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터넷에서 "의외로 한국과 거리풍경이 비슷한 나라" 라며 사진들을 본 적이 있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고 앞으로도 갈 일이 있을지 잘 모르겠는 알바니아 였는데, 동유럽의 한 나라의 뒷골목 모습이 한국의 그것과 많이 다르지 않은 것 같아 신기했던 적이 있다. 생각해보면 대만과 홍콩을 가기 전에 막연한 이미지가 있었던 적이 있는데, 이 나라들을 가보고 한국, 일본과도 그렇게 다르지 않아 - 물론 전통적인 것이나 세세한 부분은 차이가 있겠지만 - 친숙하면서도 한편 사람들의 사는 형태가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일본의 경우는 조금 일찍 근대화를 했었기 때문에 우리와 비슷하면서도 좀 다른 부분이 있는데, 한편 대만의 산속은 또 그런 일본의 산속과 비슷한 풍경이 있었다. 산속에 다니는 전철까지.
홍콩에서 하루는 쿠빌라이가 세운 원나라 유적이 있다 그래서 지하철을 타고 간 적이 있었다. 환승 시스템이나 지하철의 모습,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모습, 지하철이 지나가는 신도시와 아파트의 모습들이 한국과 많이 다르지 않아 신기했고, 한편 세세한 부분이 조금씩 달랐기 때문에 그건 그것 대로 신기했었다. 몽골에서 시작한 쿠빌라이가 어쩌다가 이 남쪽 땅까지 오게 됐는지 신기해서 가본 것도 있었지만, 그 유적 자체보다도 유적까지 가는 길이 신기했던 것 같다.
지하철역에서 내렸을 때 주변에 펼쳐진 풍경은 한쪽으로는 아파트의 숲, 그리고 다른 한 쪽으로는 왠지 구도심으로 보이는 곳에 연립주택들이 펼쳐져 있었다. 이곳의 풍경은 예전의 분당과 비슷했는데, 아직 정자동과 궁내동, 판교 쪽이 개발되기 전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이 곳도 분명히 누군가가 도시계획을 세우고 개발을 했겠지, 그리고 사람들이 모여살기 시작했을거고, 그런 생각을 하며 유적을 지나 사람들이 사는 길거리를 계속 걸었다. 창문의 모습이나 옥상에 설치된 안테나, 쓰레빠를 끌고 다니는 동네 아저씨들, 이런 연립주택의 1층에 가게들이 있는 것까지도 예전 분당동과 백현동의 그것과 비슷했다.
어느 순간 비가 많이 내리기 시작해 아무 카페나 들어갔다. 아이스커피를 시켰는데 의사소통이 생각보다 잘 되지 않아 다른 커피가 나왔고, 좋은게 좋다고 그냥 하나 더 시켜서 두개를 먹으며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창가를 내려다 보았다. 먼지가 내려앉아 흙탕물로 변했지만 한편 먼지가 내려앉은 듯한 냄새가 무언가의 친숙함을 더했고, 단지 한글이 아닌 한자가 쓰여진 한국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다른 날에는 홍콩과기대 근처를 한밤중에 걸어다녔는데, 돌담길, 길에 깔린 보도블럭, 돌아다니는 버스, 그리고 밤새 불켜진 대학교의 모습과, 심지어 대학교 건물들도 한국의 그것과 비슷해서 신기했다. 어느 쪽이 어느 쪽을 따라하거나 그랬기 보다는 비슷한 문화권에서 수렴진화한 모습이겠지. 호텔로 돌아오는 택시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던 노래들도 광동어였지만 멜로디가 친숙했다.
다음 여행 목적지는 싱가폴이었는데, 어쩌다보니 아직도 싱가폴은 가지 못했다. 싱가폴도 당연히 멋진 곳이겠지만, 내가 환상을 가졌던, 가고 싶었던 나라들이 생각보다 그렇게 특별한 모습을 갖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점점 실감하면서 기대감이 약간 떨어진 것도 있다. 역으로는 이 나라들에서 한국으로 놀러오는 관광객들도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다. 친숙함과 이질감의 그 중간 어느 사이에서 아시아는 예전부터 좋든 싫든 직간접적인 교류가 많았나보다. 유럽 나라들도 아마 그랬겠지?
일본도, 대만도, 홍콩도 모두 좋았다.
언제까지 방랑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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