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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매체

[문학] 山崎豊子 - 華麗なる一族(화려한 일족)

by 스프링데일 2008. 11. 18.

華麗なる一族


작성일: 2008년 10월 26일
Monologue – 화려한 일족

     야마사키 도요코의 작품 “화려한 일족”은, 일본의 전후 (戰後) 산업화 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조국의 산업발전을 위해 민영기업들이 자유롭게 기술개발을 하고, 세계로 뻗어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던 기업가들, 그리고 기업의 운영에 있어서 필수 불가결인 존재인 은행가들의 “기업적” 압력과 파벌, 견제 등을 다룬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에서는, 한 국가의 기간 산업이 될 수 있는, “제철” 이라는 산업을 일으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제철소를 건설하려고 했던, 한신특수제강의 전무 만표 텟페이의 도전기와 좌절기가 편년체 형식으로 그려지고 있다.  스페셜 드라마나, 일부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제외하고는 다분히 오락적이거나, 또는 유치하지만 잔잔한 감동을 가져다 주는 일본 드라마들을 대부분 즐겨봐 왔던 나로써는, 화려한 일족이 가지는 중후하고 독보적인 분위기와 소재들에 의해, 사정 없이 빠져들게 만들었던 대작이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드라마가 아닌 책으로 얘기하고 싶다.  드라마도 물론 대단했고, 나는 드라마 상의 인물 하나 하나에게 저마다 독창적인 매력을 느껴왔지만, 그 드라마로 인해 책을 구매하게 되었고, 책에서 더 큰 감동과 냉혹한 현실, 즉 작가가 작중에 의도해고자 했던 바를 이해하기에는 책이 좀 더 원문적인 묘사들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드라마나 소설이나 텟페이는 강한 의지와 열정을 가지고, 자신에게 닥쳐오는 절망과 난관들을 헤쳐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종반부에서 아버지 – 만표 다이스케 – 라는 벽을 넘지 못하고 좌절하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게 된다.  그에게는 인간적인 면, 즉 기업가로써 가져야 할 객관성과 냉혹함이 결여되어 있었고, 이 결여성은 결국 그를 파멸로 이끌게 된다.  이야기는 텟페이와 다이스케의 대립이 주를 이루지만, “화려한 일족”은 결국 만표 텟페이라는 한 인물의 기업가로써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작중에서, 야마사키 도요코는 독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훌륭한 기업가의 자질로써 우선시되는 덕목은 부하직원들을 이끌고, 그들과 동고동락하며 하나 하나에게 걱정과 관심을 가져주는 인간적인 리더십인가, 아니면 기업의 보존과 이윤창출을 위해 어떤 잔인한 일도 마다하지 않는 감각을 가진 직관력, 때로는 잔인함과 냉혹함, 그리고 그것을 정력적으로 풀어가는 추진력인가?

     만표 텟페이는 질문의 전자에 해당되는 이상적인 모델이었다.  전무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상 한신특수제강의 최고 경영자와 다름없는 입장의 그는, 전후 일본 경제의 기반의 한 축을 담당하는 기간산업 – 제철 – 에 몸 담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일본에는 제국제철이라는 막대한 국가적 자본과 후원을 등에 업은 공기업이 있엇다.  그리고, 한신특수제강을 비롯한 제철업계의 중소규모 민영기업들은 언제나 상품의 원자재 물량을 제국제철로부터의 판매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제국제철과 이들 민영기업들간의 거래관계는 항상 일방적일 수 밖에 없었는데, 그 이유는 철강 제품의 생산을 위한 가장 중요한 원료가 되는 선철을 생산할 수 있는 용광로를 소유하고, 생산한 선철을 다른 기업에 판매할 수 있는 재고를 가진 기업은 제국제철이 유일하기 때문이었다.  이는, 후에 자사의 이윤 창출과 안정성보다도 일본 경제와 기간 산업의 앞날을 내다본 텟페이에게 있어서, 커다란 장애물로 작용하게 된다.  

