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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한국어

가지 않은 길

by 스프링데일 2021. 7. 19.

“A lot of your life is shaped by the opportunities you turn down as much as those you take up." - Bill Clinton

삶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내 맘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고, 그냥 먹고 사는 것만을 목표로 살아가야만 하는 상황이 싫었다.  어디서부터였을까? 왜 단 한가지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을까? 등의 생각이 꼬리를 물 무렵의 나는 20대 중반을 막 지나가고 있었다.  이제 드디어 빚도 없어지고 조금 먹고 살만한데도 그저 공허함의 연속.  채워지지 않는 자아 실현의 욕구.  정체를 알 수 없는 내 자신.  나는 나에게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 같다.  나의 사춘기는 미국에 오자마자 시작된 것 같았었지만, 사실 이 때부터였던 것 같다.  돈도 어느 정도 벌고 있었고, 원하는 것이 있다면 어렵지 않게 손에 넣을 수 있는 여유가 있었던 무렵.  그런데 뭘 하고 싶은 건지 정말 모르겠었다.

나는 내 자신이 누군지 알 수 없었다.  근본이 없다는 생각은 스스로를 계속 돌아보게 만들었고, 진정으로 내가 원했던 삶이 무엇인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인가, 왜 나는 한국에서 태어났는데 이 곳에서 이렇게 살고 있는가의 질문들을 계속할 무렵, 몇 가지의 기회가 생겼다.

나는 일본에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일본으로의 전직을 열심히 준비했었다.  사실 답은 알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정말 필사적으로 준비했었다.  미국이 싫었고, 한국에는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아서였을까? 나와 같은 정체성 고민을 다른 각도에서 하고 있는 재일교포들을 만나고 싶었던 것일까? 잘 모르겠다.  일본인들은 친절했다.  재일교포들도 친절했고 다들 친절했으며 나를 환영해줬다.  그렇지만 막상 선택의 순간에 내가 내린 결정은 결국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일본은 아름다웠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결정, 가지 않겠다는 결정은 온전히 나의 의지로 내린 결정이었다.  그 결과 미국에서의 방황은 이후에도 수 년간 지속되었으며 정신 차릴 무렵 이마에 주름살이 조금씩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인간 중엔 진리를 가르쳐 주면 자기 길을 개척하는 종류가 있고, 가르쳐 주면 줄수록 매달리는 종류가 있어.
그들은 해결책을 원하는 게 아니라 능력자를 믿고 따르면서 소속감과 안정감을 느끼고 싶은 것 같아.

- 리사

유년기의 끝이 다가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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