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기/한국어

기억 속 은행나무

by 스프링데일 2012. 2. 2.

아직 매크로렌즈 사기전 ㅋㅋㅋ

사람들은 자신의 과거에 대한 기억들에 대해 누구나 자신만의 어느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기억들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다다르곤 하는 그 한계점은, 바꿔말하면 스스로에 대한 최초의 기억이 있는 지점. 자기 자신을 기억하고 있는 첫 부분이며, 아마도 자아가 발현된 지점이라고 생각일 것이다.  인격을 형성하기 시작한 시점일지도 모르고, 물리적인 출생과는 다른 의미로 자신의 인생이 시작된 시점일 수도 있다.  그렇다는 것은 그 이전의 삶은 아마도 인형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이를테면 인간의 자아를 가지지 못한 채로 인간의 흉내를 내는 것.  데카르트의 말 중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인식론적인 말이 있다.  인용하자면 기억이 나지 않는 물리적 출생 직후의 시점에서 나는 - 적어도 스스로에게는 - 존재하지 않은 존재였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반면에 이 한곚머을 기준으로 현재까지 달려오는 시간선은

사람들은 자신의 과거에 대한 기억들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어느 지점에서 그 이전으로는 넘어갈 수 없는 한계점에 다다르곤 한다.  이 한계점이라는 것은 다시 말하면 스스로에 대한 기억이 있었던 시발점,   바꿔 말하면 자신이 자신을 기억하고 있는 첫 지점이다.  인격을 형성하기 시작한 시점일지도 모르고, 태어났을 때와는 다른 의미로 인생이 시작된 시점일 수도 있다.  그렇다는 것은 그 이전의 삶은 아마도 인형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이를테면 인간의 자아를 가지지 못한 채로 인간의 흉내를 내는 것.  데카르트의 말 중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인용하자면 기억이 나지 않는 출생 직후의 시점에서 나는 - 적어도 내 자신에게는 - 존재하지 않은 존재였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반면에 이 한계점을 기준으로 현재까지 달려오는 시간선을 찬찬히 훑어 보면 초기부터 어렴풋이 기억나는 시점들이 있다.  그 시점들에서 나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 기억속 있던 다른 존재들도.

아직은 내가 기억하는 과거에서 존재했던 여러가지 요소들 중, 은행나무라는 녀석에 대해서 써보려고 한다.  은행나무는 세계에 1목 1과 1속 1종만이 존재하는 식물로, 동아시아 원산의 낙엽교목이며 자웅이주인 나무이다.  지질학상으로는 고생대 말기부터 자랐고 7속 아래 수십 종이 있었다고 연구되고 있으나 현재에는 동아시아에 1종만이 남아 있다.  야생에서 존재하는 개체는 없으며, 자연적으로 멸종된 나무이고, 때때로 사람들에게 '살아있는 화석' 이라고 불려지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은행나무는 전 세계적으로 보았을 때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된 나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은행나무가 멸종종이라고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할 것이다, 아마 지금도.

@ Napa Valley with 진규, 해진, 정엽

나 역시도 어린 시절을 한국에서 보냈기에 은행나무가 멸종종이라는 생각 같은건 해 보지도 못했었다.  가을이면 빨갛게 물드는 단풍나무와 더불어 노랗게 단풍이 지곤 했던 은행나무.  워낙 많아서 가로수로 심는 플라타너스나 산에 가면 늘 보이는 소나무, 그리고 명절 때마다 밀양의 할머니 댁에서 보던 수 많은 대나무들처럼 주변에 너무나 흔했기 때문인지 나는 은행나무에 대해 그렇게 추억 같은 것들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미국에서도 플라타너스, 단풍나무, 소나무, 그리고 대나무는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가을이면 꽤 멋있는 단풍들도 볼 수 있었다.  2년 전쯤인가 갔었던 나파 밸리에서도 멋진 단풍을 보았었다.  Trinchero나 Chateau Montelena에서 보았던 노란색과 붉은색, 초록색의 나뭇잎들이 어우러진 많은 나무들을 보며, 스스로 어린 시절 한국의 단풍도 예쁘고 멋있엇지만, 단풍은 한국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며, 스스로의 삶에 만족하기로 했다.  미국에 온지 10년이 되었지만, 한국에 나갔던 것은 두 번의 여름과 한 번의 겨울이었다.  그렇게 한국의 단풍은 내 기억 속에서 과거의 흔적으로만 남을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가장 중요한 - 하지만 흔한 -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으니 그 것은 은행나무였다..  다풍 그 자체는 기억했었던 나였지만, 은행나무에 대해서는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물론 단풍은 미국에서도 볼 수 있었지만, 초록색의 은행나무, 그리고 노랗게 물드는 은행나무의 단풍을 본 기억이 언제인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되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 계기는 어느 날인가 인터넷에서 심심함을 동반한 채 나무들에 대한 글을 읽고 있을 때 쯤 은행나무에 대한 항목을 읽으면서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천천히 기억을 돌아보았다.  분명히, 미국에도 은행나무가 있을텐데.  한국에서는 정말 많이 있었다.  치일 정도로 많았고 개나리의 노란빛과도 헷갈릴 정도로 너무나 많았던 노란색.  그 노란색의 어우러짐을 머릿속으로는 기억했지만, 그 마지막 기억이 언제였는지는 내 자신도 모르게 천천히 잊어가고 있었다.