     텟페이는 제국제철로 인해 생긴 불합리한 거래 구조를 타파하고, 제철업계의 중소기업들이 안정적으로 기업활동을 할 수 있으며, 나아가서는 한신특수제강을 일본 제철업계에서 굴지의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한신특수제강 전용의 용광로 건설을 계획하게 된다.  가장 큰 문제는 자본금의 조달이었다.  한신특수제강은 재정구조도 튼튼하고, 부하직원들에게 많은 신경을 써주는 텟페이의 리더십 덕분에 노사분규도 없는 견실한 기업이었지만, 어디까지나 견실한 중소기업이었다.  즉, 용광로 건설의 비용을 자기자본만으로 조달하기에는 아직 힘에 부치는 작은 기업이었다.  그는 이런 여러 가지 난관들을 이어 나가기 위해, 당시 경제 발전기라 구하기 힘들었던, 일일 노동자들을 어떻게든 구하고, (여기에는 일일 노동자들이 텟페이의 지휘 밑에서 일하게 된 다른 중요한, 그리고 감동적인 얘기가 있었지만, 이는 이 것 만으로도 또 다른 글의 주제가 될 수 있기에 생략하겠다.) 아버지인 만표 다이스케 소유의 한신은행, 그리고 그와 미국 유학 시절부터 친분이 있던 미쿠모 은행장의 대동은행 등에서 어렵사리 융자를 구해내었다.  

     하지만, 이 시점에 경제 구조를 튼튼히 하기 위해 일본 정부가 금융권에 명령하고 있던 “시중은행 합병설”은 텟페이를 나락에 빠뜨리게 된다.  이는 1990년대 말, IMF로부터 구제금융지원을 받고 있던 우리나라의 상황과도 비슷한데, 만표 다이스케는 한신특수제강에 융자를 인가하는 과정에서, 그 나름대로의 책략을 세우게 된다.  즉, 한신특수제강은 한신은행의 존립을 위한 카드로 쓰이는 책략의 일환이 되었던 것이다.  용광로 건설 추진으로 인해 불안정해진 한신특수제강의 재정상황을 한신은행의 영향권 아래 가두어 놓고, 한신특수제강 용광로 건설의 2대 투자은행인 대동은행으로부터 한신특수제강으로의 과도한 융자를 이끌어 내어, 대동은행을 재정 부실 상태로 이끌어낸다, 그리고 그 대동은행을 한신은행에서 흡수 합병해버린다.  이 것이 다이스케의 계략이었다.  이 것에서 두가지 의문이 발생할 수 있다.  다이스케는 아들의 회사를 지원해주기 보단, 자신의 기업과 직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사보다 공을 중요시하는 진정한 공사분리의 기업가였는가? 와, 용광로 건설 융자 하나로 무너질 만큼 대동은행이 부실한 은행이었는가?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앞으로 할 것이지만, 두 번째는 미리 해두겠다.  당시, 은행들은 정부의 시중은행 합병론 때문에, 부실융자를 한 가지라도 했다가는, 그 점이 약점으로 작용하여, 다른 시중은행에 합병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용광로 건설의 비용이다.  책에서 묘사된 그 건설비용은 150억엔으로 알고 있다.  요즘 환율로 환산해도, 원화로 1500억원 이상의 가치, 그리고, 당시 한국의 상황을 말해보자면, 일명 굴욕외교로 불리는 박정희 정권 재개 때, 일본에게서 보상금의 명목으로 받은 4억달러는 그 것의 약 두배가 된다.  박정희는 이 4억 달러와 후에 베트남 참전으로 미국에게서 지원 받은 19억 달러로 한국 경제발전의 기반을 닦게 되지만, 150억엔이면, 당시 일본이 한국에 건네준 돈의 절반이 넘는 화폐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즉 쉽게 말하면, 아무리 큰 대동은행이라고 해도, 150억엔중 50억엔의 융자를 하는 것은 상당한 출혈이었다.

