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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한국어

관점의 전환

by 스프링데일 2023. 11. 26.

선물받은 책은 지동설을 지키려는 사람들과 그걸 억제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이런 이야기들은 마치 독립군들의 이야기처럼 자신들의 신념과 자유를 지키려는 사람들과 그걸 억압하려는 일본제국과 친일파의 대립을 떠오르게 한다.

사람들이 뭔가 새로운걸 깨닫고, 깨우치려하는 것은 아마도 본능일 것이고, 그런 열망이 正道를 지향한다면 결국 누군가에는 도움이 될 수 밖에 없다.  방향은 어긋날지언정 음모론을 믿는 사람들도 결국은 그런 음모론이 자신들을 어느정도 안정시켜준다, 또는 믿음이나 희망을 증명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맹신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분명히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이 보고자하는 것만 보려고 한다.

물론 지금의 우리 인류는 천동설이 틀리고 지동설이 맞다는 것 정도는 어떤 수학적 계산을 통해 별의 움직임을 지구에 서 있는 입장에서 “관측” 하는 것까지도 필요없이 저 멀리 우주에 나가있는 인공위성들을 통해서도 직접 사진까지 찍을 수 있지만, 제대로된 망원경도 없었던 시절의 사람들이, 지구 안에서 서 있는 채로 상대성 이론같은건 생각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관측자의 위치에 따라 별의 움직임이 다르게보일 수 밖에 없는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주어진 지식과 관측자료의 한계에서 생각해보면 오히려 지구를 중심에 둔 채로 다수의 포물선을 그리며 꺾임을 반복하는 궤도를 그리는 태양과 다른 행성들의 움직임을 어떤 “설명 가능한 공식” 으로 표현해내어 어떻게든 그럴듯한 방식으로 하늘의 움직임을 설명하려했던 것을 보면, 천동설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병신같다기 보단 오히려 그 당시의 사람들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천동설의 가장 큰 업적은 아마도 - 그걸 만들거나 기여한 사람들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 지동설의 씨앗을 낳았다는 것.  천동설이 어느정도 정립된 시점에서 후대의 사람들은 그 시점의 지식의 흐름과 역시 계속되는 깨우침에 대한 열망을 가진 차 지동설의 이론을 만들어나갔다.  사실 생각해보면 지구가 움직인다, 돌고있다는 사실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으면 현대의 사람들도 몰랐을 것 같다.. 여기서 벌써 공전과 자전이라는 두개의 변수가 생기는데, 간접적인 관측 결과로 이런 두개 이상의 변수가 들어간 계산식을 만들어가며 공식을 도출해내는 노력은 분명히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닐 것이다.  이런 노력들은 사람에서 사람으로 거쳐 이단심문관의 딸인 요렌타에게로 이어진다.

나는 천동설과 지동설의 타당성을 가릴 생각은 없지만, 당연히 지동설이 맞는 것이고, 천동설은 지구 외부에서 관측할 수 없던 사람들이 우주의 움직임을 설명할 수 있기까지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십 수년전 잠시 다니던 어느 학교의 천문대에서 망원경으로 목성과 토성의 고리를 봤을 때의 놀람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때 같은 과목을 들었던 누나를 이번에 오랜만에 만났었다.)

그저..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는 것 같다.
- 보수의 가치를 지키려는 사람
- 보수의 가치를 통해 진보하려는 사람
- 보수가 싫어 그저 다른 것들을 진보라고 말하는 사람
- 보수를 진보시켜 새로운 보수가 되는 사람
- 보수가 틀린 것을 알지만 자신의 보수를 지키려는 사람
- 보수가 틀린 것을 알지만 진보를 억압하려는 사람

사람이든, 동물이든 결국 어떤 열망이나 욕망이 존재하는 이상 그게 반사회적이지 않다면 뭔가 하고싶은 것을 억지로 못하게 하면 안된다.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오는 것잉일 수도 있지만.. 나는 보통 관심이 없던 것도 누가 뭔가를 절대로 하면 안된다 그러면 그때부터 그게 뭔지 궁금하고 해보고 싶더라ㅋㅋ

프로메테우스를 보면 데이빗8은 인간 입장에서는 통제가 안되는 똘아이지만, 생각해보면 인간과 똑같거나 그 이상의 수준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있는 존재에게 억압이나 통제등을 가하면 비뚤어질 수 밖에 없다.

지금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 나오는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에서도 안드로이드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이유도 이해는 된다.  인간과 같은 수준의 능력을 줘놓고 노예를 대하듯 하니... 인간사회는 물론 좀 더 발전해나가야겠지만, 싸움같은 것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안된다.  오히려 전쟁하고 싸우고 사기치는게 얼마나 쪽팔린 것인지, 얼마나 피곤하고 도움 안되는 일인지를 가르치는게 더 현명한 일일지도 모른다.

숲의 애가에서, 사랑은 필연적으로 통제욕같은 것들이 따라온다던데 난 역시 그런게 싫은 걸까..

좋은 책 선물해줘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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