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밥
김밥, 밥과 여러가지 속재료를 김으로 감싸 만든 음식. 다른 음식들에 비해 비교적 값싸고 우리가 흔히 학교에서 소풍갈 때 가져가는 음식이라 간단한 음식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사실 간단한 것은 김밥을 먹는 것뿐, 그 만드는 과정은 전혀 그렇지 않다. 가장 큰 어려움은 아마도 그 속에 들어가는 재료들을 일일히 손질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우엉이나 당근은 그 속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 채썰기를 해야하고, 고기는 양념 후 조림, 시금치는 뜨거운 물에 데치고, 단무지도 물기를 제거하고.. 아니아니 그 외에도 가장 기본적인 김도 불에 어느 정도 구운다음에 참기름을 바르고, 밥도 참기름과 소금 양념이 들어간다. 먹기에 간편해 보이지만, 그런 간편성을 위해서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단순성은 복잡성에서 태어나는 것인가.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김밥이 가지는 단순성은 나로 하여금 좀 더 김밥에 대해 특별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기 위해서 우리가 거쳐야 하는 과정은 때로는 간단명료하지만, 아마도 대부분은 험난하거나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만 성취할 수 있는 것들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노력의 끝에 얻는 성취감은, 사실 그 과정에 비하면 기대를 채워주지 못 하기도 한다.
현재의 나는 대단한 존재는 아니다.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 자존심 같은건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내가 그런 것들을 의도적으로 추구한 적은 없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현재까지 내가 걸어온 인생의 시간선은 결코 쉬운 것들은 아니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의 현재의 내가 될 것이라는 것, 적어도 과거의 나는 그런 것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읽는 책, 내가 쓰는 글, 내가 만나는 사람들, 내가 하는 공부들, 심지어 내가 잠을 자는 방법 등, 과거로부터 시간선을 따라 내려온 나의 행동 하나 하나가 현재의 나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리라. 이렇게 단순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내 자신도 이런 단순함을 성취하기 위해서 엄청나게 먼 길을 돌아온 셈이다.
# Love Letter
잘은 모르겠지만, 어린 시절 본 일본 영화가 있었다. 추억을 되찾아가는 사람과 추억을 덜어가는 사람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진행되는 이 영화는 초등학생이었던 나에게는 이해하기 버거운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러브레터라는 영화에서 기억나는 것은 극중 삽입되는 수 많은 배경음악들 뿐이었다. 러브레터는 몰랐지만, A Winter Story나 Soil of His Tears 같은 음악들은 언제나 중학교 시절부터 내가 모아온 피아노 악보집의 한켠을 차지했다. 음악이 좋은 영화 정도로 기억되고 있었던 그 영화는 십 수년후 나와 새로운 모습으로 대면하게 되었다.
어른들의 사랑 얘기였기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이야기들은 이제 수 년후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가까운 미래라는 가능성을 가진 이야기가 되어버렸고, 어린 시절부터 분명히 기억해 왔다고 생각한 개념들이나 사건들은 현재의 나에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곤 한다. 그런 타 (他) 적인 존재들과 내 자신의 상관관계를 고려할 때 역시 나는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오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지금까지 결과적으로는 앞으로 나아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 Epilude
언제나 곁에 있었기에 그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던 것
너무나 오래 잊혀졌기에 그 의미를 깨닫지 못했던 것
그런 것들을 깨닫게 해준 그 녀석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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