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0 한이랑 채팅하다가 잠듬
1240 늦을까봐 정자역까지 택시로감
1400 어느 커피샵
1600 아이스베리
1800 노래방
1900 가르텐비어
2030 당구장
2200 장안초등학교
2400 찜질방
분당동 -> 정자동 -> 서현동 -> 분당동
1240 늦을까봐 정자역까지 택시로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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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 가르텐비어
2030 당구장
2200 장안초등학교
2400 찜질방
분당동 -> 정자동 -> 서현동 -> 분당동
이전 날 조현이와 헤어지고 경재네 집에 돌아왔을 때, 약간의 감기기운이 있었던 것 같다. 아저씨와 함께 약국에 가서 약을 사고 먹자마자 금새 잠이 들었는데, 결과적으로는 너무 짧은 잠을 잔 것 같다. 시계는 새벽 한 시 정도를 가리키고 있었고, 옆의 침대에서는 영중이가 잠을 자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랩탑을 꺼내서 근처의 무선 인터넷을 10여분 간 찾은 끝에 겨우 연결하고 네이트온에 들어갔다. 친구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인터넷을 하는데, 어느 순간 모니터 오른쪽 아래에 익숙한 사람이 로그인을 했다는 메세지가 피아노 소리와 함께 가볍게 떴다.
서한이 님이 접속하셨습니다.
사실 한이는 내 네이트온 친구 목록에 꽤 오래전 부터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말을 나눈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이는 한이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한국 친구들과 내가 연락을 잘 안해서 그랬던 것일까. 실제로 무언가 어색했던 점도 있었을 것이고, 타이밍이 안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반대의 입장에서도 친구들의 눈에 보이는 내가 그런 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경우에는 한이를 만나기로 한 다음 날이었다. 정확히는 동현이와 혜화도 함께. 왠지 한이도 새벽에 일어나게 되었다고 한 점에 동질감을 느낀 것일까. 네이트온의 친구 목록에서 한국 친구들이 하나 둘씩 오프라인으로 넘어가는데 한이만이 온라인에 남아 이런 저런 얘기들을 주고 받았었다. 그렇게 대화하기를 세시간 정도, 하늘이 밝아지고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릴 무렵, 무언가 내일의 스케줄에 지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며 한이와 점심의 만남을 기약한 채 잠에 들었다.
약속은 오후 1시의 정자역 앞이었다. 정자역이 백궁역이던 시절에도 그러했지만, 나는 이 역을 지하철로 지나가본 적은 있어도, 밖에 나와본 적이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만나기로 한 장소까지 잘 찾아갈 수 있을지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어쨌든 찾아가 보기로 했다. 일단은 마을버스를 타고, 서현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가면 되는 루트일텐데, 뭔가 한시까지 맞추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더 커지는 바람에, 마을버스 정류장까지 뛰어가다가 근처를 지나가는 택시를 잡고 "기사님, 정자역까지 가주세요, 가능한 빨리!!" 라고 말하며 차에 올라탔다. 기사님이 그런 내 재촉에 "정자역이 얼마나 멀다고 가능한 빨리라고 하시나, 학생" 이라고 느긋하게 받아쳐주신 것은 왠지 내가 이번 한국 방문에서 "처음으로" 장안초등학교 시절 친구들을 만나는 점에 얼마나 흥분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극적인 사례중 하나였던 것 같다.
혜화와 한이는 5년 전에 보지 못했지만, 동현이는 두어번 만났었다. 하지만 혜화도, 한이도 내 기억 속에서 또렷히 그 모습이나 말투, 성격같은 것들이 뚜렷하게 기억되고 있었다. 한이 녀석에게는 내가 안 그랬던 것 같지만. 정자역 앞에서 내렸을 때, 아직 아무도 도착하지 않고 있었다. "이 것들이 약속을 어떻게 제대로 지키는 녀석들이 하나도 없어."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따지면 나는 민영이에게 정말 많이 혼나야 될 것 같다. 느긋하게 기다리다 보니 먼저 동현이가 나타났다. 5년 전에도 엄청나게 멋있어진 모습이었지만, 지금 보니깐 더 멋있는 것 같군. 우선 인사를 나누고 지난 5년의 시간들을 적당히 아우를 수 있는 간단한 얘기들을 나누다 보니 한이와 혜화가 도착했다. (아, 동현이는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있는 중이었기 때문에, 많이 볼 수 없었던 점이 아쉽다.) 이날 처음으로 혜화와 눈을 마주치고 반갑게 인사할 수 있었다.
