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 3일의 휴가를 냈다. 한 회사를 오래 다녀서 좋은 점 하나는 휴가가 빨리 쌓인다는 것이긴 한데, 요즘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 코로나의 영향도 있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휴가에 얽매이지 않았다. 출퇴근도 자유로웠으며, 어차피 주 40시간 이상 회사에 있는 경우가 많고, 그게 딱히 타의로 한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휴가를 잘 사용하지는 않지만 휴가가 없어서 아쉬워하고 그런 적은 없는 것 같다.
입사 초반에는 이곳 저곳 여행을 많이 다녔었다. 심심하면 3주씩 휴가내고 어딘가로 사라지곤 했었고, VPN 덕분에 정기 보고 업무 등은 휴가 중에도 계속 했었다. 비행기에서, 달리는 신칸센과 KTX에서,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어느 호텔에서, 일과 휴가를 병행하는 삶이 있었고, 당시 나를 거쳐간 어떤 상사는 그걸 그렇게 좋게 보진 않았던 것 같다. 그 사람은 그냥 내가 마음에 안들었던 것 같다. 스타일이 별로 맞지 않았는지도. 사랑하는 바덴이 죽었는데 그걸 공감 못해주는 그 사람이 너무 미웠었다. 그렇지만 업무적으로는 대단한 사람인 것 같다.
# 여행
마지막으로 낸 휴가는 작년 말쯤 냈던 1주일 정도의 휴가. 당시 아무 것도 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던 나는 집에서 그냥 1주일을 꼴랑 낭비했고, 게임을 하고 집 앞을 걷고, 운전하면서 이곳 저곳 들러 사람을 만나고, 맛있는 걸 혼자 먹으러 다녔다. 그 때 누굴 만나고 있었나?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사실 마음이 너무 좋지 않아 낸 휴가였고, 계기는 여러 개가 있었기는 했지만 좌절이 가장 큰 원인이었던 것 같다. 뭔가 변화가 필요한 것 같은데 변하지 못하는 현실. 변화는 준비와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최근의 몇 개월은 이를 테면 변화의 과정 보다는 변화를 준비하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준비의 과정이 잘 진행되지 않는 것 같아 머릿속이 복잡해졌고, 캘리포니아 서부 해안 쪽의 시골 마을들을 몇 군데 찾았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예전이라면 그냥 장소를 정해놓고 무작정 갔을 텐데, 이번에는 왠지 겁이 많아져서 그 동네들의 crime rate 들을 찾기도 했다. 혼자서 어딜 가는게 조금 무서워진 것 같다.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거기서 없어져버릴까봐. 거기도 분명히 사람 사는 곳일텐데 겁이 많아졌다. 잃을게 생겼다는걸까? 예전의 나는 그렇지 않았는데.
덕분에 시간이 좀 자유로워진 나는 저번 주에 잠시나마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봤고,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봤고, 비슷한 상황에서 다른 방법으로 대처하는 사람들을 봤다. 오랜만의 정신적 에어로빅. 그곳에서는 창문을 열어놓고 잤다. 나무 격자로 만들어진 창문. 밤에는 고요했고 새벽에는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그곳에서는 잠을 잘 잤던 것 같다. 여기서보다 적은 시간으로 잔 것 같은데, 아. 일찍 자긴 했다. 그렇지만 엄청 일찍 일어났다. 6시쯤이면 눈이 떠졌고, 몸에는 피곤함이 느껴졌지만 어째서인지 정신적인 피곤함과는 조금 다른 것이었다. 수면의 질이 달랐던 걸까? 이곳에서의 수면은 스트레스가 좀더 동반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3번의 밤은 자도 자도 졸렸던 느낌이 없었다. 덕분에 너무나 행복했다.
돌아온 지금, 다시 자도 자도 졸리다.
그래서 나는 이 휴가를 일단 계속 쓰기로 했다.
내일은 백신 예약과 약속 3개를 잡았다.
# 변화
새로운 것을 하는 것보단, 지금 가진 것 중에 하나를 개선하는게 나을 듯.
막연히 남을 돕고 사회에 기여하는 건 괜찮을 것 같아 자원봉사를 하기로 했다. 아직 잘은 모르겠지만, 여기서 보람이나 삶의 의미를 조금은 찾았으면 좋겠다. 어차피 지금 뭘 당장 하려고 해도 거시적으로 변하는 건 없다. 그냥 조금씩 생각해 오던걸 해보자.
