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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비망록

우아한 독신 생활: Nothing is Good Enough

by 스프링데일 2013. 9. 25.

いつか気持ちを伝えたがった思いはもう無意味なことになってしまった。

스스로에 대한 글들을 개방된 공간에 올리는 이유는 관심병에 걸려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스스로에 대한 글들을 개방된 공간에 올리는 이유는 누군가에게는 이해를 받고 싶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스스로에 대한 글들을 개방된 공간에 올리는 이유는 결국 스스로를 돌아보고 싶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새는 알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누구든 세계를 부숴야 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너무나 바쁘게 살아야해서 삶의 목적 같은 것들을 잊어버릴 때가 종종 있다.  측면이나 후면의 존재를 망각한 채 그저 전면을 보고 살아가야 하기에 한편으로는 여유가 없는 삶은, 묘사한 것처럼 고독하지는 않다.  앞을 보고 살아가는 것은 최소한 마주해야할 앞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 현재, 미래로 가는길, 스스로 나아갈 곳이 있는 사람은 적어도 불행하지는 않은 사람이다.  최소한 그들은 나아가기만 하면 되니깐 후퇴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리운 과거나 소중한 주변을 돌이켜볼 수 없다는 사실은 그 사람을 외로움에 빠지게 만들지만, 적어도 미래에 대한 고려를 암시할 수 있는 현재에 집중할 수 있다는 사실은, 스스로가 남들보다 더 앞으로 나아가지는 못하더라도 뒤쳐지지 않았다는 안도감을 만들어준다.

잠시나마 그 외로움을 잊게 해주는 것일지도 모르리라.

해와 달이 바뀌는 것이 앞으로 70번 정도를 반복하면 이 블로그를 시작한지도 7년이 된다.  지난 7년 동안 나는 어떤 사람들을 만났고, 어떤 경험을 했으며, 어떤 모습으로 변해왔을까? 이런 사소한 질문들까지 모두 포함한 과거에 대한 고찰은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버렸는가?

7년이라는 세월은 그렇게 짧은 기간은 아닐 것이다.  그 세월동안 이곳, 버클리오니피언, 페이스북, 트레비아, 택컴 등 인터넷 곳곳에 써온 나의 글들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당시의 내 가치관을 반영하는 글들이었을 것이다.  글을 쓰는 것은 언제나 내 자신이었다.  그렇다면 그런 나에게 글을 쓰도록 동기를 부여한 
내·외적 존재들은 어째서 나에게 그렇게 하도록 했을까? 솔직히 말하면 이유는 없다.  사실 그런 것들은 나에게 글쓰기를 강요하거나 제안한 적은 없었다.  그저 그들의 존재 자체에서 스스로에게 글 쓸 동기를 찾아냈을 뿐이다.

실제로는, 글쓰기 이외에 내가 열정을 쏟을 것이 없었다.

물론 글을 쓰는 사람들 중, 처음부터 글쓰기에 대한 확고한 목적이 존재했던 사람들이라면 나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죽음이 두려워서 생활을 이어나가는 사람도 있고, 죽음에 흥미가 없어 생활을 이어나가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죽음에 흥미를 가지는 사람은 없다.  그런 사람들은 이미 죽고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깐.

7년 동안의 글쓰기는 언제나 나와 함께였다.
운영했던 택티컬 커맨더스 팬사이트에서 만난 한 개발자의 소개로 태터툴즈 기반의 서비스형 블로그 서비스가 생긴다는 것과, 그 티스토리의 초대장을 받음으로써 나는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었고, 사실 그 전까지의 나는 내가 글쓰기를 좋아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단지 내 생각을 말하고 공유할 공간이 필요했지만, 그것을 자각하지는 못했다.  타인에게 나를 알리고 싶어했으며 타인들이 나에 대한 평가를 내려 그들에게 비치는 나의 모습을 알려주기를 바랬지만,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자 했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단지 내가 3인칭, 또는 2인칭으로 세상에 비춰지는지 궁금했을 뿐이다.
하지만 글쓰기에 집중한다는 것이 나의 생존을 유지시켜주지는 않았기에, 그것은 역설적으로 내 인생에서 무가치한 것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큰 우선권을 부여하기는 힘들었다.  그냥 쓰고 싶으니깐 썼을 뿐이다.   무엇인가에 대한 글을 억지로 쓰려고,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고 글을 쓰는 것은 언제나 이질적인 것들이었다.  불순한 목적이 있는 글은 글 자체에서 바로 불순한 목적이 드러났다.  그렇기에 나는 책을 읽다가, 게임을 하다가, 사람을 만나다가, 일을 하다가, 그리고 사랑을 하다가 글의 주제가 떠오르면 생각들을 과거의 어느 기억들과, 또는 상상과 연결시켜 길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스스로를 제외하면 누가 나의 글을 읽을 것인가.  저자와 독자가 일체화된 블로그.  이런 반복적인 행동은 글쓰기 이외의 것에 나의 시간과 노력을 할애해야하는 일들이 생길 때까지 지속되었다.  이후에 나는 예전처럼 이곳에 자주 찾아오지는 않았다.  그저 어쩌다가 시간적 여유가 생기거나 도무지 글로 표현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들이 일어났을 때, 현재로서는 과거의 일들이 되어버린 사건들을 기록하기 위한 일기장의 역할을 해왔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걸까?  천박한 생존을 위해 하루를 벌어 하루를 먹고 살던 인생은 이제 끝난 것 같다.  10년이 넘게 걸렸다.  가지고 있떤 수많은 꿈과 가능성을 현실화, 또는 시각화하기 위해 온갖 열정을 다했던 학교 생활도 어느 새 과거의 한 지점에 기록되어 있었다.  그것들은 한 때 나의 전부였고 내가 가장 커다란 의미를 부여했던 것이지만, 이제는 나의 과거를 구성하는 어느새 과거의 한 지점에 기록되어 있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스스로에 대해 모순성을 느껴버렸다.  힘들 때면 글을 쓰면서, 또는 친구들을 만나면서 도망갈 수 있는 과거로 현실 도피를 하던 나에게 더 이상 돌아가거나 추억할 수 있는 과거 따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바빠진 삶은 나에게 적극적으로 나의 과거를 잊고 마주한 현실에 좀 더 본격적으로 대응하기를 요구했다.  지금 나의 삶에는 “현재”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일어나지 않을 미래에 대한 꿈을 꾸는 것은 여전히 불가능하다.  그런 나에게 바뀐 것이 있다면 나는 더이상 내가 추구하던 과거지향적인 가치관으로는 현재의 나를 지탱해나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과거는 소중하다.
나의 과거는 찬란한 것이었고 소중한 것이었다.
 
