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대로라면 이번 시점을 마지막으로 이 곳의 많은 사람들과 작별을 해야 되었을 수도 있었지만, 공부를 못한게 다행인지 전공을 바꾼게 다행인지 버클리는 나에게 한 학기라는 시간을 더 주었다. 그 결과, 나는 내가 떠나려고 했던 곳에서 떠나지 못한 채, 만약 이 곳을 떠났다면 내 자신이 어떻게 되었을까 라는 과거에 기반한 과정형 미래를 느끼고 있다. 지금 나의 기분은 학교에 모든 것을 남겨둔 채 팔로알토로 돌아가는 것이련만, 사실 학교가 끝나도 나는 여름에도, 가을에도, 그리고 겨울에도 이 곳에서 학교를 다닐 예정이다. 아직 못 다한 이야기. 그리움, 아쉬움, 회한. 2년 동안의 학교는 내게 있어 새로운 세계였다. 반강제적으로 그 전의 5년 정도를 세상과의 문을 닫고 약간의 친구들과 함께 목가적인 나날들을 보냈던 삶이 무의미했던 세상, 의미가 없었기에 꿈이 없었고 꿈이 없었기에 미래에 대한 걱정도 없었다. 내 자신의 눈과 귀를 닫은 않은 채 스스로의 세계에서 살아가던 시절. 생존만을 위해 살아가던 그 때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새로운 세상에 온 뒤, 나는 좋은 녀석들을 많이 만났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처음에 느꼈던 그 감동과는 달리, 이 곳도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고, 나는 내 기준에 의거해 얼마든지 좋은 녀석들과 나쁜 녀석들을 구분할 수 있었다. 문제는 아마도 좋은 녀석들인데 소속의 문제로, 의견의 문제로, 또는 거시적인 문제들로 인해 가까워질 수 없는 좋은 녀석들과의 관계일 것이다. 하물며 적이 되고 싶지 않았는데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그 사람과 적이 되어야 한다면. 적을 만들지 않으려고 했지만 2년이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 학교 생활을 돌이켜 보면 수 많은 적들을 만들었다. 나는 과연 잘 하고 있는 것일까.
주변의 소중한 친구들은 내가 잘 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 정도로 만족할 수 없었다. 친구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잘난척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또는 친구들이 나와 친구이기 때문에 자랑스러워 할 수 있는 것들. 나는 내 친구들에게 그런 모습이고 싶었고, 그런 나를 선물하고 싶었다. 그것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방법이다. 그들 하나하나에 최고가 되는 것. 친구들의 경우에는 그나마 나았다. 나는 나와 소속이 다르거나 나에게 적대감을 표출하는 녀석들에게 상처를 받았다. 물론 상처를 받을 것 같아서 먼저 상처를 준 경우도 있었다. 지금에 와서는 모두 무의미한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그 때의 생각이 난다. 과거의 어느 한 시점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면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꿈 깨자. 그 때로 돌아가도 분명히 나는 똑같은 선택을 하고 행동했을 것이며, 마찬가지로 똑같은 후회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내 품에 안고 싶었지만 지키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다시 그 사람들이 돌아왔으면 하지는 않는다. 관계가 틀어지는 시점에서 그 관계는 이미 끊긴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서로 상처 입힌 말들도, 서로에게 보이지 않은 채 거듭 흘린 눈물들도, 분명히 언젠가는 추억이 될 테니, 나도, 나에게 상처를 준 녀석도, 내가 상처를 준 녀석도 모두 언젠가는 대학 생활의 일을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겠지.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은 미래의 언젠가에는 추억으로 바뀔 수 있다는 현재의 눈물의 변화에 대한 희망감일 지도 모른다. 이 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더 이상 만날 수 없다 해도, 녀석들과 해왔던 커뮤니케이션의 기억은 언제까지도 내 기억 속에 남아 있겠지. 녀석들이 모두 내 주위를 떠나가도 나는 그 때를 추억할 것이다.
나는 이 곳에서 두 곳에 소속되어 있었다. 두 곳다 남들 이상의 열정을 발휘했고, 가장 많은 노력을 했다고는 생각하지만 나는 한 쪽에서 내가 무시하던 다른 사람들에게는 인정받을 수 없었다. 어느 쪽에서 그랬던지는 아마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분명히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했고 정열을 보였다. 하지만, 그 것은 거기까지다. 남들이 인정해주지 않는 것. 사실 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고 싶었는 것일지도 모른다. 관심병일 수도 있고, 그저 온라인에 자주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페이스북에 사람들이 놀러와 라이크를 찍어주는 것도 좋았고,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관심을 받으려는 사람들을 비꼬는 것도 좋아했다. 허세. 사람들은 자신의 약한 모습을 감추기 위해 전혀 다른 모습을 주변에 어필함으로써 정체성을 찾으려고 하지만, 그건 결국 나에게도 적용되는 말이 아닌가.
그런 사람들이 싫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을 비꼬며 그들의 허세를 따라한 결과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허세를 부리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허세로 인해 상대방을 무시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그 것은 나쁜 것이 맞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이 곳에는 그런 녀석들이 아주 많다. 자신의 강함 - 물리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어떤 것이든 좋다 - 을 어필하여 사람들을 선동하고, 아무 것도 모르는 멍청한 사람들은 그런 선동자들을 따라가서 자신이 선동당했다는 사실은 자각하지 못한 채, 선동당하지 않은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때로는 비판하기도 한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싫었다. 이미 존재하는 안정감이 있다면 그 틀 안에서 무언가를 바꿔나가는 것은 좋아했지만, 그 틀 자체를 바꾸는 것은 싫었고, 지금도 그렇다. 틀을 바꾼다는 허황된 꿈을 꾸는 것은 중2병이나 사춘기 시절이면 충분하다. 세상은 너희들이 생각하는 듯이 정의와 환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노력과 열정, 꿈, 능력으로 결정되어지는 것이니깐. 그리고 그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정열적으로 자신의 에너지를 무의미한 곳에 쏟아 붓는다. 그들의 행동이 틀렸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아니, 그들을 자극할 생각이 없다고 하는 것이 더 맞겠다. 그렇게 열심히 거짓된 틀 속에 살다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분명히 주저앉을테니 내가 건드릴 필요는 없다.
솔직하게 인정하면, 그들을 막을 힘이 나에게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행동들은 이미 한계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 한계를 다시 늘여놓으려면 지금부터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되니깐. 나는 얼마나 열정적이었을까.
그렇게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지난 2년 동안 스프링데일, 김성현은 이 곳에서 어떤 사람으로 남았을까. 만약 기억되어질 수 있다면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 것인가. 아직 한 학기가 남았다. 하지만 다음 학기에는 내 옆에서 항상 있어 주었던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또 다시 남겨지는구나. 내 주변에 소중한 사람들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항상 정상적인 길을 걸어올 수는 없었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럴 것이라는 예전부터 그래왔던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는 것이지.
나는 어디서도 항상 이방인이었다. 한국에 나가서도, 미국에 있어도, 학교를 다녀도. 24년 동안 쌓아온 나의 정체성은 아마도 그런 것인가 보다. 그 것이 슬프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 곳에 정착할 수 없다는 것은 말 그대로 어느 한 곳에 나의 흔적을 남길 수 없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먼 훗날 내가 지나쳐온 길들과 사람들에 대해서 나는 계속 기억을 하겠지만, 반대로 나를 기억해주는 길들과 사람들은 얼마나 될 것인가. 나는 잊혀지고 싶지 않다. 나는 기억되어지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 누구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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