     당시 일본 은행가의 상황은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1990년대 후반의 한국의 그것과 같았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기업이 활동하려면 자금 조달이 필요하다.  그리고 기업들이 자금 조달을 하는 곳은 시중 은행들인 것이다.  그런데, 그 시중 은행들을 정부가 앞장서서 관리하기 시작했다.  좀 더 나은 시중 은행들을 만들고,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된 은행들은 배제하기 위한.  과도한 대출과 자기자본금의 양을 지나치게 상회하는 부실채권, 그리고 지역화 되어버려, 국가 경제의 발전을 지역경제의 발전으로 바꾸어 버려 지역경제권 간의 대립을 생성하여, 결과적으로는 국가 전체 경제의 발전을 저하시키며, 총체적으로는 외국계 자본에 대응할 거대규모의 은행들을 만들기 위해서.

     만표 다이스케에게 있어서 이 합병론은 본래부터 냉혹했던 그를, 더욱 더 냉혹하고 냉정한 경영자로 만들어버린다.  하지만, 자식들을 정•경•관 각 계층의 유력자들과 규벌을 형성하기 위해 정략결혼으로 내몰고, 부인대신 첩을 정실로 두는 등, 세간에서 인정받는 성공한 은행가의 모습과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그에게는 과연 일말의 인간적인 면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인가?  그는 비록 차남 긴페이를 정략결혼으로 내몰기는 했지만, 한신은행의 중요 직책을 맡기고 - 물론 이는 긴페이가 능력자로 분류되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 혼사를 포함한 긴페이의 모든 일들에 있어서 다이스케가 개인적인 지원을 아낌없이 퍼붓는 등 차남을 촉망받는 은행가, 그리고 자신에게 모자라지 않는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아버지로써, 그리고 선대(先代) 로써 끊임없는 지원을 하였다.  왜 그토록 냉혹하고 냉철했던 다이스케가 장남 텟페이에게는 그의 회사조차 은행 합병의 미끼로 사용하려는 잔인한 모습을 보이면서, 차남에게는 따뜻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이려고 한 걸까?   나는, 개인적으로 상류층 인사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정략결혼은 필요악이라고 생각하므로, 그 것의 장단점에 대해서는 논외로 삼겠다.  하지만, 같은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또한 동양권의 국가들에서 보통 장남을 중요하시 하는 추세에 반하는 다이스케의 자식차별은 드라마와 소설의 종반을 읽기 전까지는 절대로 나에게 이해할 수 없던 커다란 의문점이었다.

