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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2009, 한국 49재 (完)

삶을 이용하는 태도 - 090713

by 스프링데일 2009. 9. 27.
1130 기상
1300 점심 - 돈가스
1600 이마트 안경픽업
1730 종각에서 민영이
1800 찌겹사돈, 노래방, 스타벅스
2030 청계천
2430 귀가

둔촌동 -> 명일동 -> 강동 -> 종로 -> 분당동

사실 종혁이는 오늘 출근을 해야만 했다.  목요일날 밤을 새고 금요일날 출근하고 밤에 우리와 놀고난  종혁이는 우리가 일어났을 때 이미 출근하고 없었다.  이모부도 이미 출근하셨고, 종혁이의 할머니는 노인정에 가 계신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일어났을 때는 이미 점심이었다.  오늘까지 휴가를 내신 이모와 미례누나는 아직 있었고, 전날 내가 먹고싶었던 돈가스 재료를 사신 이모는 내가 한국에서 먹어본 가장 맛있는 돈가스를 만들어 주셨다.  식사 후 조금 있다가 어제 주문해 둔 준현이의 안경을 픽업하러 이마트에 갔다가, 이모는 5호선 강동역에 우리를 내려주셨다.  조만간 다시 찾아뵙겠다는 인사를 드리고, 준현이도 자신의 스케쥴이 있어 각자 헤어졌다.  내 스케쥴은 종로에서 민영이를 만나는 것.  오후 다섯시에 만나서 '찌겹사돈' 이라는 특이한 고기구이집을 가기로 약속했었다.

민영이는 내가 미국에 있었을 때 부터 나를 어디로 데려갈 지 이곳 저곳 많이 알아본 것 같았다.  찌겹사돈은 테두리에 김치찌개가 있고 가운데의 불판에 고기를 구워먹는 특이한 불판을 쓰고 있었는데, 민영이는 이런 곳을 정말 어떻게 찾았는지 나로써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넌 정말 대단해 민영아! ㅠㅠ  간신히 지하철을 타고, 종각에서 내려 민영이를 만났다.  오늘의 스케쥴은 나도 역시 미국에 있을 때 부터 민영이와 계획했던 것.  사실 오늘이 처음 만나기로 한 날이었지만, 우리는 며칠전에 수유역에서 조금 더 빠른 재회를 했었다. 밥을 먹고 조금 돌아다니다가 캔맥주라도 하나 들고 청계천에서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많은 얘기들을 하기로 한 날.  찌겹사돈의 맛은 일품이었고, 특히 신기한 불판 덕분에 보는 재미, 먹는 재미를 다 갖추고 있었다.  여담이지만 일하는 분들이 거의 우리와 비슷한 연배의 분들로 보였는데, 다들 잘생기셔서 조금 부러웠다.  식사를 끝내고 노래방에 들어가 맥주를 두 캔 가져왔는데, 알콜도 없었다, 젠장.  시간은 어느덧 여덟 시를 넘어서 종로는 그 명성에 걸맞게 밤이 되자 더욱 더 밝고 활기찬 거리가 되어있었다.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사서 민영이와 청계천을 걷기 시작했다.  이명박이 서울시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고가도로를 철거하고 건설한 물길인데, 그 청계천의 자연친화적 요소, 자원낭비적 요소, 환경파괴적 요소를 모두 차치하더라도 청계천은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 시간에도 걸어다니는 것을 보고 나는 다시 한번 서울의 치안에 놀랐다.  조금 걸어가며 두어 개의 다리를 지나다가 세 번째 쯔음 다리 밑에 앉을 공간이 마련되어 있길래 그 곳에 멈췄다.  물이 흘러가는 소리를 보고 들으며 민영이와 나란히 앉아서 서로의 성장과정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 날 나는 민영이 녀석을 완전히 새로운 녀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니, 내가 알고 있던 기억 속의 민영이는 민영이의 극히 일부였다.  물론 내가 기억하던 민영이의 모습도 그 일부에 포함되지만, 그 일부는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많이 달라진 것 같다.  내가 알게 된 부분은 내가 알지 못하는 그 일부를 제외하고 민영이의 자아를 구성하는 커다란 부분이었다.

