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재미없어진 이유

# 문과

생각해보면 나는 언제나 이과보다는 문과였다.  수학을 못하지는 않았지만, 그냥 그건 수학이 재미있었던 것이고 고등학교쯤 부터 나의 문과 성향을 알게 되었다.  영어로 진행해야하는 수업은 너무 어려워서 영어 점수는 늘 바닥이었지만 이상하게 사회나 역사, 경제는 계속 A가 나왔고, 수학은 선생님들이 너무 알기 쉽게 잘 가르쳐줘서 A를 받는 법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특히 어려워했던건 미술과 통계였는데 다행히 미술은 예체능이라 음악으로 대신할 수 있었다.  그런데 수학도 지금와서는 많이 까먹은 것을 보면 내가 문과였던건 확실하다.

9학년 때는 일반 과학, 10학년 때는 생물, 11학년 때는 화학, 12학년 때는 물리로 이어지는 테크트리였는데 솔직히 원리가 하나도 이해가 안갔다.  다행히 물리는 같은학년에 배우던 calculus랑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어느정도 선방했지만, 나머지는 공부를 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성적은 계속 잘 나왔지만 원리를 전혀 몰랐다.  중학교 때 기술이나 가정과목은 말그대로 외우는게 전부였는데 이 과학녀석들도 늘 외워서 시험을 봤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계속 음악을 조금 좋아하고 컴퓨터를 조금 만질 줄 아는 문과충으로 계속 살아왔던 것 같다.

내가 좋아했던 것은 역사와 사회, 정치, 외교 등의 분야였다.  이 중 역사와 사회는 지금도 재미있게 보는데, 정치는 어느 순간 흥미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대학교 때까지만 해도 정치나 외교에 관심이 많아서 이것 저것 활동도 하고 글도 많이 썼었는데, 지금와서는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을 정도로 관심이 없어졌다.  노무현 연설을 보고 피가 끓었고, 김영삼의 민주화 운동도 좋았고 군정시대나 산업화시대의 발전, 사회적 문제들을 들여다보는 것도 좋아했다.  한국만이 아니다.  일본이나 중국, 대만, 몽골 등의 역사도 재밌었고 미국이나 유럽의 역사도 재밌었다.  동남아시아랑 아프리카랑 인도는 잘 모르겠다..

나는.. 정치의 구조나 체제는 아직도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현실을 반영하는 정치에는 관심이 없어진 것 같다.  뉴스를 조금만 읽어도 대충 큰 그림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보이는 것 같고, 큰 틀에서는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이기적이더라도 자신들이 잘되기 위해서라도 사회를 잘되게 해야만 한다는 사명감이 있는 것 같다.  

신현실주의 이론이 나왔을 때 세상은 두개의 슈퍼파워가 있었지만, 지금 중국이 예전 소련의 역할을 대신해서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갈 것 같지 않다.  요즘 세상은 그냥 일극, 양극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초강대국이 하나 다시 튀어나와도 다들 자기멋대로 하려고 할 것이다.  이스라엘이나 이슬람극단주의자들 처럼 강한 신념을 갖고 있는 애들이 그런 힘을 갖게 된다면 이야기가 또 달라지게 되겠지만, 요즘의 세상은 그들을 존중은 해줄지언정 종교나 정치등의 이유로 다같이 죽자는 식의 행동은 하지 않는다, 왜냐면 그게 그들 스스로에게도 손해가 된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서, 그리고 최근의 현실을 통해서 많이 체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벨 에포크의 시대와 전간기의 시대 동안에도 사람들이 이런 인식들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기술의 발전, 그리고 그것에 대한 부작용을 경험함으로써 전 인류가 힘을 합쳐 더 이상 세상을 좆되게 만들지 않을거라는 허상 뿐인 믿음.  그 때는 허상이었다.  그런데, 2차대전은 사실 1945년에 끝난게 아니라 소련이 망하고 20세기 말에 동아시아가 한번 무너지고 21세기 초에 미국도 한번 삽질을 하고나서야 끝났다는 생각이 든다.  한반도는 아직 그 연장선에 있지만 어느 한쪽이 정말 말도 안되게 무너지는게 아니면 아마 전쟁은 다시 일어나지는 않을 것 같다.  통일은 아마 한쪽이 망해가는 과정에서 대등하게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남한은 경제력이 있고 북한은 핵이 있으니깐.  서로를 적대하고 있지만 사실 적대적 공생관계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북한의 지도자가 계속 정신줄을 붙잡고 있고, 남한의 지도자가 될 사람들 중에 이런 대결을 정치로 이용하려는 사람이 없다면...