     만표 가(家)의 수장과 그 장남의 대립은 다이스케의 선대인 만표 게이스케와 만표 다이스케의 부인, 즉 게이스케의 며느리가 되는 야스코로부터 시작된다.  다이스케가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야스코가 저택의 욕실에서 목욕을 하던 도중, 뜨거운 공기로 인해 실신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게이스케는 전라의 며느리를 그대로 방으로 옮겨 놓았다.  그리고 나서 그는 다이스케에게 의미심장한 말들을 남겼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직후 야스코의 배가 불러오게 되고, 열 달 후 첫 아이를 출산하게 된다.  그가 바로 만표 텟페이.  다이스케는 텟페이가 게이스케와 그 며느리 사이에서 부정하게 태어난 아이라고 단정짓게 되고, 그 이후로 야스코에게 달라진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또한, 게이스케는 경영쟈로써도 후에 다이스케가 한신은행을 일본 내 10위의 시중은행으로 키워낸 이상의 경영자로써의 능력과 자질을 보였으므로, 당시 다이스케에 있어서 당시 아버지인 게이스케는 경영자로써도, 혈연으로써도 넘어야할 벽이 되엇다.  하지만 살아 생전에는 게이스케가 좀 더 빛나고 있었고, 텟페이는 자라면서 할아버지를 점점 닮아가게 되었다.  아버지인 자신보다 할아버지인 게이스케와 더 친하게 지내는 텟페이를 보면서, 다이스케는 알게 모르게 열등감과 적대감을 품어나가게 된다.  게이스케의 사망 후에도, 텟페이는 다이스케에게 있어서 게이스케의 현신(現神) 일 뿐만 아니라 그가 넘어야할 또 하나의 산이었다.  다이스케에게 있어서, 텟페이가 게이스케와 야스코의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게 만든 가능성들은 세 가지였다.  사정을 모르는 텟페이가 게이스케의 생전에 아버지보다 그를 더 따랐고, 둘의 외모와 행동 일거수일투족이 너무나 비슷했으며, 혈액형이 같다는 것이었다.  (게이스케는 A형, 다이스케는 AB형, 다이스케의 정실이자 텟페이의 어머니인 야스코는 O형, 그리고 텟페이는 A형으로 알려져 있었다.)  자신의 아버지의 아이를 출산한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다이스케, 그리고 그것에 대해 아무 반론도 펼칠 수 없었던 야스코의 관계는 결국 다이스케가 집사 아이코를 데려옴으로써, 만표 다이스케의 처첩동금(妻妾同衾)으로 이어졌고, 그의 침실에 놓인 세 개의 침대는 이 처첩동금을 적나라하게 상징하게 되었다.

     만표 다이스케의 처첩동금은 처음 얼마동안은 만표 가 내에서도 비밀이었고, 알더라도 불문율에 부쳐져 있었다.  또한 아버지와 계속 대립각을 세워왔던 텟페이는 당시 미국에 유학중이었다.  만표 다이스케, 다이스케의 첩이면서 유능한 비서였던 아이코, 황실 출신이면서 귀족교육을 제외한 다른 실용적인 경험과 교육의 부재로 인해 가사(家事)가 한계였던 정실 야스코, 이 셋의 처첩동금은 결국 차남인 긴페이에게 알려진다.  하지만 긴페이는 자신의 친모(親母)를 변호할 힘이 없엇고, 이는 긴페이에게 있어서 자신의 아버지가 절대로 넘지 못할 벽이라는 강박관념이 심어지는 것과 동시에, 긴페이 자신을 허무주의자, 또는 지극히 현실주의자로 만들어버렸다.  후에 다이스케의 긴페이를 향한 수많은 관심을 거절하지 않은 것은, 긴페이는 그가 저항해봤자 아버지를 넘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즉, 다이스케는 아버지 게이스케를 넘을 수 는 없었지만, 그의 현신이라고 믿고 있는 텟페이라는 목표가 있었지만, 긴페이에게는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마음 속으로 자신의 형을 응원하고 있었을 뿐이다.  언제나 입가에 조소를 머금고 있는 그는, 매일 술에 취해 귀가했다.  입버릇은, “형님, 아무리 열심히 해도 우리가 아버지를 넘을 수는 없어요.  포기하시죠.”  긴페이에게 있어서 유일한 대화 상대는 텟페이였다.  그는, 마음 한구석에서는 자신은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아버지와의 대립을 계속 해나간 텟페이의 승리를 계속 바라고 있었다.  이야기에서는 비교적 비중 없게 다루어진 긴페이었지만, 나는 왠지 그의 삶의 방식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야기의 종반에서, 다이스케와 텟페이의 대립은 결국 다이스케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  한신특수제강은 제국제철의 산하로, 한신은행은 대동은행을 흡수합병함으로써, 시중은행 5위의 동양은행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는 표면적으로, 다이스케의 승리.  그리고 텟페이의 자살로써 밝혀진 진실 – 시체감식반의 검사로 밝혀진 텟페이의 혈액형은 사실 B형, 이는 텟페이가 게이스케가 아닌 다이스케의 아들이었다는 것 – 덕분에 오해는 풀리지만, 다이스케는 장남을 잃었고, 은행 합병전에서는 합병을 성공시킨 첫 은행의 행장으로써 위세를 떨치지만, 결국은 그 자신도 후에 은행 합병의 희생양으로써 이용당하게 된다.  처음에는 자신의 은행과 수많은 직원들을 지킨다는 신념 아래 합벼을 수단으로 생각하고 이를 추진했지만, 결국 가치가 전도되고, 합병 그자체가 목표가 됨으로써, 다이스케는 은행가로써의 직업의식도 잃게 된다.

