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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비망록

20210606 - Replicant

by 스프링데일 2021. 6. 7.

# 창조주와 피조물

니어 오토마타는 꽤 잘만든 게임인 것 같다. 고딕풍의 덕후 캐릭터 느낌은 어디가서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조금 부끄럽지만, 그래도 캐릭터 자체는 꽤 매력이 있다. 예쁜걸 좋아하는건 변함없지만, 난 예전부터 좀 당차고 능동적인 모습의 여자가 취향인가보다. 오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2B의 이야기보다도 아담과 이브라는 남성형 캐릭터였는데, 얘네들은 "기계생명체" 라는 녀석들이 창조해낸 또 다른 인간형 생명체이다. 게임에서 "이성인" 이라는 지구를 침략한 외계인의 존재가 나오는데, 기계생명체를 창조한 것은 이들이다. 그리고 이 기계생명체들이 인간이 만든 안드로이드들과 싸우는 것이 니어 오토마타의 스토리.

아담과 이브는 자신들의 기원이 되는 이성인들이 이미 절멸했음을 통보하고, 그 이성인들의 존재가 별 것 아니었다는 발언을 했다. 이런 자가당착적인 설정을 갖고 있는 캐릭터들의 존재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다. 그들이 존재할 수 있게 해준 존재를 무시하는 것을 만약 이성인들이 알았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청출어람이라는 말처럼 자신들의 피조물이 자신들을 뛰어넘었으니 기쁘게 생각할까, 아니면 자신들이 통제할 수 없다고 궁극적으로는 자신들을 부정했다는 사실에 절망할까. 이런 창조주와 피조물들간의 대립은 사실 이 게임이 아니어도 여기저기서 많이 쓰여져왔다. 눈물을 마시는 새, 에일리언, 스타크래프트, 성경, 신곡, 실낙원, 터미네이터 등 나열하면 끝도 없다... 문득 인간이 만드는 인공지능도 결국 같은 맥락이 될 것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조주인 인간과 피조물인 인공지능. 창조주는 자신들이 쓸만한 노예를 만들려고 뭔가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그럴 능력이 됐으니깐 그렇게 했을 뿐.

마지막으로 "혼자 사는 사람들" 이라는 영화의 홍보를 유튜브에서 보았다. 주인공인 공승연은 콜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그 콜센터의 팀장이 직원들을 몰아붙인다고 이런 식의 말을 한다. "요즘은 AI가 대체하는 세상이라고 하니깐 여러분 일자리도 곧 없어질지도 몰라요. 그러니깐 자신들의 가치를 증명하려면 열심히 해야지?" AI의 개념을 부하직원관리의 용도로 이용하는 이 팀장의 생각도 놀랍지만, 기계가 발전하면 인간이 일자리가 없어지긴 할 것 같다. 마르크스가 문득 옳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틀렸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을 기계가 대체하긴 하겠지만, 기계는 대체적으로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을 실행하기 위해 제작된다.

# 차륜의 아래

너무 심심해서 책을 하나 새로 보려고 했다. 문득 예전에 봤던 "갈릴레오" 라는 드라마에서 한 범죄자가 자원봉사로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책을 낭독하여 녹음하는 좋은 일을 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었다. 책 구절이 조금 기억나서 그 드라마를 찾아봤는데 제목이 車輪の下... 차륜의 아래..수레바퀴 아래서였다. 허망했다.

책은 Joe Boaler의 Unlock으로 정했다.

# KUNA

그렇게 계속 심심해서 뒹굴거리며 책을 읽고 있었는데, 대학교 시절 많이 친했던 동생들이 연락이 왔다. 우리집 근처로 쇼핑하러 온 길인데 시간 괜찮으면 저녁이나 먹자고. 너무 고맙고 반가워서 바로 달려나갔다. 유학생이었던 얘네들이 지금까지 이곳에 있게 되어 인연이 이어진다는 사실이 너무 고맙다. 오랜만에 얼굴을 봐서 너무 좋았고, 앞으로도 이 인연을 소중히 하고 싶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 수록 시시콜콜한 잡담을 할 친구들이 줄어든다. 얘네들이 포닥이 끝나면 그냥 돌아가려나?... 안갔으면 좋겠다ㅠㅠ

# 백현락

정말 오랜만에 대변 차변을 그려가며 돈계산을 해보았다. 나는 돈에는 컴플렉스가 있는 편이라, 무의식적으로 이런걸 계산하는걸 싫어하고, "경제적인," "알뜰한" 등의 수식어를 싫어한다. "그런거 할 시간에 돈을 많이 벌 생각을 해라 성현아.." 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왔었다. 사실, 대학교 때까지는 계속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던 시절이어서 맨날 스트레스를 받았다. 정말 생각하기도 싫다. 나는 낭비를 하는 편은 아닌 것 같지만, 뭔가를 의식적으로 "아낀다" 라는 생각을 하는 것을 피하는 편이다. 그런 생각이야말로 거지의 마인드라는 생각이 들고.. 아무튼 싫다. 아무튼 그래서, 직장 생활을 하고 나서부턴 돈걱정을 안하고 살았고, 재산도 조금씩 모아오고 있다.

