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얼마나 위대한지에 대하여 체험한 이야기를 어떤 젊은이에게서 들은 일이 있다.
그는 1.4 후퇴 때, 남쪽으로 내려가는 피난 열차에 몸을 실었는데,
시간표도 정원도 없는 이 화물차는 수라장을 이루고 있었다.
음악을 좋아하던 그는, 서울을 떠날 때,
포오터블(portable) 축음기와 애청하는 레코오드 몇 장만을
옷과 함께 륙색(rucksack)에 꾸려 넣고 이 피난 열차에 올랐었다.
제대로 달리지 못하던 차가 덜커덩하고 또 섰다.
사람들은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부는 허허벌판에서 몇 시간을 또 지체할는지 모른다.
이때, 그 젊은이는 축음기와 레코오드를 꺼냈다.
그는 축음기에 레코오드를 얹고 바늘을 올려놓았다.
요한 세바스티안 바하 작곡인 ‘지(G) 선상의 아리아’ 였다.
고아하고도 명상적인 바이올린의 멜로디는 눈 온 뒤의 정결한 공간에 울려 퍼졌다.
아니, 맑은 공간이 고스란히 공명(共鳴)함이 된 듯,
축음기의 가냘픈 소리가 한결 또렷하게 들렸다.
모든 사람은 오늘의 괴로움을 잊고 경건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다스려 가고,
하늘과 땅도 숨을 죽이고, 이 명곡에 귀를 기울이는 것 같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떠들썩하던 화차 안이 조용히 가라앉아 버린 것이 아닌가!
지식도, 생활도, 성격도 각양각색인 사람들이, 한결같은 감동에 입을 다물어 버린 것이다.
‘지이 선상의 아리아’ 가 여운을 남기고 끝났을 때,
서양 음악이라고는 전혀 모를 것 같은 한 노인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 곡을 한 번 더 들려 달라.” 고 했다.
▶음악과 인생 / 박용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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