미국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미국의 사회 문제들 중 극히 일부밖에 파악하고 있지 못하지만, 아마 미국도 계속 잘 지낼 것이다.  예전처럼 세계의 경찰같은 포스는 더 이상 없지만, 그건 미국이 약해졌다기보다도 다른 나라들이 점점 더 잘 살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인종 차별등의 문제가 남아있지만, 점진적으로는 다 통합될 것이다.  사회 보편적 가치를 제공했던 로마의 역사가 흘러가면서 본토가 아닌 속주 출신의 황제가 나오고, 이민족 출신의 황제가 나왔던 것처럼.  그리고 미국자체가 어쨌든 순혈주의는 이제 없어졌으니깐.  처음에는 영국계가 아일랜드계나 독일계를 압도했고, 기독교가 카톨릭을 압도했다고 한다.  그러나 케네디는 아일랜드계면서 카톨릭이었고, 오바마는 미국 노예 혈통의 흑인은 아니지만 어쨌든 대통령을 했고, 트럼프도 대통령을 했다.  그리고 이제는 할배가 대통령을 한다.  그래도 미국 사회는 거시적으로는 커다란 문제가 없다.  예전 소련도 마찬가지였다.  스탈린 이후로 서기장은 언제나 금방 죽는 산송장들이었다.

이런 안정화된 사회에선 사실 미친놈이 튀어나오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기술의 발달로 사람들은 보다 정보를 습득하기 쉬워졌다.  70년 전만해도 유럽의 저명한 학자들이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찬양하고, 좌파 장폴사르트르는 석학이라는 주제에 한국전쟁이 북침이라는걸 그냥 믿었다.  위안스카이는 죽기 직전에 위안스카이 단 한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신문을 읽으면서 아직도 자기가 세상을 다스리고 있는줄 알았다.  사람들은 제한된 정보의 습득이 자신들을 얼마나 잘못된 길로 이끌 수 있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이건 나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결국 나는, 제한된 정보로 군중을 선동하는 정치가들이 싫다.  그게 사실 정치의 본질이지만.

내 나이대의 사람들이 슬슬 사회에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다.  대기업의 임원들이나 청년사업가들이 나오는가 하면, 요즘 이준석은 한 정당의 당대표에 도전하고 있다.  그 예전에 김영삼보다도 더 젊다.  세대가 바뀌는 것이고, 슬슬 우리 세대가 사회에서 주도적 역할을 할 시대라는 것이다.  이는 미국도 예외는 아니라서... 젊은 세대는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오바마가 있었고, 이번의 해리스도 비슷하다.

# 조국 손혜원 김의겸

어느 닫힌 사회에서나, 열린 사회에서나 보통 1등 2등은 문제가 없다.  100명이라고 치면 보통 문제는 한 3등부터 20등까지다.  21등 밑으로는 자기 주제를 알거나, 자기들끼리 싸워도 사회 전체에 악영향을 끼칠만큼 능력있는 놈들이 아닌데, 이 3등부터 20등까지 놈들은 능력이 꽤 있는 놈들이고 야심도 있어서, 자기들도 1등을 할 수 있을 줄 안다.  단지 배경이 없어서, 운이 안좋아서 1등을 못했다고 생각하는 놈들.  그래서 1등을 공격하고, 1등이 제시하는 가치와 비전을 공격한다.

