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기/비망록

2018년 상반기

by 스프링데일 2018. 6. 20.

# Intro


날마다 정신없이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이쯤 되고보니 나보다 더 바쁘게 산 사람도 있고, 더 게으르게 산 사람들도 많이 봤다.  나는 더 이상 특별한 누군가가 아니었고, 수십억 인구 중 한 명일 뿐인 평범한 사람.  내가 생각했던 것들은 다른 사람들도 생각했던 것들이고, 내가 아는 것들은 다른 사람들도 아는 것들이다.  다만 내가 보는 관점과 다른 사람의 그것은 다를 수도 있다는 말들.  늘 어딘가의 해묵은 격언이나 금언들, 종교 서적, 매체, 주변인들로 부터 이런 이야기들을 접할 때면, 나는 누구보다도 이 말들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꽤 건방진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냥 나도 평범한 사람 1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점점 더 겸손함을 찾아가려는 이 시기, 삶은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그래도 예전보단 확실히 나아진 것 같다.


2018년은 태어나서 가장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해가 되고 있다.  내년도 그럴까?



# 출장


어쩌다 가끔 가곤 하지만 모처럼 좋은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오랜만에 볼 수 있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고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 수 있었다.  먹고 싶었던 것들, 하고 싶었던 것들, 가고 싶었던 곳들을 모두 가볼 수 있었고, 일정이 빡빡해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의미있는 여행이었다.  


17년 만의 한파라는 서울은 - 역설적으로 - 미세먼지가 사라져 깨끗한 공기를 품고 있었다.  단지 대낮에 주머니에서 장갑없이 손을 꺼내면 손이 얼어버리는 건 경험해본 적이 없었으니 그냥 한국의 겨울을 처음 맞이한 외국인의 느낌으로 서울 시내를 활보했다.  초반에는 광화문 근처에 있었고 중간에 부산에 잠깐, 그리고 계속 삼성동에 있었는데, 서울에 사는 직장인의 느낌으로 출퇴근도 해보고 밥도 먹으러 다녔지만.. 이제는 너무 멀어졌나보다, 한국은 외국같은 곳이 되어버린 것 같다.


다만 어린 시절 추억들이 있는 우면동에서 발표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 회사에 들어오고나서 가장 즐거웠던 경험인 것 같다... 앞으로 이 회사에서 이런 일들이 또 있을까?  연사로서의 발표는 많이 긴장했지만, 그래도 너무나 행복했던 기억이었다.  한국의 개발자들과 디자이너들에게 미국 시장을 소개하는 일.  감정이입을 하자면 금의환향하는 기분.


머무른 곳: 덕수궁, 청계천, 교보문고, 부산, 롯데타워, 건대입구, 홍대, 청주, 오송, 수지, 분당, 수원, 판교



# 가족


30살이 돼서 그런지 생각이 많아졌던 것 같다.  엄마랑 아빠한테 각각 연락을 했는데 반 정도만 성공했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된 것도 내 스스로에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했으므로 이제 무거운 마음의 짐은 내려 놓고 엄마랑 둘이 살까 싶다.


5월에는 엄마와 함께 LA에 있는 동생을 보러갔다 왔다.  굉장히 어색하고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지만 정말 의미 있는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


머무른 곳: San Jose, Los Angeles



# 입원


실신 3번 후 Urgent Care 갔다가 바로 입원.  간이 안좋다고 했다.  지금도 안 좋아서 술도 못 마시고 건강을 관리해야한다고 한다.  출장 갔었던 시기 동안 맛있는 것 먹고 무리 안해도 몸이 굉장히 안 좋았던 기억이 나는데 그저 한국의 추위가 너무 오랜만이라 그런가보다 했었다.  아마 그 때부터 어딘가 안좋았나보다.  한 번도 제대로 가본 적이 없는 미국 병원이기에 입원이나 진료 절차도 잘 몰라서 막연히 병원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으나, 정작 목숨이 걸리게 되자 바로 입원.  친구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황달로 눈은 완전히 노래졌고, 간수치가 내려갈 때까지 1주일 동안 입원.  내 간수치는 간암환자 수준이라고 했다.  그런데 또 암은 아니라고 했다.  자기들은 잘 모르지만 아시아 권의 간 전문의들이 더 잘 본다고 한다.  그렇게 술을 마셔대니ㅋ


느낀 점은, 더 이상 몸이 건강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건장한 체격은 아니었지만 잔병치레가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를 건강하다고 생각했으나 이 번 입원을 계기로 약간의 생각할 시간을 가지면서 좀 더 스스로의 건강을 지킬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하나 얻은 것이 있다면, 타인의 고통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정말 나 밖에 몰랐으니깐.