     글의 초반에 제기했던 나의 질문을 다시 한번 제기해보자 한다.  훌륭한 기업가의 자질로써 우선시되는 덕목은 부하직원들을 잘 챙기며 그 들의 처지 하나하나에도 깊은 신경을 써주는 인간적인 리더십인가, 아니면 기업의 보존과 이윤창출을 위해 부하직원의 희생이 있더라도,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 – 또한 잔인할 정도의 – 감강을 가진 직관력과 그 것을 정력적으로 풀어가는 냉혹적인 추진력인가?

     1. 텟페이는 자살하고, 그의 한신특수제강은 제국제철의 산하로 편입된다.  하지만, 한신특수제강은 결국 전용 용광로를 가지게 되었고, 제국제철의 산하에서나마, 중소기업 특유의 고급기술들을 제공함으로써, 거시적으로는 일본의 제철산업을 책임지는 중요한 위치까지 성장한다. 

     2. 다이스케는 은행도 지키고 자신도 지키며, 당시 일본의 경제 개선을 위한 은행 합병의 첫 주자 역할까지 했지만, 결국은 그도 은행가로써는 활동할 수 없게 된다.  소설에서는 암시만 있었지만, 합병 후 처첩동금을 그만두긴 했지만, 나중에 구설수로 올랐고, 아들을 잃었으며, 차남에게마저도 버림받았다.  (참고로 설명하자면, 처첩동금을 했던 집사 아이코는 여성으로써의 매력도 충분했지만, 거대 시중은행의 비서직을 맡을 수 있는 정도의 수완과 역량을 가지고 있는 능력적인 여자였다.)

     이들은 결과적으로는, 개인적으로는 둘 다 파멸했다.  하지만, 한신은행의 존립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던 다이스케와는 달리, 일본의 철강산업의 발전을 자신의 꿈으로 가진 텟페이는 간접적으로나마 그 꿈을 이뤄냈다.  두 사람다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수많은 난관을 거쳐갔지만, 다이스케가 그것들을 수많은 책략들과 결탁등으로 풀어나가고 자신과 은행에게 필요하지 않은 존재들은 “증거인멸” 해버린 것과는 달리, 텟페이는 한신특수제강에 관계없었던 존재들 까지도 모두 필요한 존재로 끌어 들였다.  그리고 비교적 비열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 이는 내가 어쩔 수 없이 텟페이에게 경영자로써 더욱 후한 점수를 줄 수 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여담이지만, 시오노 나나미는 그녀의 저서 “로마인 이야기”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 – 시저 – 에 두 권을, 그의 후계자 옥타비아누스 – 아우구스투스 – 에게는 한 권을 할애했다.  전자는 텟페이와 비슷한 것 같고, 후자는 다이스케와 비슷한 것 같다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화려한 일족”은 픽션이지만 당시 일본에 있었던 실화를 어느 정도 기반으로 두고 씌여졌다고 하니, 그 개연성은 의심해볼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도 텟페이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일본의 철강산업 발전에 힘썼는데, 비록 시작은 일본의 도움을 받기는 하였지만, 결국 일본을 앞지르는 철강산업을 구축해 낸 박태준 같은 한국의 철강맨들은 그저 대단할 뿐이다.  (박태준의 정치척 행보에는 관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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