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자의적으로, 타의적으로 제정신이 아닐 기회가 많이 있었다. 이렇게 마신 것은 학교다닐 때 이후로는 거의 처음이었던 것 같다. 물론 간헐적으로 누군가의 생일, 행사, 또는 회식 등으로 술 마실 일들은 언제든지 있었던 것 같지만, 그래도 이렇게 자주 마시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그래도 반복되는 음주가 싫지는 않았던 것일까. 지인들의 초대에 늘 거절하던 내가 무언 가의 구속을 풀어낸 것 만으로도 얼마든지 재미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을까. 반복적으로 높아진 참여율은 내려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나는 그렇게 변화해버린 내 자신이 싫지는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좋음과 슬픔이 반복된다. 이렇게 재미있는 것들을 왜 30대가 되어가는 문턱에서야 알게 되었던 것일까.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나의 몸은 이미 노화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가치관의 변화를 다시 한 번 겪는다. 상당히 오랜만에 겪은 변화였다. 그리고 아마 다음 번의 변화는 좀 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찾아올 것 같다. 변화를 겪은 것만으로도 생각이나 행동의 모습이 바뀌어버려, 나의 일부에는 어느덧 언젠가 내가 싫어하던 사람들의 단점들이 포함되어버려진 것 같다.
자신의 변화를 자각하는 동안에는 어느 정도 본질적 형태의 유지는 가능할 지도 모른다.
다만, TV나 글 속에서만 보았던 유흥의 장면들이 내 눈 앞에서 펼쳐졌을 때 나는 그것을 별로 좋아했던 것 같지는 않다. 영상 속으로만 보던 타인들의 삶은 한심해 보이기만 했고 관심도 없었지만, 내가 추구하던 것들이 그들이 추구하던 것들과 일부 겹친다는 것을 깨달을 무렵, 생활을 하는 것만으로도 지쳐갈 무렵, 나는 불과 얼마 전까지의 나를 스스로 버려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줄은 잡고 있어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는거였던거야.. 라는 헛된 생각을 하면서..
그렇게 피폐해져버린 정신을 가지고 있던 탓이었을까, 한동안 걸리지 않던 가위에 두 번이나 눌려버렸다. 첫 번째는 무섭기는 했지만 그냥 그렇다고 피곤했는데 뇌가 핑핑 돌아서 별의 별 말도 안되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짓눌러서 꾼 꿈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알렉스와 김준현이라니 ㅋㅋ 꿈을 꾸던 당시는 물론 우울했지만, 깨보니 별 것 아니었던 것 아니었을까? 아니 사실 그렇지 않았다. 꿈 자체는 정말 무섭지 않았지만, 간신히 정신을 차려 눈을 떴을 때, 내가 수십 시간을 보냈다고 느꼈던 꿈이 현실에서는 불과 한 시간에 불과했다는 것, 그리고 옆에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 나를 외롭고 무섭게 만들었다. 새벽의 희미한 어둠 속에서 시야에 천천히 들어오는 낯선 천장이 나를 짓눌렀고 옆에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자각했을 때, 나는 또 다시 내가 혼자가 되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でもすぐ電話をかけられる方がありました、大丈夫だと言ってくれる方が。
정말 무서운 것은 두 번째 꿈이었다. 마치 정신병에 걸렸다면 이런 기억이었을까. 나는 내가 속하고 싶지 않았던 곳에 속해 있었고, 내가 보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을 보았고, 내가 보고 싶지 않았던 모습의 그들을 보았다.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인지했지만, 찰나의 시간 동안 내가 속해있던 시공간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아인슈타인은 고도에 따라 시계가 다르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시계가 아닌 시간이 틀리다고 생각했다고 하는데, 온갖 상상력이 시각적 정보로 변환되는 꿈 속에서도 나의 인지 능력은 주어진 세계의 틀을 벗어날 수 없었던 것 같다. 무대로 주어진 세계는 정상인 채, 내 주변의 상황만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인식을 했던 나는 그들에게 말을 걸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그들과의 대화를 원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인지하지 못한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알고 스스로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도한 대화에서 그들은 나에게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반복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 아마도 나의 뇌내망상에서 기인했기에 - 내가 상상할 수 있었던 최악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들이 무언가 이상한 행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외모는 변해 있었고, 자신들의 변한 외모에 대해 무언가를 계속 설명하며 나를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도망가고 싶었지만 도망갈 수 없었던 꿈 속의 현실이 너무나 싫고 무서워졌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누군가의 차를 탄 채로, 4살의 내가 살고 있었던 곳에 도착했다. 그 곳에는 나에게 익숙한 풍경도 있었지만, 익숙하지 않은 풍경도 있었다. 풍경과 살풍경의 교차 속에서 내가 느낀 것은 절망이었다. 이 곳은 분명히 얼마 남지 않은 기억되고 있는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었어야 했는데, 왜 이렇게 변해버린 것일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었을까. 나는 이 곳에 속하기 싫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다시 한번 낯선 천장이 시야속으로 천천히 들어오고 있었다.
수십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했던 꿈은 다시 한 번 현실의 한 시간으로 바뀌어 있었다.
추억은 바람을 타고 언젠가 흩어질 텐데.
꿈은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다. 다만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뇌 속의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고려할 때 오히려 현실이 꿈을 반영하는 것 같다. 꿈은 현실의 연장, 현실은 꿈의 끝이라는 말을 언제나 믿어왔는데, 현실은 꿈의 연장, 꿈은 현실의 끝이라는 말이 조금 더 적용되는 요새인 것 같다.
모르겠다. 확실히 머릿속은 너무나 복잡하지만 가치있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다.
여기까지면 충분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