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올해 죽었다..
내 선택이 맞는 걸까?
사실 내 선택이라고 할 부분은 없었다.
나의 희망이나 선호도 같은 건 있었지만 의사 결정에 대해서 내가 정할 수 있는건 당연히 아무 것도 없었고, 그 때마다 권한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과 동의를 구했을 뿐이다.
그리고 작금의 상황에서 나는 이것저것 할게 많을 것 같다. 아무래도 여기서 얻을 수 있는 보상은 없을 것 같다. 보상을 얻을 수 있다면 물론 더 좋겠지만, 그냥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는 것일까.
예전에 몇 명의 사람들은 나를 지독히도 싫어했던 것 같고, 몇 명의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몇 명의 사람들은 나에게 계속 호의를 보내주었었다. 수 년이 지나 마지막 그룹의 사람들을 모두 한 곳에서 만나게 되었고, 나도 그들을 위해 무언가를 보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해관계가 충돌한다. 나에게 호의적인 이 사람들은 서로에게는 뭔가 적대적인 것 같다. 나는 그들이 모두 잘 되었으면 좋겠는데, 그들은 서로에게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나는 결정권이 없고, 그저 시키는 일을 하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약간의 부분에서 양쪽에 이득이 되는 일을 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나는 어차피 아무도 믿지 않는다. 내가 믿는 것은 대가 없이 보여준 호의들 뿐이고, 그 호의에 보답하는 것이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이다. 나는 이 방식에 대해서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은 없다. 그 언젠가 절망의 상황들 속에서도 나에게 호의를 보여줬던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것, 그들은 나에게 - 물론 그들이 원할 때만 - 보답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올해는 정말 많은 일들이 있을 것이고, 결과물 정도는 나오겠지만 내 손에 들어오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결과물들이 장기적으로 내 스스로와 나에게 손길을 내어준 사람들에게 도움될 수 있다면, 어떻게든 답파해내 보일 것이다. 제한 시간은 올해 12월까지.
한편 내가 어릴 때 생각하던 꿈의 직장에서 연락을 받았다. 나는 첩보원같은게 그렇게 멋있어보일 수가 없었는데, 국정원 안기부 같은 곳에서 일하기를 꿈꿨었다. 그렇지만 결국 거기도 사람사는 곳이고 다른 회사처럼 여러가지 역할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 것은 한참이 지난 후였다. (같은 맥락에서 어릴 때 나는 군대는 다들 총만 쏘는 줄 알았지만, 인사과도 있고 재정과도 있고 연구소도 있고 여러가지가 있다는 것을 한참이 지난 뒤에 알았다)
이 곳은 분명히 어릴 때 생각하던 꿈의 직장이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그 꿈의 기준이 조금 달라지긴했다. 요즘의 난 돈이 많고 마음이 편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지금의 회사는 몸은 불편하지만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내가 하는 일도 재미있는 일들이 많다. 다 잘 됐으면 좋겠는데,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이 동네의 한인 단체나 교회같은 것은 - 물론 시도를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 예전부터 거리를 두어왔었다. 친목질 / 계모임같은 것들은 물론 그 자체로 의미가 있긴 하겠지만 먼 땅에서 자기들끼리만 뭉치는 것은 반대로 본인들이 차별당해도 어쩔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것 같다는 비뚤어진 생각이 있다. 나는 기독교가 많은 서유럽이나 남미에 선교를 간다는 교회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아무튼, 그렇게 시간이 흘러 몇달 전 조금은 달라보이는 어떤 단체의 행사에 참여했었는데, 여기는 그런 비뚤어진 느낌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 단체가 주최하는 새로운 이벤트의 자원봉사에 참여하기로 결심했다. 오늘은 그 자원봉사의 예행연습을 하러가는 것. 이번 선택에서 또다른 무언가의 의미를 찾을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예전에 엄마는 월드컵 자원봉사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이민오느라 결국 못했지만.
올해가 지나가고 뒤를 돌아보면 또 어떤 느낌으로 남게될지 궁금하긴 하다.
어떻게든 될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 처럼.
일기/비망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