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후의 자기의 모습을 그려야 합니다. 아직 10년후의 자기 모습이 모호한 사람은 몇밤이고 진지하게 10년후의 청사진을 구워 내야만 합니다. 인생은 건물과 같아서 청사진이 확정되어야 비로소 주춧돌을 놓을 수 있습니다. 일단 10년 후의 자기 모습이 뚜렷이 나타난다면 두려움이나 수치심은 사라지고 용기와 자부심이 샘솟을 것입니다." - 박태준
당장 내일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우리들에게 있어서 미래라는 말은 비교적 생소한 개념이다. 어릴 때는 "나는 어른이 되어서 남들을 돕고 싶어," "나는 어른이 되면 이 나라를 대표하는 훌륭한 사람이 될거야,"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많은 공부를 하고 싶어" 등의 수십 년 후의 자신의 모습에 대해 막연한 상상을 가진다면, 중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는 "좋은 대학교에 가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자격증을 따서 나의 스펙을 올릴거야" 등의 조금은 구체적인 꿈을 꾸기도 한다. 그런 구체적인 꿈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또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어서 일자리를 잡아서 돈을 벌고 성공을 해야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릴거야" 등으로 좀 더 짧은 미래에 대한 기대감과 계획으로 귀결되고는 한다. 즉, 시간이 흐르고 현실의 벽에 부딪힐 수록 우리가 꿈꾸는 미래는 더 이상 수 십년 후의 미래가 아니라 수 년후, 수 개월 후, 짧게는 당장 내일의 꿈을 꾼다. "아 씨발, 내일은 뭐먹고 살지..."
꿈을 크게 갖는 것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이지 못한 꿈은 스스로에게 짐만 될 뿐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만약 미래에 대한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면, 그 계획이 제발 당신이 스스로에게 기대할 수 있는 노력과 능력, 여건에서 나올 수 있는 한계 내에서 가지도록 하자. 꿈을 크게 갖는 것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그 꿈이 당신이 이루지 못할 꿈이라면 애초부터 허황된 꿈을 꿔서는 안된다. 그것이야말로 허세이며 센척이고, 또한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는 셈이다. 물론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과거의 자신이 설정해 놓았던 꿈으로 길로 향할 수 없는 사정이 생겨 과거의 자신과 타협해야하는 상황들이 올 수는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잘못한 것이 아니다.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대해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깐. 다만 그렇다면 그렇게 된 시점부터는 좌절하지 않고 당신에게 바뀐 상황과 능력, 또는 노력에 기반하여 새로운 꿈을 구성하도록 하자.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꿈을 크게 가지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근거 없는 꿈을 꾸지 말자는 것이다.
존경하는 박태준 선생님, 중학생이었던 십 수년전의 제가 모모세 타다시씨의 자서전으로부터 당신의 존재를 알게되어 당신을 알아가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 근황
25년간 인생을 살면서 현재 최고의 순간을 맛보고 있다. 사실 언제 이런 행복이 깨질지 불안불안하고 위태위태하지만, 행복이 깨질 것을 걱정한다는 것만으로도 역설적으로 나는 지금 최고의 행복을 누리고 있다. 언제나 내가 동경하던 회사에 들어와서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또한 내가 그동안 공부해왔던 것들, 내가 경험해왔던 것들을 -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빼운 것 말고는 - 최대한 활용해서 이 회사에 도움이 되는 일들을 하고 있다. 물론 나 혼자의 개인적인 기여는 회사 전체의 입장에서 보면 미미한 것일 테지만 최소한 나는 나를 자신들의 일부로 만들어준 이 회사에 이익이 될지언정 누가 되고 싶지는 않다. 그들은 나를 뽑았고 나에게 기회를 주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한가지. 그들이 나를 선택한 것과 나에 대해 거는 기대감을 배신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행복은 처음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나 스스로에 대해 자랑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중학교 1학년 때 반에서 2등해본 것 말고는 처음이다. 나는 내 자신이 딱히 남들보다 앞서지도 않았고, 스스로의 능력에 대해서라면 어느 정도 자신했으나 그런 점들도 최고는 아니었으며, 주변 환경에 대해서 논하라고 한다면 최악에 가까웠다. 덕분에 나는 언제나 행복해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행복의 의미가 뭔지 모른 채. 그리고 현재의 내가 겪는 여유와 행복이라는 것은 내가 결국 스스로 정의한 것이다. 행복이라는 개념도 결국은 상대적이겠지만, 어쨌든 나는 행복하다. 현재 내가 속한 곳은 세계 최고의 직장이다.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가고 싶었던 곳들 중 가장 좋은 곳이며, 설령 좀 더 나은 대우를 해주고 좀 더 높은 명예를 가질 수 있어도 나는 이 곳에서 뼈를 묻고 싶을 정도이다. 나를 나로서 있게 해주고, 나의 능력과 노력을 최대한 현실화 시킬 수 있으니깐.