5년 만에 만난 동현이는 겉모습에서부터 많은 변화가 느껴졌다. 의젓한 모습은 그렇다고 쳐도, 과묵해졌고, 행동 하나하나에 절도가 있었다. 무엇보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동현이를 "친구들 중에 가장 똑똑하고 리더십있는 아이" 로 생각했었는데, 리더십이 있었다는 점은 애들을 선동해서 뭔가를 하러다니고, 어디에를 놀러갈 때 주도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에 내가 그런 인상을 받은지도 모른다. 그 때 우리반 남자애들의 한 열명 정도가 같이 주말에 어린이대공원을 가기도 했고, 전쟁기념관을 가기도 했던 기억들이 아직도 난다. 그리고, 그런 그룹의 중심에는 알게모르게 항상 동현이가 있었다. 저새끼가 저렇게 멋있어졌는데 나는 지금 뭐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열등감이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 낮에 만나기로 한 이유는 점심 식사부터 먼저 하기위해서였다. 그 녀석의 미니홈피 투데이에 써있는 "냉면냉면냉면"을 봤을 때 이미 짐작했어야 됐지만, 한이는 계속 냉면을 먹자고 우리들을 졸랐는데, 이 정자동이라는 동네는 (신정자 구정자로 나누는 것도 정말 개그같지만) 정말로 제대로 된 곳이 없었다. 적어도 한번 도 안가본 우리들에게는 그랬다. 한이와 혜화에게 "너희들은 분당 살면서 어떻게 분당을 모르냐" 고 핀잔을 주기도 했지만, 그녀들도 자신이 없는건 마찬가지인가. 결국 우리는 냉면을 먹을 수 있었다, 어느 고기집에서 -_-;;
아직 혜화와는 무언가 어색한 점이 있었다. 사실, 그 녀석과 나는 2년 정도 같은 반이었기는 했지만,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었던 것 같다. 더군다나 중학교 1학년 때는 학생부회장 선거에 같이 출마하는 바람에 경쟁 심리로 더 멀어진 점도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라고는 하지만 결국 과거의 어떤 한 지점에서 일어난 일들. 더군다나 혜화도 나에게 그랬겠지만, 나도 혜화에게 악감정같은 것은 없었다. 오히려 좀 더 친해지고 싶었지만, 역시 상대가 여자애라서 내가 숫기가 없었나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혜화와 언제까지나 어색할 수는 없었다. 그건 혜화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일까.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서로 이야기들을 꺼냈다. 대화가 없었던 것 뿐이지 혜화와 나는 공통점이나 접점이 꽤 많았다. 그런 점에서 사실 우리는 서로에게 얘기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던 걸까. 결국 나는 혜화를 10년 동안 알았지만, 이날 혜화를 처음 알았다. 왜 좀 더 일찍 친해질 수 없었을까 하는 후회와 아쉬움 같은 감정이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미국에 있었을 때 신정자라는 주상복합동네가 생긴다는 이야기를 들었었고, 5년 전에는 그 부동산들에 사람들이 입주하는 모습들을 지켜봤었다. 그리고나서 내가 미국에 돌아온 얼마 후, 분당의 새로운 명물이라며 "정자동 까페거리"라는 곳이 소개되는 기사를 언젠가 본 적이 있다. 신기했던 점은 나와 마찬가지로 외국에 있었던 동현이는 그렇다쳐도 분당 토박이라는 혜화나 한이가 이 곳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역시 분당에 살아도 자기 생활권은 안 벗어나는 녀석들. 하지만 내가 장안타운에 살아도 역시 그렇지 않을까? -_-;; 냉면을 다 먹고 이 까페거리를 찾으며 넷이서 돌아다니다가 결국은 못 찾고, 소나기가 오는 바람에 찾던 까페거리는 못찾고 길거리에 있던 어떤 프랜차이즈 커피집으로 들어갔다.
