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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한국어

미국 주유소 알바 인생 :: Valero of Palo Alto, Palo Alto, CA

by 스프링데일 2011. 7. 31.

1963 El Camino Real, Palo Alto, CA 94303, USA

이곳은 내가 2005년 부터 일하던 곳이고 예전에는 ARCO이기도 했고 당시엔 한국 분이 주인이었는데 지금은 중국 분들에게 사업체가 넘어간 상태.  그리고 나서도 벌써 5년이 더 흘렀으니, 내가 이곳에 있었던 시간은 약 6년이고, 내가 새로운 사장님들 - Amy and Charles - 와 이 가게를 맡은 것도 벌써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이 곳에 있는 동안 나는 고등학교도 다녔고 졸업 후에 찌질대면서 방황도 하고 커뮤니티 칼리지도 다녀보고 버클리라는 명문대에 와서도 이 곳을 그만 두지는 못했다.  아마 내 청소년 시절을 모두 간직하고 있는 곳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그 당시 나에게 있어서 친구는 약간 두 종류 같은 식이었는데, 나와 친한 친구들은 우리 가게에 놀러와도 됐고 안 친한 녀석들은 오면 내가 냉대했다.  뭐 꼭 그런건 아니지만 -_-; 그래도 나와 친한 녀석치고 가게에 놀러온 적이 없는 녀석은 드물다.  대충 안을 살펴볼까?


지금은 안에 조금이나마 리모델링을 해서 정리같은게 수월해지긴 했는데, 예전엔 이렇지가 않았다.  엔진 오일은 바깥의 따른 진열장에 올라가 있었고 담배 진열장도 저기가 아니라 좀 더 왼쪽에 위치해 있었다. 일단 뒤쪽 벽이 그냥 개방형이나 마찬가지여서 밖에서 봐도 다 보인다는 점도 좀 문제였고.. 아무튼 그래서 2009년 여름에 내가 한국에서 갔다오자마자 사장님들은 리모델링을 하셨다.  (그 때 쯤에 가게 펌프도 바꾸고 안에 레지스터도 바꾸고 ^^)  덕분에 ARCO 시절부터 나는 현재 캘리포니아 안의 주유소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레지스터와 펌프들을 모두 접해볼 기회가 있었다.  그 중에 가장 간편했던건 유닉스 기반의 루비 시스템이었지만 도트스크린이고, 입력이 불편한 점이 있어서 사장님들은 싫어하셨던 것 같다.  루비 시스템의 장점은 기계가 별로 많지 않다는 것.  본체랑 네트워크 패널만 하나 있었으면 했다.  (엄청 작은데도 기계값이 거진 800만원이나 하니깐 참..) 그리고 그 전엔 인텔 x86의 콘솔 기반이었는데 말그대로 컴퓨터를 쓰는거라서 좀 짜증났음 -_-.  ARCO 가게들 중에는 아직까지도 이걸 쓰는 가게들이 있는 것 같다.  지금 쓰는건 Gilbarco의 Passport 시스템.  윈도우 NT 커널 기반으로 이것도 결국 컴퓨터긴 하지만 그래도 터치스크린이면서 윈도우 기반이라는게 맘에 든다.  작업 속도는 (세일즈 할때 말고) 루비 시스템에 비해 좀 느리긴 하지만 GUI를 쓰기 때문에 루비시스템보다 인터페이스가 훨씬 직관적이고 좀 더 많은 부분의 세세한 설정을 할 수 있다.  보니깐 버클리 풀턴과 듀란트 만나는 곳에서는 루비시스템을 쓰는듯 하고, 터치리스에서는 패스포트 시스템을 쓴다.  (참고로 패스포트는 컴퓨터가 입력을 확인하는 표시로 따릿~ 하는 소리가 나는데, 이게 세가에서 만든 소닉이라는 게임에서 소닉이 링을 먹을 때 나는 효과음과 같은 소리가 난다 ㅋㅋ)