# Value Neutrality
물론 이는 거짓된 행복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세계 최고의 회사를 나의 소속으로 내걸고 내가 지금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좋은 상사들과 동료들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분명히 최고의 행복을 만끽한다고 수도 없이 쓰고 있지만 현실은 3개월짜리 계약직에 불과하다. 나의 직업적 기간에 대해 이견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처음부터 나는 이 조건을 알고 이 회사에 지원한 것이고, 내가 이렇게 이 회사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하게 될 줄은 계약 당시의 나는 몰랐으니깐. 즉 발생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대비책은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나에게 예고없이 찾아온 이런 좋은 환경들에 대해 반가워하면서도, 그것을 유지시키는 방법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 따라서 나는 현재 계속 그 행복을 유지시키는 방법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사실, 혼자서 고민한다고 뭐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열심히 하고, 또 내가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 회사에 대한 새로운 장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처럼, 회사에서도 입사 전의 나에게는 기대하지 않았을 새로운 장점들을 발전할 수 있게 스스로를 다잡아가는 것이다. # Lovepool - 이동훈
지금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인터넷 소설 작가. 러브풀, 실명은 이동훈. "그녀는 나레이터," "난 항상 악마를 만난다," "본드걸은 죽었다," "마법사 그녀," "동거녀에게 기대해선 안 될 두가지" 등 여러가지 감동과 재미가 곁들여진 인터넷 소설들을 웃긴대학이나 천리한 등지에 올려서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던 작가이며, 고등학교 시절 미국에 살던 나는 없는 용돈을 모아 해외배송으로 그의 책들을 사보곤 했다. 그가 쓴 글이 올라오기만을 매일 기다렸고, 당시 웃긴대학에는 러브풀 이외에도 칼이쓰마, 청산유수, 양띠숙녀 등 걸출한 인터넷 작가들이 많았으나 이상하게 나는 러브풀의 작품들에게 끌렸던 것 같다. 적응하지 못하는 해외 생활을 그의 소설들 속 주인공들에게 감정이입을 하며 현실도피를 하기도 했고,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던 그를 꼭 실제로 만나고 싶었다. 5년 동안 한국과 단절된 곳에서 생활을 하며 나에게 마음을 기댈 곳을 만들어준 사람은 두 명이었다. 노무현과 러브풀.
지금에서야 인터넷 소설 작가같은 것들이 꽤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만 (귀여니를 생각해보자), 당시에 인터넷 소설 작가라는 개념은 생소할 수도, 참신할 수도 있었다. 판타지 같은 서브컬쳐가 서서히 인정받기 시작할 때였으니깐. 나는 귀여니는 싫었지만 어떻게보면 비슷한 맥락의 인터넷 소설 작가라고 할 수 있는 러브풀에게는 많은 공감을 하였다. 그것은 아마도 러브풀의 이야기는 자신의 실화를 바탕으로한 진솔한 이야기들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더군다나 행복했다고는 말할 수 없는 인생을 살아간 그의 이야기들은 나로 하여름 많은 감정 이입을 하게 만들어 주었다.
러브풀과는 다른 이야기지만 최근에 어떤 일을 계기로 감정 이입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녀석의 이야기들은 내가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커서 한 번에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나 벅찼다. 조금씩 노력할 것이다. 조금씩 알아가려고, 감정을 이입하려고 하지만 그 녀석이 해준 그 녀석의 이야기들은 나로 하여금 무한한 슬픔을 느끼게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기에 나는 그 녀석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러브풀은 2007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죽기 전에도 웃긴대학에서 헌혈증을 지속적으로 모으기도 했지만 결국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일까.
언제나 늘 말미에 달던 Written by Lovepool을 끝으로 그는 이 세상을 떠났다. 저 글은 이제 이 세상의 존재하지 않는 사람의 흔적인 것이다. 언젠가는 내 블로그의 글들도 그렇게 되겠지. 그 글들이 유지되려면, 결국 내가 러브풀의 흔적을 기억하는 것처럼 내 글들 또한 누군가에게는 기억되는 그런 존재였으면 한다.
한 사람이 자신의 분야에서 최정점에 서는 것은 정말 힘든 것이다. 경쟁자가 많을 수록 그 정점에 도달하기는 힘들며, 하물며 프로게이머란 직업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리고 정상에 한 번 올랐던 사람이 내리막길을 걷다가 다시 한 번 그 정상에 올라가는 것은 얼마나 힘든 것일까?