머무른 곳: Stanford Health Care



# 이직 - 일본


출장이랑 입원 이후로 일본 이직은 안하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마 몸이 아파지고, 또 엄마랑 사이가 좋아져서 늙은 엄마를 혼자 두고 가기가 좀 힘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일뽕 맞았던 나에게 일본이라는 나라는 정말 큰 존재였기 때문에 리쿠르터 쪽에서 소개시켜 주는 잡 인터뷰를 매일 밤 스카이프로 보고 있었다.  딱히 할 일도 없었고.. 계속 떨어지고, 마음도 식어서 슬슬 포기할 까 싶었는데 덜컥 2개가 붙어버렸다.  정말 준비하고나서 일 년 만에 나온 결과였지만 현재의 상황이 선택을 어렵게 했다.  6개월 전 쯤 결과가 나왔다면 아마 바로 갔을텐데.. 그래서 우선 일본행 비행기 표를 다시 끊었다.  5달만에 다시 가는 일본.. 거의 20년을 그렇게 가고 싶어했는데 작년부터 올해까지 3번이나 가버렸다...


일본은 너무 아름다운 곳이었고 기대 이상이었다.  그리고 리쿠르터 분들은 나의 이직을 도와주는 점도 있었겠지만, 너무나 친절해서 이런 분들과 함께 일하고 싶다는 마음도 정말 컸다.  오사카도 아닌 지인 없는 도쿄에 혼자 가버렸지만, 다행히 귀한 인연들을 만나 잘 지내다 왔다.  결국 안가기로 했다.  일본이 아무리 좋아도 이 나이가 되고 나니깐 못가겠더라, 아마 이제는 재미교포가 되어버리나 보다... 한 번 더 이민하면 재일교포도 될 수 있었겠지.


내가 가지 않은 길로 인해 내 삶은 달라져버린 것 같다.

그리고 거짓말같이 더 이상 일본에 흥미가 없어진 것 같다.


좋아하는 대상을 잃어버려서 너무 속상하다.

그렇지만 일본의 おもてなし 마음은 잘 배워왔다.


머무른 곳: 東京、横浜、大阪



# 김정은, 트럼프, 문재인


비핵화 관련으로 남북 정상이 만나고, 나보다 몇살 안 많은 김정은이 국제무대에 등장해서 무언가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여러가지 정치 싸움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고, 옛날의 나는 그런 것들을 참 좋아했던 것 같다.  북한이랑 잘 지내려고 하는 이들을 빨갱이라고 한다던지.. 물론 그런 성향들이 있었겠지만, 사실 한국의 정치는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들이었다.  내가 무엇이라고 정치가 잘됐네, 잘못됐네 라고 말하고 다녔는지도 잘 모르겠다.


단지 몇 년전과는 달라진 세계 정세를 보며, 그리고 그 세계 정세와 전혀 상관없이 살고 있는 내 인생을 느끼면서 나는 정치와 관련 없는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내 일에 집중하자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 Data


유럽 연합이 이상한 법을 (취지는 물론 좋은거고.. 이상한 법도 아니지만) 만들어서 덕분에 내가 회사에서 할 일이 한동안 좀 많이 줄어들 전망이다.  미리 대비하지 못했던 것은 아쉽다.. 다만 빨리 해결을 해야겠지.  덕분에 시간이 많이 남아서 요샌 운동도 다닌다.



# 병신


이것도 30년 정도 살아서 경험하게 되는 일인가, 나한테 많은 열등감을 갖고 있는 어떤 병신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병신이 되지 않게 겸손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근황


나는 더 이상 특별하거나 튀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 같다.  무엇이 내 성격을 이렇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안정된 직장이 나에게 주는 월급일까? 확실한 것은 지금 이상태를 계속 유지하고 싶다.  나의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앞으로 몇년 후에, 이를 테면 10년 후에는 10년 전의 나처럼 방황하는 사람이 되어있을지도 모르겠다.


눈물도 많이 흐른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숨겨왔던 감정이 흘러넘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요새는 집도 사고 싶고 결혼도 하고 싶은 것 같기도 하다.


잘 살아가고 있는게 맞나?

그 예전의 고생했던 기억들, 무언가에 대한 집착과 열망 같은 강렬한 기억이나 감정들이 이제는 잘 기억나지 않아.

'일기 > 비망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결국 나는  (0) 2021.02.25
希望  (0) 2020.01.10
행복의 행방  (0) 2017.06.03
꿈, 심층심리  (0) 2017.04.01
글쓰기에 대한 심심한 이야기  (1) 2017.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