민영이의 성격은 어린시절의 나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서로의 성격을 구성하는 의식역 아래 심층심리는 아마 우리가 어느 정도 가까운 동네와 비슷한 환경 속에서 자라났기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닐까.  아마도 어린 시절에 형성된 그런 성격들인 것 같다.  우리는 둘 다 너무 소심했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런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인간관계에 있어서 너무나 섬세하기 때문에, 새로운 인맥 - 친구 - 를 만드는 것에 서툴다.   그리고 새로운 인연이 생겨도 자신이 상처받을 까봐 일부러 마음에도 없는 거친 행동을 하기도 해서 오히려 그 인연을 망쳐버릴 때도 있다.  어린 시절 나의 경우에는 민영이보다는 조금 둔했다.  오히려 나보다 더 소심한 아이들이 나의 눈치를 본 적도 있었으니, 아마도 나에게 있어 그런 성격은 내가 뼈저리게 느끼기 시작한건 4학년 이후에 수지와 분당으로 비교적 자주 전학을 가면서 생긴 것 같다.  민영이는 여자아이라서 그랬던 걸까? 그녀의 말에 의하면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많이 거칠었다고 한다.  입이 거칠기도 했었는데, 이 부분은 리코더를 함께 하던 시절 내가 기억하는 그녀의 모습이다.  상대방에게 그렇게 강한 척을 했지만, 그녀는 항상 외로웠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깔보임 당하지 않는 다는 점에서는 그녀의 행동이 적절했을지 몰라도, 친교를 삼기에도 분명히 문제가 있는 행동이었을 것이다.

같이 합주단에 있던 시절, 나는 민영이를 무서워했다.  무언가 눈이 마주쳐도 서로 인상을 쓰면서 피하기 일수였고, 그런 그녀에 대해 나는 리코더로 그녀가 나를 무시할 수 있게 만들겠다고 다짐하고는 했지만 언제나 나의 게으름, 그리고 민영이의 성실함 때문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나는 항상 스스로가 민영이보다 몇 수 아래 있다는 자격지심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또한, 그런 강한 이미지의 민영이를 동경하면서도 두려워했다.  그런 강한 아이인줄 알았던 민영이가 사실은 속마음이 나보다 여린 아이었다는 것은 나에게 상당히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가 알고 있던, 아니 안다고 생각했던 한 사람의 성격이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렇지 않은 정도가 조금 심했다,  어쩌면 많이.

민영이는 자신의 전환점, 그러니깐 성장할 수 있었던 시기를 중학교 때로 꼽는다.  인연의 형성과정에 대해서는 생각이 잘 나지 않지만, 민영이는 자신과 맞는 소중한 친구들을 이 시절에 많이 만났다고 고백한다.  이 친구들은 - 민영이의 말에 의하면 - 소위 민영이에게 공부를 권장하는 그런 학구적인 친구들은 아니었지만, 사람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것들 중 하나 - 성격 - 의 의미로 민영이를 깨우쳐 주었다고 한다.  아니면 민영이가 스스로 깨닫고 성격을 바꾼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최소한, 그 친구들이 민영이에게 무언가 개방적이고, 밝고, 긍정적인 마인드가 심어지는데 지대한 영향을 준 것은 맞는 것 같다.  부작용이라면 친구들과 노느라 그렇게 열심히 하던 리코더도 한번 빼먹은 적이 있다고 한다 ㅋㅋ. 중학교 시절 나에게도 나타났던 자살심리는 민영이도 가지고 있었고, 나보다도 더 큰 외로움을 탔던 그녀는 심리적으로 굉장히 절망적이고 불안정한 상태였다고 한다.