아직 대학교 생활을 시작하기 전, 나는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받았다. 이제야 스타크래프트2나 리그 오브 레전드 등으로 여러가지 종목으로의 다양화가 이루어지고 잇는 이스포츠지만, 그 당시만해도 스타크래프트밖에 없었다. 나야 뭐, 비교적 그래도 늦게 팬질을 시작했다. 내가 좋아했던 선수들은 택신과 마막장(개새끼), 꼼딩, 그리고 수달. 특히 김택용을 너무 좋아한다. 하지만 이번의 주제는 박성준이다. 삼성준말고 박성준. 박지호와 POS에 있었으며 MBC게임에 갔다가 SKT T1,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STX Soul에서 스타1 선수로서 은퇴를 하였다. 처음 그는 붉은머리의 돼지로 주목을 받으며 당시 잘나가던 최연성을 말그대로 관광보내면서 등장했다. 홍진호도 못했던 저그 최초의 우승을 했고, 스타리그에서도 2회 우승을 거머쥐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그의 존재에 대해서 알 무렵 그는 당시 박태민과 함께 SKT T1에서 퇴물 취급을 받아가던 중이었다. 곰TV MSL 시즌 2에서 8강이 가장 높은 성적이었으려나.
하지만 그는 얼마후 STX로 이적했고, 올드게이머들은 상향평준화된 스타판에 적응하지 못할 것이라는 (이윤열이나 송병구 정도가 선방했을 뿐이다) 사람들에게 보란듯이 에버 스타리그 2008에서 도재욱을 상대로 3:0 셧아웃을 성공시키며 감동의 골든마우스를 획득하였다. 김택용만큼 박성준을 좋아한 것은 아니어서, 그가 겪은 우여곡절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그는 전설의 프로게이머들 중 한 명이다. 그는 나보다도 나이가 한 살 많은데, 당시 프로게이머 판에서는 이미 충분히 고령자에 속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피나는 노력으로 전성기때의 자신의 기량을 회복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였다. 뭐, 다전제에서 프로토스만 만나가며 우승한 것도 운이라면 운이지만, 그랬다면 사실 그건 그 당시 16강에 있던 다른 저그들에게도 적용되는 말일 것이다.
운빨을 받고 안받고를 떠나서, 그는 이미 정상을 한 번 경험한 사람이다. 그리고 나락까지 떨어진 경험이 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영광을 일시적으로나마 재현해 보였다. 당시 쓰레기같은 인생을 살던 나로서는 그의 우승이 좀 더 마음에 다가올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스타리그 우승자들은 늘 감동의 스토리들을 만들어내곤 했지만, 시기상 그 당시의 박성준은 그랬다. 내가 좋아하는 김택용이나 이윤열, 이영호가 아닌 투신 박성준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은 것은 신선하기도 했고, 그에게 고맙기도 했다. 어쩌면, 나는 내가 이룰 수 없는 인생의 목표를 그에게 감정이입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었지만, 나도 정상에 서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싶었으니깐.
# 갈림길 - Give and Take
러브풀과 박성준을 주제로 언젠가 글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오랜만에 블로그에 장문의 글을 지금의 시점에서야 쓰게 되는 계기는 어떤 후배 때문이다. 그 후배가 이 글을 읽고 자신의 이야기일거라 생각할거라는 보장은 없으니, 자유롭게 글을 써야겠다.
별 일은 아니다. 최근 나는 행복하면서도 외로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회사는 재밌고, 사람들도 좋다. 하지만 퇴근하고 집에 와서 아무도 나를 반겨주는 사람이 없을 때는 정말 외로웠다. 그래도 회사가 재밌으니 어떻게든 버텼지만, 문제는 외부적인 것이었다. 즉, 내가 어떻게 해결할 수도 없는 그런 문제들. 그런 일들이 나의 주변에서 일어났을 때, 나는 비로소 어디에도 하소연할 곳이 없다는 것을 실감했다. 언제나 내 옆에 있어주던 친구들에게는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고, 의미는 다르지만 적당히 얼굴만 아는 녀석들 앞에서도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분을 삭히며 투고해온 저녁 식사를 늦게나마 먹고 있었는데 그녀석이 불쑥 말을 걸었다. 그리고 나는 그 녀석을 믿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따위를 해버렸는지는 몰라도 모든 이야기들을 털어 놓아버렸다. 신기한 것은 그 녀석은 내 이야기들을 모두 들어주었다는 것. 그리고 그 녀석은 나에게 약간의 위로를 해주었을 뿐이지만, 나는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나의 처지와 심정을 이해받은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녀석에게 말했다. 반대의 상황이 되면 나를 찾아달라고.