여기까지 쓰고서야 조금은 알 수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나는 글쓰기를 좋아했다.  대학교에 가기 전, 세상과 단절되어 있을 때 글쓰기는 내 인생의 전부였다.  그것은 대학교에 들어가서도 글쓰기 동아리를 창립하는 것으로 이어졌고, 거기서 나는 내 글을 읽어줄 독자들을 찾을 수 있었다.  7명이서 시작한 그 동아리는 정상 궤도에 올라가는데는 무려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정신을 차렸을 때 쯤엔 이미 그것은 내가 아닌 다른 녀석들의 소유가 되어있었다.  섭섭했다.  나 없이도 잘 돌아가고 있었기에.   한 때는 나의  전부였던 것들이 이제는 다른 녀석들이 그 안에서 저마다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었다.  행복했다.  내가 만든 세계가 나 없이도 잘 돌아가는 것을 보았기에.  그 세계에 나의 흔적은 이제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 세계의 현재를 이끌어가는 녀석들은 저마다의 정체성을 쌓아올리며 그것을 더욱 아름답고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시키고 있었다.

그 세계에서 빠져나온 뒤, 객관적으로 그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데는 일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결국 나는 글쓰는 것이 좋았다.  잠시 그 세계에서 멀어져 있었기에, 글쓰기를 사랑했던 과거의 나와 원하지 않는 이별을 해버린 채, 흔히 말하는 글감이나 글의 소재는 점점 떨어져만 갔다.  조금 더 본질적으로 풀어나가보자면, 단지 생활을 하는 것만으로도 글쓰기에 대해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지금도 책장에는 책이 한 가득 있지만, 그 책들을 읽은지도 오래됐고, 한 때 공감을 느꼈을 작가들의 어구들은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한편, 사랑하는 후배들은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어 나가고 있다.  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들이지만.. 그래도 행복하다.
그래서 결심했다.  지금부터는 다시 책을 읽기로.  지금부터는 다시 글을 쓰기로.
 
글을 쓰려면 여러가지 제반 작업이 필요하다.  예전에는 책을 끼고 살았고, 인터넷에서 장문의 글들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다.  숫자만을 보고 살고 있고, 신문과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들은 직장 생활에 할애하는 시간들에 반비례한다.

2010년 8월, 학교를 시작하고  블로그에 대한 외도가 시작된 후 총 92개의 글밖에 쓰지 못했다.  그 중에서 단지 52개만이 내 글.  동아리에는 아마 많아도 30개 이상의 글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3년 동안 100개도 못썼다니.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외롭다는 것.  사람들의 품이 그립고, 사람들의 냄새가 그립고, 그들의 웅성거림이 그립다.  단지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활력소가 되고, 그 사람들은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라는 생각에 젖어 상상력을 기를 수 있다.  그것은 상상의 열매가 되고, 글의 소재가 된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는 그런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을 목표로 삼아 현재를 걸어나가야 할지 잘 모르겠다.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지만 어쨌든 절망이라는 녀석은 그 형태를 바꾸어 다시 나를 찾아왔다.

단지 생활을 하고 있는 것 만으로도 슬픔은 쌓여만 간다

그저.. 오늘은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
마음이 통했는지 통하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 사람이 보고 싶다. 

いつか気持ちを伝えたがった思いはもう無意味なことになってしまっ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