사진을 몇개 더 찍긴 했는데 다들 잘 나온게 없어서 그냥 이것들만... 내가 제일 사랑하는 레드불 오리지날이 뒷켠에 보인다.  참고로 여기서 거의 살다시피 하면서 내가 콜라 + 담배 + 레드불 3단 콤보의 수렁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ㅋㅋㅋㅋㅋ  뭐 그래도 어쨌든 가게에서 제일 많이 팔리고 마진도 높은 효자 아이템들중 하나고 >< 박카스보다 카페인 함유량이 더 높은걸 음료수 마시듯하는 미국인들도 문제가 있지만 뭐 나도 그러고 지금까지 잘 살아온걸 보면 문제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허허허 ㅡ,.ㅡ  아무튼 우리 가게에서 제일 많이 팔리는건 레드불, 말보로 라잇, 기름 (-_-;). 2리터짜리 크리스탈 가이저 물, 바이타민 워터, 그리고 10W-30 엔진오일 정도일려나? 주유소에서 일하면 기름보다 담배랑 정크푸드에 대해서만 더 알게 되는 것 같다.

내 카메라로 이런 색감이 가능하다니!

아무튼 이 곳은 거의 내 미국인생의 전부가 걸려있는 곳이다.  고등학교의 사춘기와 방황기가 모두 이 곳에 있고, 내가 만난 사람들도 많았다.  새로운 만남과 이별도 이 곳에서 많이 이루어졌고, 지금도 그때 부터 만난 친구들과는 아직도 연락을 한다.  그 때 오던 녀석들 중에 지금은 몇놈이나 이 곳에 오는지.. 심지어는 한국에 사는 녀석들도 남가주에 사는 녀석들도 내 친구들이라면 거의 다 이 곳에 와본 적이 있다 -.,- 그런 주유소 생활 덕분에 나는 열심히 놀았고, 술도 먹었고, 알바도 했고, 당구도 치러 다녔고, 운동도 했고, 편입도 했다.  그리고 편입하고 나서도 나는 일주일 마다 한번 - 때로는 다섯번 - 씩은 이 곳에 간다.  사장님들께서도 나를 필요로 하시는 것 같지만, 내 입장에서도 이 곳을 그만둘 생각이 없다.

아마 내가 산호세에 아직도 미련이 있다면 우리집 귀염둥이 바덴과 주유소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아마 난 버클리를 졸업하고 새로운 직장을 구해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주유소에 갈 것 같기도 하다 -_-;;   실제로 그래왔으니깐 뭐.. 학교 중에도 방학에도 난 여기서 일했고 비가 오고 천둥이 쳐도 여기서 일했고 새해 벽두에도 연휴에도 여기서 일했었고.. 아무튼 여기서 벌어진 에피소드들을 세어 보자면 끝이 없지만 그래도 나쁜 기억은 특별히 없는거 봐선 나는 주유소를 내 인생의 일부로 생각하나보다.  실제로 이 곳에 일하면서 나는 음식점, 과외, 강사, 프로그래머, 통역 등등 여러가지 다른 알바들도 뛰어봤지만 결국 나는 주유소에 늘 돌아오곤 했다.  아니 애초에 다른 알바를 하면서도 주유소를 그만 둔적은 없었으니깐..ㅋㅋㅋ 투잡 쓰리잡 포잡 아오.. 그래도 언제나 주유소는 그렇게 있었고, 지금도 그렇게 있다.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말이 있다.  물론 아메리칸 드림에 환상같은 건 없지만 적어도 내가 미래에 미국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둘 수 있다면, 아마도 그 시발점에는 주유소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인복이라고 하였고, 다른 사람들은 내가 성공하려면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두 의견을 종합해 볼때 인복 속에서 사람을 잘 만난건 아마도 주유소가 최초이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아마 난 인생에 어떤 문제가 생기면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저 힘찬 연어떼처럼 다시 주유소로 돌아갈 지도 모른다 ㅠㅠ
열심히 살아야지 ㅋㅋㅋㅋ 사장님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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