그 섹시한 자태

나는 왜 미국에 은행나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몰랐을까?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라고 한다.  각각의 특색을 지닌 네 가지 계절들 중에서 가을을 나타내는 것은 단풍나무들 만이 아닌 은행나무들도 있었다.  그 노랗게 물들던 은행잎들을 왜 나는 잊어버린 것일까.  나무들은 제각각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고 은행나무도 그런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하지만 뾰족뾰족한 단풍잎, 기다란 조릿대잎, 그리고 잎이라고 하기도 왠지 어색한 솔잎.  마찬가지로 은행나무도 가운데가 살짝 갈라져 있는 넓은 부채꼴 모양의 은행잎으로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한다.  그 나뭇잎이 너무나 그리웠다.  그러던 중, 은행잎을 다시 볼 기회가 생겼다.

사실, 그 기회는 좋은 기회는 아니었다.  은행나무가 동아시아에서만 자생한다는 사실은 나에게 있어서 은행잎을 구하려면 한국에 가야한다는 것을 뜻했고, 말에 어폐가 있지만 갑자기 외할아버지께서 타계하시는 바람에, 엄마께서 오랜만에 한국에 다녀오시게 되었던 것이다.  돌아오시는 길에 길거이에 떨어져있는 은행잎 몇장을 부탁했더니 어디 여자친구한테 줄 거냐고 물어보신다.  그러니깐 은행잎을 줄 여자친구 따위는 없단 말입니다.  엄마께서 갖다 주신 일곱 장의 나뭇잎은 내가 기억하던 예전 그대로의 냄새, 그리고 촉감을 가지고 있었다.  약간의 쓴 냄새와, 오랫동안 만지고 있으면 손에 남는 듯한 끈적함이 있는 은행잎.  거기다가 단풍이 든 노란 은행잎인 것이다.

10년 만에 만났다.  반가워. 

부채꼴 모양의 노란 잎은 국민학교 교과서에도 나올 만큼 익숙하지만, 동아시아지역을 제외한 외국인들에게는 가장 이국적인 나뭇잎이다.

내 마음은 마치 그리웠던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 그간 하고 싶었던 많은 이야기들을 하려는 어린아이와 같은 심정이었다.  이를테면, 오랜만에 친구가 생긴 느낌이었다.  주변의 친구들에게 "너 은행나무에 대해서 좀 아냐?" 라며 은근히 으스대기도 하고, 은행나무가 멸종위기종이라는 사실을 말해줄 때마다  녀석들이 나를 보는 표정이 재밌었다.  사실 나도 몰랐던건데, 이런건 한국사람의 경우에는 식물학자가 아니면 은근히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는 그런 사실이었으니깐.  사실 안다고 해서 인생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며칠을 감격에 젖어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을 하며 은행나무의 희소성과 내가 은행잎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에 대해서 열심히 설파하며 자기만족을 하던 중이었는데 하루는 갑자기 호인이라는 녀석이 내 말을 열심히 듣다가 이런 말을 했다.

호인: 형, 그거 우리집 앞에 많은데요?
성현: ???? 미국에 그런게 있을리가 없잖아.  동아시아 자생종이고 지금은 자생도 아니라그랬어
호인: ㅋㅋㅋㅋ은행나무맞다니깐요?
성현: 헐???
호인: 글쎄요 (도리도리) 형이 말씀하시는 그 은행나무가 뭔가 특별한게 아니라면 분명히 저희집 앞에 은행나무 맞는데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호인이네 집 앞에는 몇 그루인가의 은행나무가 서 있었다.  왜 거기 있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나는 은행잎을 오랜만에 접했다는 흥분 때문에 전세계에서 한국과 일본, 중국에만 은행나무가 있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어버렸던 것이다.  어, 물론 생각해보면 동아시아 자생종이라는 것은 동아시아에서 자생한다는 거지 다른 곳에서 살지 않는다는 건 아니었으니깐.  내 멍청함을 탓하리오.