그리고 한 21등에서 50등 정도 되는 놈들 중에는 자기가 3등 정도 까지는 될 수 있다고 착각하는 놈들이 있는데, 바꿔 말하면 기득권급은 아닌데 기득권처럼 살고 싶어하는 놈들이 그 밑의 51등부터 100등에게 자신들을 기득권이라고 인정받으려고 한다.  조국 가족이 능력이 있었다면 자식들을 그렇게 부정입학시킬 필요가 있었을까? 그냥 자식들이 공부를 잘했으면 아무 문제 없었을 일이었다.  능력이 안되는 자식들을 기득권으로 만들려다가 탈이 난 것 뿐이다.  이런 점에선 최순실이 조국보다 낫다, 정말.  목포의 개발 예정지에 사돈에 팔촌까지 동원해서 차명으로 땅을 사는 손혜원, 한겨레 출신에 정의를 부르짖던 김의겸이 흑석동에 영끌해서 집을 사는 걸 보면... 일단 "영끌" 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 부터가 기득권이 아니다.  그냥 기득권급은 아닌데 기득권처럼 살고 싶었던 사람들인 것이다.  이런 분수를 모르는 욕망이 그들을 파멸로 이끄는 것이다.  왜 아무도 조국을 안챙겨주고, 손혜원 김의겸이 위성정당에 아직도 갇혀있겠는가.  그들이 능력이 됐으면 이미 돌아가고도 남았을 것이다.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유시민이 정치계로 못돌아오는 이유도 비슷하다.  내가 옛날에 좋아했던 유시민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정치를 안하고 싶어한 적이 없었다.

# 추미애

추미애는 기득권층으로 시작한 인생은 아니었지만 위 세마리와는 다르게 본인의 능력으로 기득권으로 입신한 대단한 사람이다.  그는 사실 법무부장관 따위를 할 레벨이 아니라 훨씬 높은 사람이었다.  의전서열만 봐도, 망하긴 했지만 새천년민주당/새민련 당대표급이였고 노무현 탄핵까지 앞장설 정도였다.  그는 노무현과 붙어볼만한 사람이었지, 노무현 따까리들에게 물어뜯길 레벨은 아니었다.  지금도 나의 마음 속 한켠에는 추미애는 외로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왠지 그는 법무부장관도 원해서 한 것 같지는 않다.  이전 동교동계 사람들이 점차 역사 뒤켠으로 사라진 것처럼 그도 후배격인 노무현의 망령들에게 이용당하다가 사라지게 되는 수순인 것 같다.  단지 상도동계의 김무성보다도 훨씬 젊은 나이에 은퇴하게 생겼다는 것 뿐.  삼보일배가 아깝게 됐다.  남들이 공부안하고 학생운동할 동안 공부해서 판사가 되었기 때문에 김대중라인은 몰라도 노무현라인은 타기가 힘들었다.  심재철이나 김문수, 하태경을 좌파애들이 함부로 못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된다.

# 유승민

멋있고 똑똑하고, 정말 잘났는데 자기만 잘났다.  입바른 소리는 정말 잘한다, 왜냐면 자기는 그 입바른 소리들을 다 지킬 수 있거든.  사생활까지 깨끗한 것만 봐도, 그의 이미지를 봐도 답이 나온다.  문제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처럼 똑똑한줄, 똑똑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너무 귀족같이 살아오신 것 같고 계속 귀족으로 계실 것 같다.  그래서 대통령은 못될 것 같지만 이 아저씨가 너무 멋있고 부럽다.  다나카 가쿠에이랑 후쿠다 다케오의 대결을 생각해보자..