평일 한낮, 점심시간이 지난 주거지역의 까페에는 당연히 우리들 외에는 사람이 없었고 의자들은 음식점의 그것들보다 훨씬 편해서일까. 조금 긴장이 풀린 상태로 편하게 친구들을 대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의 동창들이 몇년 만에 모여서 만나면 역시 다른 친구들의 소식을 묻는 일부터 하게 되나보다. 한이와 혜화는 고등학교 때도 친하게 지냈기 때문에 비교적 대진고로 간 동창들의 소식은 잘 알고 있는듯 했다. 지금은 소식이 끊긴 친구들도 있었지만, 우리 네명은 동창들의 이름을 거의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한이보다도, 혜화의 경우에는 아이들의 소식에 대해서 비교적 자세하게 알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아니면 역시, 사실은 우리가 공통점이나 접점이 많았기 때문일까? 나는 마치 오랫동안 잘 알고지냈던 친구처럼 혜화에게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했던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어렸을 적의 혜화는 임원을 맡는 등 리더십이 있음에도, 방관자이면서 조용한 아이였다. 무언가 푸근한 이미지도 있었는데, 6학년 때까지만 해도 평균적인 남자애들보다 키가 커서 그랬나보다. 방관자라는 말은 소외자가 아니다. 혜화 자신이 스스로를 묘사하기도 했지만,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그냥 우리반 애들이 노는 걸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어...ㅋㅋ" 그것이 내가 혜화를 만났을 때 처음 받은 인상이었다면, 혜화는 나를 "리코더 부는 똑똑한 아이"로 미화된 기억을 가져주고 있어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르겠다. 이 날을 계기로 나는 한국에 있는 동안 혜화를 만날 기회를 몇번 더 가질 수 있었다.
잠시 후에 송아가 잠깐 들렀다. 나의 경우에는 며칠 전 송아를 만난 적이 있었기 때문인지 송아가 반가우면서도 낯설지 않았지만, 다른 세명의 친구는 그렇지는 않았나보다. 다들 반가워하는 분위기이긴 했지만, 이 분위기는 나 만이 느낀 것일 수도 있다. 다섯 명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10년 전 장안초등학교에 다니던 때를 제외하면 처음이라고 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의 우리는 각자 서로와는 다른 각각의 인생을 살고 있었다. 작은 커피샵에서 다섯 명이 모영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을 때, 나는 시간의 흐름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다섯 명이 만나는 것 만으로도 나는 반가운데, 장안초등학교의 6학년 4반 친구들이 더 많이 모여서 지난 얘기들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얘기를 꺼냈다.
야, 이러지 말고, 우리 시간내서 동창회 하면 안되냐?
다들 놀란 것 같았지만, 그래도 내 제안에 동의하는 듯 했다. 나의 경우에는 내 이기심 때문에 이런 제안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보고 싶었던 친구들을 최대한 많이 보려면 아예 다 한 자리에 모여서 보는게 낫지 않을까? 아직도 한국에 사는 친구들은 비록 각자의 인생을 살고있기는 해도, 사실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 다시 한국에 올지 모르는 나의 경우엔 그렇지가 않았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미래에 미뤄둘 수는 없었기에, 조금은 미안했지만 귀찮았을지도 모르는, 한이와 혜화, 동현이를 제촉했다. 남자 친구들의 경우는 동현이가 대부분 연락처를 가지고 있었고, 여자 친구들의 경우에는 혜화가 연락처를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하나둘 씩 연락을 한 결과 열 명에서 열 다섯 명 정도는 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친구들이 여기저기에 전화를 넣는 중간 중간, 전화기를 달라고 하여 우리 동창들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남자들의 경우엔 아직도 군대에 있는 녀석들이 있었지만, 그나마도 어느 정도는 섭외가 가능했고, 여자들은 그래도 연락이 쉬웠던 것 같다. 관일이와 연락이 닿았을 때, 그 녀석은 대구에서부터 올라온다고 했다. 그리고, 지영이의 얘기가 나왔다.