어떻게 된 것일까.  나는 한 번 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나에게 서스럼없이 말해주는 민영이에 대해 조금은 놀라움을 느꼈다.  그녀에게 있어 나는 그런 이야기들을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존재인걸까, 아니면 그런 과거의 일들은 이제 훌훌 털어버렸기 때문에 이제는 흉터밖에 남지 않은 상처처럼 생각한다는 걸까?  후자라면 나는 민영이와의 관계를 조금 더 진지하게 - 내 입장에서도 과거를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는 정도의 마음과 신뢰를 주고 사귀어도 되는 친구, 전자의 경우라면 성장해버린 민영이를 존경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받아 들인 의미는 사실 양쪽 다였다.  후자는 사실 같았고, 전자의 경우에는 내 희망사항이기는 하지만, 나는 민영이란 아이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어졌던 것인지도 모른다.  중학교 시절 민영이는 지금까지도 연락하는 평생의 친구를 만난 듯 하지만, 사실 그렇기 때문에 어른들이 흔히 말하는 비행 같은 것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 때 나는 엄마에 의해 강제로 리코더를 그만 두고 영재교육학술원에 다니고 있었고, 무언가 계속 엄마에게 통제 당하는 인생을 살고 있었기 때문에, 민영이와는 조금 다른 길을 걸었던 것 같다.  무언가 나와 민영이는 중학교 때 무언가 주변 환경, 그리고 그 주변 환경에 대처하는 자세가 극과 극을 달렸던 것 같다고 생각하니 참 재밌었다.  같은 리코더를 했지만 서로 어렸음에도 불구하고 연주 스타일도 달랐고, 단원 활동에 임하는 자세도 많이 달랐던 것 같다.

여기서 조금 더 자세히 그녀의 이야기를 하게 되면 그 것은 그녀의 사생활을 허락없이 내 마음대로 말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만 두겠지만, 민영이의 친구들은 항상 그녀가 어려울 때 옆에 있어주었다고 한다.  아직도 미인이셨던 모습이 기억나는 민영이의 어머니는 어느 날 민영이의 친구들을 모두 모아놓고 식사 대접을 하시며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내가 너희들이 민영이에게 어떤 나쁜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서는 이것 저것 마음에 안드는 것도 있지만, 너희가 우리 민영이 성격을 바꾸어 준 것은 정말로 고맙다."

그런 민영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녀가 조금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친구들의 이야기가 나와 문득 미국에 있는, 그리고 한국에 있는 나의 소중한 친구들이 생각났는데, 민영이와의 대화로써 아마 내가 그 녀석들을 조금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된 계기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민영이도 이제는 그런 친구로 생각해도 될 것 같다.  어렸을 적 부터 존재하던 민영이와 나 사이의 마음의 벽이 한 겹, 어쩌면 수 겹 벗겨져 나간 것 같다.  혹은, 이제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두 시간 여 동안 정신 없이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 뒤에서는 술판도 벌어지고 커플들이 염장질도 하고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는데, 나는 처음 부터 끝까지 약간의 담배만을 가지고 민영이의 얘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런 소중한 친구를 가진 민영이가 조금은 부럽기도 했다.  아니, 그렇다고 내 친구들이 민영이 친구들보다 못났다는건 아니고ㅋㅋㅋㅋ 내 친구들도 다들 잘났거든요.

조금 더 얘기를 하다 보면 너무 귀가 시간이 늦을 지도, 아니면 버스를 놓칠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어 이야기를 접고 버스 정류장을 찾았다.  내가 타는 버스의 정류장을 알아두고, 민영이가 타는 정류장까지 바래다 주었다.  이 때 또 새로운 것을 배웠는데, 서울과 경기도 (다른 지역도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지역의 버스 정류장들은 각 고유번호가 있어서 핸드폰 음성이나 인터넷으로 몇번 버스가 몇 정거장 전에 있고 몇 분 후에 오는지 알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나는 정말 미개인이 된 것일까.   이후에 이 안내 정보를 꽤 자주 이용했던 것 같다. ㅋㅋ

민영이와 다음에 만나기를 약속하고, 나도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영중이는 아직 안 자고 있었고, 이 날 아침에 안경재 녀석에게 전화가 왔었다고 하는데 영중이가 나에게 영어를 배울 것이라는 얘기를 했더니, "그 녀석한테 배울 거 없을걸?" 이라고 비꼬고 끊었다고 한다.

개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