근데 요즘 심심해서 그런지 문득 쓸데없는 데다가 돈을 많이 쓴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융자가 끝나 여유가 생겼는데, 남는 돈이 융자 전과 많이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 약간의 계산을 해보았다. 다행히 생각보다는 여유가 있는 것 같다. 돈 벌때 계속 돈을 모으자.. 다만 큰 돈을 모으려면 사실 수입과 지출이 모두 많아야되는데, 주변에는 이런걸 좀 하는 애들이 있다. 그들이 돈을 많이 벌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기저기 투자를 하는 식으로 돈을 굴린다. 그리고 조금 크게 노는 놈들은 돈을 빌려서 투자를 하곤 한다. 후자의 경우는 리스크가 크지만, 성공한 녀석들은 제법 큰 돈을 굴리는 녀석도 있었다. 부럽다.

어릴 때 읽었던 책 중에 백현락이 쓴 "한국분 한국인 한국놈" 이라는 책이 있다. 미국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역이민을 와서 몇 권의 책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사람인데, 지금 그 책을 생각해보면 자본주의의 세상에서 상처를 받고 왔는지 좌파적 색채가 강했다. 내용을 다 쓸 필요는 없지만, 빚내서 투자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내용이 있었던 것 같다. 기억에 남는 표현 중 "옛날에는 빌어먹을 놈이 욕이었는데, 지금은 잘 빌려먹는놈이 능력있는 놈 대접을 받는다" 라는 말이 있었다. 신용점수가 좋은 사람들을 말했던 것 같은데, 본인은 이민와서 도넛가게 하면서 BMW 끌고다니며 사는게 힘들다고 했던걸 보면 솔직히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건지 지금으로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 때의 나는 한국에 살았지만, 지금은 내가 미국에서 그 사람이 산 것 보다 오래 살았거든.. 그리고 지금보다 그 때가 경기가 더 좋았다는데.

다만 남의 돈 빌려다가 남한테 돈빌려주는게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 당시에 한국이 IMF를 맞고있던 시기라는걸 생각해 보면, 사실 그 때의 백현락은 꽤 날카로운 일침을 날린 것 같기도 하다.

# INFJ

혈액형, 타로, 사주 등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MBTI는 재밌는 것 같다. 물론 16가지로 70억이 넘는 인구를 분류할 수는 없겠지만 경향성 정도는 파악할 수 있는 것 같았고, 지금까지 형성된 내 성격이나 성향같은 것들에 대해 어느 정도의 이해가는 해석을 제시하고 있어 조금은 위안이 되었으며, 한편으로 내가 속한 INFJ가 그렇게 흔하지 않은 타입이라는 사실과, 그러나 나만 INFJ가 아니라는 사실에 조금은 안도하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MBTI에 관심을 갖게되고 나서는 유튜브나 블로그 글들을 많이 찾아봤는데, 우선 이들의 공통점은 생각과 사연이 많다는 것이었다. 너무나 많아서, 타인에게 말하는 것이 두려워 현실에서 충분히 표현할 수 없었던, 그러나 사실 그들도 사람이기에 자신들의 생각을 만족이 될 때까지 풀어놓지 않고서는 그들도 답답했기에 유튜브든 글이든 여러가지 방법으로 자신들을 표현하고 있었다는 것.

- 할말과 생각이 정말 많다
- 이기적이고 사람을 잘 믿지 않는다
- 평화롭고 서로가 믿을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 이런걸 다 풀어서 열심히 설명해도 사람들에게 이해 받을 것이라는 기대가 없다

- 모든 성격유형 중 가장 정의 내리기 어려운 유형이며, 가장 알 수 없는 성격 유형이다.
- 자신이 타인을 이해하는 만큼 자신도 이해받길 원하지만, INFJ의 복잡힌 내면 심리를 이해해 주는 사람보다는 그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더 많다.

- MBTI를 보고 "와 정말 나다" 라고 엄청나게 공감한다.

아 시발..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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