# 수레바퀴 아래서
한스 기벤라트는 나름 촉망받았지만 섬세함과 반항심 같은 걸 언제나 숨기고 다녔기 때문에 그걸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왔을 때 자살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언제나 죽고 싶다는 말을 하고다녔던 10여년 전 쯤의 내 자신이 생각난다. 내가 한스보다 덜 섬세해서 자살을 안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스는 정말 힘들었던 것 같다.
나는 내 과거의 삶을 한스의 삶에 거의 투영하다시피 했는데, 이 책이 유명한 책이라는 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들을 나의 그것과 비슷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던 걸까…
많은 사람들은 이걸 주입식 교육을 비판하는 책이라고 했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했다. 19세기 초반이나 전간기의 독일, 그리고 20세기 하반기의 동아시아는 온통 주입식 교육 세상이긴 했다. 그렇지만 단지 주입식 교육이 문제였을까? 내가 우울했던 것이 주입식 교육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혹자는 여기에 덧붙여서 입시위주의 교육이 문제라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입시든 주입식이든 결국은 본인들이 원해서 하는 것인데… 사회가 그걸 강요했더라도, 뭐가 그렇게 중요하단 말인가. 한스가 나약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아무도 한스가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았다. 그는 늘 스스로 생각하고 답을 내려야했지만, 그가 걷는 길에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그 철물점? 정육점? 아저씨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그가 외롭지 않기 위해서 접촉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늘 그에게 어떤 기대감이 있었고, 그들과 잘 지내려면 타인으로부터 기원한 페르소나를 쓸 수 밖에 없었던 것. 외로웠을 것이다. 엠마 썅년..
내가 주입식 교육을 받던, 훨씬 더 어린 시절에 읽었던 수레바퀴 아래서에서는 아무 것도 공감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입시마저 포기했을 때 읽었던 수레바퀴 아래서에서는… 입시라도 해봤던 한스가 부러웠던 기억이 난다.
일본애들은 한국애들 이상으로 헤르만 헤세를 좋아할 것 같다. 원래 엄청나게 독빠들이 많았고, 걔네들이 좋아하는 “성장형 인간” 에 대한 내용이 너무 많거든.. 데미안도 그랬고, 유리알 유희도 그랬다. 만화나 영화에는 거의 다 반영되어있는 것 같다.
# 타블렛
고민하던 타블렛을 드디어 사버렸다.
이걸 잘 쓸지 솔직히 잘 몰라서 사는 것을 계속 미루다가 할인 기간을 놓쳐버려 조금 더 많은 돈을 줘버리긴 했지만, 실제로 사고나니 지금까지 굉장히 잘 쓰고 있어서 안심했다. 열심히 노트를 적고, 공부를 하고, 피아노를 치고, 음악을 듣고, 방송을 듣고, 책을 읽고, 영상을 보고, 글을 쓰고 있다. 삼성에서 이번엔 정말 작정하고 만들었다는 느낌이 든다. 갤럭시 S8 이후로 이런 느낌은 오랜만인 것 같다. 리디북스도 너무 고맙다. 예전에는 알라딘에서 한번에 여러권씩 모아서 사곤 했었는데...책을 정말 더 많이 읽어야겠다.
언젠가 다시 나만의 페르소나를 만들고, 세이쇼나곤의 마쿠라노소시 같은걸 쓰고 싶다.
# 집중력
나는 집중력이 부족한 편인 것 같다. 옛날부터 그랬던 것 같고, 어린 시절에는 많이 집중 안해도 빠르게 파악이 가능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머릿속에 집어넣어야할 정보가 너무 많아져서 집중을 하지 않으면 힘들 때가 있는 것 같다.
# 이기심
나는 나밖에 모르는 사람이다.
하지만 나의 행복이 타인을 돕는 것에서 온다는 것이 다행이다.
남을 돕는게 즐거우니깐.
# 하드디스크
오랜만에 대대적으로 방청소를 하는데, 외장하드가 망가진 것 같다. 몇 년 전에도 이런일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진짜로 망가진 것 같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라는 계시인가 싶어서 그렇게 받아들이려고는 하는데… 추억이나 이런 것들이 좀 있어서 다 날리기가 조금 허망하다. 이젠 정말 클라우드로 넘어갈 때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