태어나서 내가 가장 처음 살았던 곳은 지금의 강북구 우이동이라고하지만, 인격을 형성하기 시작했을 무렵의 나는 도봉구 방학3동에 살고 있었다.  내가 살던 아파트 단지에서는 늘 도봉산이나 장수천, 새심천 같은 등산 코스가 있었는데, 아직은 화목했을 무렵의 우리 가족은 매주 일요일마다 등산을 하곤 했었다.  그 중에서 나중에 내가 다니게된 신학국민학교 (신학초등학교) 를 지나 계속 남쪽으로 내려가다 신동아 아파트 3단지를 왼쪽에 끼고 계속 걸어가면 서울시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었다.  어렸을 때는 그 크기에 압도 당했고, 아직 8살이 채 되지 않았던 나로서는 800년을 넘게 살았다는 은행나무의 수명이 그렇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나중에 조선왕조실록을 읽으며 연산군묘가 우리 동네에 있었다는걸 알게 되었고, 그 연산군이 살아있을 때도 이미 이 나무는 수백 살이라는 것에 대해서 놀랐던 기억이 어렴풋이 있기는 하다. 

http://myhome.internet.olleh.com/~sealove78/travel2008-2/21091025-1.htm

한없이 커보였던 나무였지만, 그 크기를 지탱할 수 없엇는지 노쇠한 거목의 나뭇가지를 받치기 위한 철제 보조기구가 설치 되어있는 상태였다.  그 때가 1993년 쯤으로 생각되는데, 위 사진의 모습이 그나마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있는 은행나무의 모습인 것 같다.  (2004년엔 가봤지만, 2009년엔 앞까지만 가고 둘러보지는 못했다)  사진의 밑 부분을 보면 나무로 낮은 펜스가 쳐져 있었는데, 내가 살때는 그런 것 없었다.  그냥 나무 주변에 자갈밭을 조성해 놓고 여름이면 그 나무 아래서 아이들이 놀 수 있게 개방되어 있었던 것 같다.  (막 나무도 만지고 그랬다)  물론 평상을 가지고 오시는 어르신들도 가끔 보였다.  아! 한가지 더 기억나는게 있다.  어느 날인가 가보니 나무 줄기의 한 부분이 초등학생이었던 내 기준으로 나보다 훨씬 큰 나무껍데기가 떨어져 나가있었다.  정확히는 그 껍데기의 일부분이 매달린채 힘겹게 붙어있는 모영새였는데, 친구들과 나무가 벼락 맞은거 아니냐는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벼락 맞았으면 나무께서 돌아가셨겠지.


사진을 찾아보니 이제는 많이 변한 것 같다.  추정 수령은 800년이 되었다 830이 되었다 870년이 되었다 하니깐 확실하지는 않지만, 어차피 길어야 80년 사는 우리 인간들의 삶에 비교하면 충분히 긴 수명.  바뀐 최근의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예전에 신동아 아파트 2단지 3단지가 세워지기 전만해도 이 나무는 독보적인 스케일을 자랑했지만, 이제는 조금은 밀린듯 하다.  바뀐 모습에도 가운데 껍데기가 떨어져 나와있는 모습이, 나무에게는 상처일지라도 내 기억속 모습 그대로인 것 같아서 반갑다.  시간이 흘러도 예전의 모습은 간직하고 있는 방학동의 은행나무.  20년전의 나는 분명히 저 나무 앞에서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주변에 아무리 새로운 펜스가 세워지고, 안내문이 세워지고, 아파트의 모양이 바뀌고, 단독 주택이 허물어지고, 산책로가 세워져도, 방학동은 내 기억속 그대로 남아있나 보다.   솔직히 놀랐다.  아파트 단지쪽은 예전과 하나도 달라진 모습이 없어서 살짝 실망했었는데, 내가 찾지 않았던 시간 동안 은행나무 주변은 조금은 변한 것 같다.  문득 영화 "은행나무 침대"가 생각났다.  은행잎이라는 매개체로 과거와 현재를 이어준다는 것.

다음번에 한국에 돌아가면 꼭 이 은행나무를 보러 가야겠다, 뿌리깊은 나무는 예전의 내 기억 그대로 남아 있기를.

'일기 > 한국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냥한 사람  (0) 2012.06.22
20대 개새끼론  (28) 2012.06.09
사랑의 노력  (13) 2011.11.28
미국 주유소 알바 인생 :: Valero of Palo Alto, Palo Alto, CA  (7) 2011.07.31
김밥과 러브레터  (0) 2011.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