# 윤석열

나는 고지식해보이는 이 아저씨가 좋다.  그 고지식함이 권력을 잡으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자기 추천해준 민정수석을 나쁜놈이라고 현행범으로 수사하는 검찰총장이라는 인식을 전국민에게 심어줬는데 이 임팩트를 누가 이겨... 홍준표가 옛날에 박철언 집어넣은 것 이상이 아닐까 싶다.  다만 확실히 해야할 것은 조국은 박철언 급은 아니다.  그가 대통령이 되면 어떤 사람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홍준표도 대통령이 안된걸 보면 운이나 이미지 이런 것도 정치에는 중요할 것이다.  이재명 아저씨가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임팩트가 꽤 쎄긴한데, 지금으로서는 윤석열 아저씨한테는 안될 것 같다.  워낙 이미지가 포청천이라서.

# 벨라루스

벨라루스에서 야당 정치인을 탄압한다고 외국 민항기를 강제 착륙시켰다는 뉴스를 봤다.  아직은 상식적으로 돌아가지 않는 사회의 나라도 있긴 한 것 같다.  전두환이 잘한것도 많고 올해 90살인데 왜 아직까지 소환을 받고 있겠는가.. 

# 정치가 재미없어진 이유

정치가 재미없는 이유? 당연한 것이다.  정치인들이 만들거나 바꾸는 정책들이 당장 내 삶에 변화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누가 되더라도 왠만하면 내 삶에는 영향이 없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과세 구간이 바뀌고 세금을 조금 더 걷는다고 내가 굶어죽을까?  누가 되더라도 거기서 거기이다.  거기서 거기인 만큼 나쁜놈들이라는 말일 수도 있지만, 거기서 거기인 만큼 그렇게 나쁘지 않은 놈들이라는 말도 된다.  우매한 사람들은 조국이나 김의겸, 손혜원같은 놈들이 흘리는 제한적인 정보에 계속 선동당하겠지만, 이것도 기술이 발전되면 좀 나아질 것이라고 감히 희망해 본다.  진짜 고소득자, 기득권층 몇명을 제외한다면 요즘 시대에 정권이 바뀐다고 그렇게 많은 국민들의 삶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1억은 큰돈이지만, 1억 때문에 사람 목숨이 왔다갔다해야하는 사회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근데 오늘 한국 뉴스에서 좀 골때리는 걸 읽었다.  임대사업으로 연 4500만원을 버는 사람이 정책 변경으로 인해 임대사업자에서 다주택 투기자로 신분이 변경되어서 세금으로 4800만원을 내어야 한다는.  이런건 좀 어이가 없긴 하다... 정권의 변화로 당장 사람들의 생계에 영향이 가는 경우가 실제로 있다니.  더군다나 이 사람은 그렇게 돈을 많이 버는 사람도 아닌 것 같던데.

한편 한국 굴지의 대기업 사장들이 경제사절단으로 미국까지 와서 대규모의 투자를 약속하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이런 사람들이 정권의 변화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일 것이다.

국민들이 나설 때는 한 가지 경우이다.  개혁이 필요한 시점에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아 사회 전체가 무너져 갈때.  요즘 일본은 조금 개혁이 필요한 것 같지만, 그 외에 나랑 관련이 있는 나라들... 예를 들어 한국 중국 미국은 잘 모르겠다.  체제는 조금씩 다르지만 그 형태는 상당히 안정되어있는 편인 것 같다.  이런 나라들은 어떻게하면 앞으로도 후대까지 안정적으로 잘 이어질 수 있을지, 미래에 대한 고민과 준비를 많이하면 될 것 같다.

누가 되든 똑같을 것이다.  다만 미친놈이 갑자기 튀어나오지 않게, 그리고 결과는 몰라도 기회는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 노력한 만큼의 기회를 얻을 수 있게 - 돌아가는 사회가 될 수 있었으면, 만약 이미 그렇게 돌아간다면 그걸 유지하는 사회가 될 수 있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