혜화: 지영이도 연락해볼까?
성현: 지영이? 어??? 지영이??
혜화: 응? 지영이~ 김지영!
성현: 헐...♡ㅋㅋ
성현: 지영이? 어??? 지영이??
혜화: 응? 지영이~ 김지영!
성현: 헐...♡ㅋㅋ
갑자기 너무 당황해버려서 애들이 다 눈치를 채버렸던 것 같다. 수지에서 분당의 장안초등학교에 처음 전학을 갔을 때 유난히 눈에 띄는 예쁜 아이가 있었다. 이후에 특별활동 시간에 리코더부를 들어갔을 때 그 아이를 한번 더 보게 되었고, 어린 시절의 내가 그 때부터 호감을 느꼈던 것 같다. 길게 돌릴 필요도 없이 짧게 말하면, 지영이는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 나 혼자 비밀로 좋아하던 여자애였다.. 라고 생각했는데 왠지 친구들이 다 알고 있었다. 어, 민국이랑 호준이밖에 모를텐데 왜 얘네들이 다 알고 있지? 입싼 녀석들.. 혜화가 지영이에게 연락을 보냈지만, 왠지 집안이 엄해서 그런지 지영이는 동창회에는 나올 수 없다고 했다. 그 때 내가 유난히 아쉬운 표정을 지었었나보다. 이런 나를 흐뭇하게 보고있었는지 혜화가 나에게 지영이의 연락처를 주면서 한 번 연락해 보라고 했다. 그래서, 연락을 했고, 다음 날 만나기로 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이 계획은 일방적으로 취소되서 내가 지영이를 볼 수 있었던 건 좀 더 시간이 지나서였다.) 지영이와 문자로 이야기를 주고 받는데, 문득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간 느낌을 받았다고나 할까. 얼굴이 빨개지고 웃음이 가시지 않았나 보다. 이런 나를 보며 친구들은 그저 웃기만 할 뿐이었다.
성현: 지영이는 내꺼임, 우리지영이임
동현: (깜짝놀라며) ?!, 휴.. (동현이 여자친구와 이름이 같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한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 너네 지영이 해라
송아: ................
혜화: ㅋㅋ.. 너네 지영이 남자친구 있는 거 같은데?
성현: 헐 이럴순 없어! ㅠㅠ
동현: (깜짝놀라며) ?!, 휴.. (동현이 여자친구와 이름이 같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한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 너네 지영이 해라
송아: ................
혜화: ㅋㅋ.. 너네 지영이 남자친구 있는 거 같은데?
성현: 헐 이럴순 없어! ㅠㅠ
송아가 떠난 뒤에도, 지영이 관련 떡밥은 아이스베리에 가서까지 이어졌다. 내가 정말 지영이를 아직도 좋아하나? 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너무 흥분했던 것 같다. 뭐, 그 문제는 나중에 지영이를 만나면 알겠지. 아이스베리에 가자고 한 것은 나였다. 오늘을 위해 동현이나 한이나 혜화나 모두 시간은 비워둔 듯 했지만, 누구 하나 나서서 "야 우리 어디가자, 뭐 하러가자." 이러는 녀석이 없었다. 그래서, 왠지 5년 전에 다른 동창인 민지와 한번 온 적이 있었던 이 아이스베리에 가자고 제안한 것이다. 동창회 때 민지도 곧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아이스베리에서 열심히 빙수를 먹었다.
