 것이고, 후자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객관성을 가지는 해석이 나오겠지만, 그 객관도 한두개가 아니라서 마치 교회가 여러 종파로 나뉘어지는 느낌.
잘 모르겠다. 사실 알 필요도 없다.
글을 쓴다는건 그냥 말을 하는 것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답답하니깐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 단지 말이 아닌 글이라는 것.
어제 유튜브에서 재밌는걸 봤다. 40대 아줌마가 30대 초반에 글쓰기에 소질이 있는 줄 알고 끄적대다가 시간을 낭비했다고 한다. 그걸 보고 조금은 정신은 차린 것 같다. 나도 이미 알고 있어서 글쓰기는 그냥 취미로 했을 뿐인데, 잠깐 이상한 바람이 들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활자를 조금 더 자주 접하다보면 다시 예전처럼 글빨이 올라올지도 모르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이런 스타일의 글을 쓰는 것은 지금의 내 상태를 반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머리가 조금 나빠진 것 같다.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할까.
뇌를 연마한다는 개념은 너무 낯설다.
일단 지금 할 일을 하자.
허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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