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가깝다고 생각했던 한 친구와 척을 지게 되면서 지금까지의 가치관을 다시 한 번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성향이나 성격같은 것은 많이 달랐지만 그래도 비슷한 처지의 생활을 하고,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고민을 겪으며 서로를 위로하고 응원해주던 그런 친구였던 것 같다. 관계의 길이도 그리 짧지는 않아서 거의 성인이 될 때 쯤부터 - 아마 아직 대학을 가지 못했 시절 - 그 녀석이 해줬던 "조금 멀리 돌아가도 천천히 가면 된다" 라는 뉘앙의 말은 나에게 어떠한 시금석이 되었고, 물론 그 일이 있고나서 바로 내 인생에 변화가 생긴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10년이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 돌아보면, 그 사이에 대학교도 나오고, 취직도 하고, 학자금도 갚고,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예전엔 상상도 못했던 자동차도 굴려보는 중이니 조금 천천히 돌아오기는 했지만 어쨌든 뭔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은, 적어도 이 미국 땅에서는 통하는 말일 것이다. 지금도 내가 '어느 시점인가에' 조금만 더 노력하고 다가올 미래를 보낼 스스로의 인생에 대해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했다면 '어느 시점인가에' 내가 살고 있는 방향의 표지판이 지금보다도 조금은 더 나은 곳을 가르키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노력은 무언가의 대가를 준다. 그러나 내가 바친 것은 노력만이 아니라 시간도 있었다. 제한된 기간의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그 제한된 기간 동안에 얼마만큼의 노력을 하냐에 따라 스스로에게 만족할 수도, 못할 수도 있는 것이리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제는 내가 늙어가는 것이 아닌가 걱정되고, 하루 하루가 급수처럼 너무나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보면서 - 정신 차리면 일주일이 지나고, 또 일주일이 지나 - 이러다가 정신 차려보면 벌써 임종을 준비해야될 때가 되는 것이 아닐까 걱정된다.
조금은 이야기를 돌려보자. 스마트폰이나 암 치료 로봇들이 소개되고 있는 엄청난 과학 기술과 사상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발전의 시대에서 그 일원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앞으로 인류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조금이나마 기대감을 가질 수도 있고, 이런 것들을 경험하지 못했을 과거의 인류에게 혼자만의 우월감 같은걸 느끼기도 하지만, 가끔 우주 밖 어디에선가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진 행성이 있고, 태양의 500만배가 넘는 블랙홀이 존재하고, 지구와 비슷한 환경을 가진 별들이 몇 광년안에 있고, 또 뇌를 스캔하여 전뇌 (電腦) 화 시킨다는 이야기들을 듣다보면, 너무나 일찍 태어난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누군가는 현재의 시대를 이끌고, 대통령이 되기 위해 사회와 대면하고, 종의 발전을 위해 새로운 사상을 요구하지만, 난 그런 사람들에게 이끌려가는 사람이지, 이끄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에 조금은 불만이 생긴다. 결국 너무나 일찍 태어난 시점에서도 나는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으로 남는 것일까.
잘 모르겠다.
꾸밈없이 기뻐하고, 슬퍼하고, 사랑하고, 화나던 시절이 언제였을까? 나이가 들면서 변한 것은 감정이라는 것이 더 이상 감정이 아닌 무언가의 인위성이 더해진 것이라는 것이다. 작은 일 하나에도 두근거리던 시절은 뒤로 가버렸고, 이제는 뭔가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상황인 것일까. 30대라는 것은 정말 이렇게 잔인한 것일까? 뒤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다. 나보다 더 대단하고 똑똑한 사람들은 이미 저 만치 앞을 달려가고 있고, 40대를 향해 달려가고, 50대를 향해 달려가고... 하는 것은 좋은데 아마 결국 장기적으로 - 100년 후라고 해보자 - 모두 죽고 없을 것이다.
의미 있는 인생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꼭 의미를 찾아야하는 것일까. 그렇다고 아무 것도 안하고 살다가 떠나기는 더욱 싫다. 다만, 무언가의 이루어지지 않음으로 인해 나오는 갈증 같은 이 기분이 사라지지 않아 오늘도 잠을 청하기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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