그리고 나서는 노래방에 갔다. 여담이지만, 혜화는 나와 마찬가지로 노래방을 엄청 좋아했다. 그런 점을 포함에 여러가지 취향이나 성격의 공통점들이, 우리가 한국에 있을 동안 가깝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일 지도 모르겠다. 다만, 이 날은 혜화 혼자만 정말 노래를 잘 부르더라. 한이도 태연의 노래를 부르는 것 같았는데, 귀엽게 잘 부르는 것 같았다. 그에 비해 남자쪽은, 동현이는 천식, 나는 어제 걸린 감기 때문에 잘 부를 수 있는 노래들도 좀 망쳐버린 것 같다. 조현아 너 감기걸렸었니? 노래방이 끝날 무렵, 가족 여행을 가야된다고 해서 동창회 때의 만남을 기약하고 혜화가 떠났다. 그리고 나는 동현이와 한이를 이끌고 또 다시 가르텐비어에 갔다. -_-;; 도데체 몇 번째인가. 일하시는 남자 분이 "어 또 오셨네요" 라며 서비스를 주셨는데, 이 날이 끝이 아니다. 이날 이후로도 몇 번인가 가르텐비어에 더 갔었다.
조금은 차분해진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 대해 물어보고 있었다, 이를테면 그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지. 오랜만에 만나면서 식상해질 정도로 친구들마다 비슷한 이야기들을 꺼내곤 했지만, 이 시점의 나는 내 자신의 진로에 대해 지금보다도 유난히 더 걱정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한이와 동현이는 나와 마찬가지로 외국에서의 생활 경험이 조금 있었다. 그래서인지 - 물론 나와 같은 미국은 아니었지만 - 무언가 공감대가 형성될 것 같기도 했고, 솔직히는 동질감도 느꼈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각자 잘 해나가는 녀석들을 보며, 역시 시간은 흐르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고, 동창회에서 만날 다른 친구들의 안부도 궁금해졌다. 5년 전과 달리 우리는 성인이고, 더 이상 학생이 아니다. 그렇다는 것은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 우리들이 잠시나마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는 기회가 동창회라는 만남이 아닐까라는 생각 때문에 내가 그렇게 동창회에 신경을 썼던걸까? 더군다나 5년 전에는 동현이의 주최로 동창회가 한 번 열렸었는데, 그 때 나는 한국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케줄의 문제가 생겨 참여하지 못했었다.
많은 얘기들을 하다가 동현이와 당구장에가서 사구를 쳤는데 개발렸고, 이제 장안타운으로 가기로 했다. AK플라자 2층에서 보통 마을버스를 타는데, 3-2번 버스가 있어서 타려고 했더니 한이가 저거는 야탑으로 가는 버스라고 절대로 타면 안된다고 한다. 내가 "무슨 소리야? 나 맨날 저거 타니고 다니는데, 저번에 너랑 버스에서 마주쳤을 때도 저거 타고 있었어. ㅡㅡ" 라고 했는데도 절대로 안된다고 우기는 한이였다. 그리고 3-2는 야탑이 아닌 장안타운으로 갔다. "넌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가는데..ㅋㅋㅋ" 옆에서 동현이는 그저 미소짓고 있을 뿐이었다.
장안타운에 내려서 술집을 한번 더 가볼까 하다가, 편의점에서 캔맥주를 들고 장안초등학교로 발걸음을 향했다. 동현이는 성규에게 전화를 해서 잠깐 오라고 했다. 구령대 옆 스탠드에 자리를 잡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셋 다 너무 피곤한 상태였던 것 같다. 더군다나 장안초등학교의 스탠드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그렇게 좋은 경치는 아니다. 건영아파트가 바로 앞을 가로막고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재하가 사는 동이다 ㅋㅋ) 오래전 친구들의 집에 놀러가던 기억들을 추억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역시 경치가 좋은 것 같지는 않다, 그저 졸음이 몰려왔을 뿐. 신기했던 점은 하이니켄을 조금 들이카자마자 왠지 졸음이 가셨다는 것 정도일까? 플라시보 효과인지, 곧 성규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 때문인지는 몰라도. 시계는 이미 열시 반 정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 무렵, 운동장 반대편에서 낯익은 실루엣이 점점 커지는 것이 보였다. 걸음 걸이도 그렇고 꽤 낯익은 실루엣, 예전의 기억이 한 순간에 떠오르는 듯한 그런 녀석이 나와 동현이, 한이가 있는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동현이가 먼저 아는 척을 했고, 그 다음에 내가 인사를 했다. 성규 녀석은 8년 만에 보는데도 정말 똑같구나. 얼굴에 땀을 흘리며 씨익 웃던 옛날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서 너무나 반가웠다.