그리고 그 녀석은 얼마 후 자신의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내 스스로도 나는 비교적 순탄하지 않은 인생을 살아왔다고 생각했기에 힘들고 우울한 일들은 얼마든지 이야기로 꺼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녀석이 꺼내는 그 녀석의 고민이나 경험들은 내가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커다란 것이었을까. 하지만 그런 것들을 떠나서 어쨌든 그 녀석은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에게 교감해주고 나를 이해해주려고 한 녀석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녀석한테 무섭다고 말해버렸다. 솔직히 무서운게 맞았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그렇게 도망가면 안됐을 것 같은데. 지금부터는 전부 내 상상이다. 하지만 내가 그 녀석의 입장이었고 만약 누군가가 그런 나에게 무섭다는 표현을 했으면 나는 그 사람에게 배신감을 느꼈을 것 같다. 그 녀석의 성격에 대해서 모두 아는 것이 아니니 추측만 할 뿐이고, 어쩌면 전혀 잊어버렸을 수 있지만 나는 그래서 그 녀석에게 할 말이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그리고 네가 날 이해해준 만큼이나 나도 널 이해해주고 싶었다는 말을. 너는 그 날 일시적으로 나를 구원해준 녀석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그 녀석과 나는 그렇게 가까운 관계는 아니다. 아마 잊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잊혀지더라도 언젠가 미래의 내가 예전의 글들을 그리워하며 뒤적이게 된다면 이 글을 발견하고 그 녀석을 기억하도록 하자. 그리고 솔직히 잊혀지고 싶지는 않다. 내가 그 녀석에게 받은 것은 하찮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녀석에게 내가 받은 그 하찮은 것 만큼의 반의 반도 돌려주지 못하고 상처를 준 것일 수도 있다. 직접 언급한다면 아마도 그 녀석은 "헤헤헤헤" 라며 넘어가겠지만, 확실한 것은 나는 나보다 어두워 보이는 사람은 오랜만에 본 것 같다. 사람을 잘못 봤으면 좋았을텐데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지만 이제는 도망가려고 하지 않겠다. 단지 나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서. 따라서, 이미 내가 늦었다고 하더라도 후회하지도 않겠다. 이미 늦었다면 그건 내 잘못이 맞다.
# 근미래 - 21days
세계 최고의 회사에서 일한지 벌써 두달이 넘었다. 그리고 이는 계약기간이 한 달이 채 안남았다는 뜻. 아, 글을 쓰면서도 불안함이 엄습해오는건 사실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일은 정말 성실하게, 그리고 열심히 했다. 버클리를 다니는 동안에는 수업을 간 시간보다 안 간 시간이 월등하게 많고, 밥을 먹은 시간보다 술을 먹은 시간이 많을테지만, 어쨌든 한 학기 정도 우울하게 똥줄타게 인생에 대해 걱정하며 살아서 그런지 지금은 꽤나 부지런해져 버린 상태다. 수동태로 쓰는 이유는 내가 스스로의 문제점을 발견해서 고치기도 전에 이미 무언가 외부적인 요소로 인해서 내 자신이 바뀌어 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이 곳이 좋다. 사람들도 좋고, 내가 맡은 일도 좋고, 환경도 좋고, 무엇보다도 회사가 좋다. 나의 능력, 나의 경험들을 최대한 활용하면서도 정체되지 않고 앞으로 나갈 수 있게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근무 환경을 제공하는 이 회사를 나는 너무도 사랑한다. 하지만 이 행복이 계속 이어질 지는 3주 후면 알게 될 것이다. 덕분에 지금은 살짝 마음을 졸이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적어도 내가 이 곳에 있는 동안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할 것이다. 여유가 없어도 좋으니, 내가 해야하는 일, 할 수 있는 일은 언제든지 할 것이다.
# 원미래 - 10years after
얼마전에 후배와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온 말. 나는 내 가치관이나 장래희망, 꿈에 대해서 말했지만, 사실 그게 먼 훗날부터 정해져왔다고 하기 보다는 그 녀석과 이야기를 하면서 내 생각이 정리되었다고 하는게 옳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언제나 두 가지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나는 '비행기 많이 타고 다니는 사람,' 그리고 '유명해서 후대에도 누구나 기억해주는 사람.' 어느 쪽이든 허황된 꿈일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전자는 후자에 비해 훨씬 현실적이다. 지금의 길대로만 방심하지 않고 꾸준히 달려갈 수 있다면 전자의 꿈은 곧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후자의 꿈은 언제 현실화될까.
즉, 원미래에 대한 계획이라는 것은 결국 실현가능성을 - 그것이 성공이든 실패든 - 알 수 없다는 점에서 공상과 같은 것이다. 하지만 그런 꿈을 꿀 수 있기에 계속 지금 무언가를 해나가는 것이 아닐까. 언제나 과거지향적으로 살았지만 인생의 목표같은 것은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지금은 그 목표를 향해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것 같아서 스스로에게 만족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런 기분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최소한,
내가 지금 간신히 잡은 이 행복은 절대로 내 손을 벗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만약 그렇게 되면 나는 또다시.. 지금 생각하는 내가 아니게 되어버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