역시 오랫만에 보는 친구들에게, 성규도 옛날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성규의 기억에 있는 일들이 내 기억에 다 남아있는듯 하지는 않아서 조금 슬펐다. 초등학교 시절 성규와 친하게 지냈던 기억이 났다. 건영두산빌라에 살기 전 연립주택단지에 살았을 때, 성규와 나는 등하교 방향이 비슷해서 늘 다른 친구인 (제)민국이와함께 어울려다니기도 했고, 같이 게임도 많이 했었는데. 그간의 안부를 물어보니 성규는 얼마전에 제대했다고 했다. 아직 군대에 남아있을 녀석들을 생각해봤을 때, 성규는 비교적 일찍 제대한 것 같다. 덕분에, 동창회에 꼭 나오라는 말을 남길 수 있었다.
성규는 6학년 4반의 친구들도 있었지만, 지금은 나와도 한때 친했던 다른 친구들도 있는 것 같다. 현의, 종문이의 이름이 그 녀석의 입에서 나왔을 때, 왠지 그 친구들과도 다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과연 그 녀석들이 내가 기억하는 만큼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한국에 와서 언제나 느낀 것들이지만, 추억이나 그리움, 아련함 같은 친구들을 향한 내 연민의 감정들은 거의 일방적이었다. 그 점이 너무 섭섭했고, 슬펐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가 없다. 다만, 아직도 나를 조금이나마 기억해주는 친구들이 너무 고마웠을 뿐이니깐.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다음 동창회 때 꼭 나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성규는 한이와 함께, 나는 동현이와 함께 헤어졌다. 사실, 경재네 집에서 잤어도 됐을 것 같지만, 휴가나온 동현이를 한국에 있는 동안 더 많이 보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찜질방을 따라가기로 했다. 이 시점에 동현이는 집이 없었다... 라고 하긴 그렇고ㅋㅋ, 아무튼 분당에서 더 이상 살지 않았기 때문에 피곤한 상태로 집에 들어가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찜질방을 가기로 했다. 예전에는 없었던 범한프라자 맞은편 건영상가 지하의 사우나다.
건영 불가마 한증막 사우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분당동 67번지
031-702-8085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분당동 67번지
031-702-8085
시간은 계속 흐르고,
그 속에서 10년 전 같은 교실에서 함께 울고 웃었던 우리들은,
이제 각자의 길에 서있다.
그 길은 예전의 우리가 잠시나마 함께 걷던 길이 아니기 때문에,
그 길이 뻗어나가는 과정에서 더 이상 우리들이 자연스럽게 접점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인위적으로라도 접점을 만들 수 있다면,
나중에 돌아보았을 때, 그 것으로도 우리들은 같은 곳에 서있다,
아니 서 있었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에서야 가지는 만남들의 의미를, 적어도 지금은 모르겠지만,
언젠가 내 안에서 진화하는 나의 일부는,
그 만남들의 의미를 누구보다도 절실하게,
가슴 아프게 실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아닌 다른 녀석들도 그런 실감을 할 수 있다면,
우리는 각자의 길에 서 있어도, 언젠가는 다시 인위적인 접점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8월의 첬째 날, 돌아가기 19일 전의 날.
아쉬움이라는 녀석은 내 안에서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추억 > 2009, 한국 49재 (完)'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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