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처음으로 "노르웨이의 숲"을 완독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미 상당히 알려졌고, 다른 나라들에서도 통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읽는걸 멀리했었다. 누구나에게 읽힐 수 있는 책이라면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여유도 있었던 것 같고, 특별히 일본적인 문학이 아닐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 뭐, 재밌었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허망함과 탐색에 가까운 탐미주의. 하지만, 책 전체에서 묘사되는 일본의 풍경들은 그리웠다.
"그게. 다시 말해 전체의 90퍼센트는 말도 안 되지만, 나머지 10퍼센트의 중요한 포인트를 나름대로 해석해서 귀를 기울이게 만들어."
작중에 나오는 피아노를 배우러 온 한 어린 여학생의 이야기. 피아노로 잘 될 가능성이 있는 것 같았고, 더 발전해서 그 쪽으로 잘 될 가능성도 있었다고 어른들은 생각했지만, 사실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고 허언증이 가득한 아이였다. 노력의 재능은 주지 않았지만 소질이 보였기에 어른들을 착각하게 만들었던 한 아이.
"언제나 자신을 바꿔 보려고 나아져 보려고 하다가 잘 안되면 안절부절못하거나 슬퍼하거나 했어. 그렇게 훌륭하고 아름다운 자질이 있었으면서도 마지막까지 스스로 자신감을 갖지 못한 채, 저것도 해야 하고 이것도 바꾸어야 하고, 그런 생각만 했던거야."
이 이야기의 대상자는 결국 자살로 자신의 내적갈등을 봉합했다. 그건 로맨티시즘의 끝이었을까, 니힐리즘의 끝이었을까.
"그때 생각했어. 이 자식들 모두 엉터리라고. 적당히 그럴듯한 말이나 늘어놓고 의기양양해하면서 신입생 여자애 눈길을 끌어서는 스커트 안에 손이나 집어넣을 생각밖에 안 해, 그 사람들. 그러다 4학년이 되면 머리를 짧게 깎고 미쓰비시 상사니 TBS니 IBM이니 후지은행이니 하는 좋은 기업에 들어가서는 마르크스 같은 거 읽어 보지도 않은 귀여운 마누라를 얻어서 아이한테 폼 나는 이름을 지어 주는 거야. 산학 협동 분쇄는 무슨. 너무 웃겨서 눈물이 날 지경이야. 다른 신입생들은 또 어떻고.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다 안다는 표정으로 실실 웃어."
대학교에 다닐 때 늘 느끼던 것. 언제나 가장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말을 했고, 언제나 그런 사람들 주위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달라진 것은 없었다. 저런걸 멋있다고 생각하는 놈들이나, 그렇다고 그걸 따라가는 놈들이나. 정말 그 중에 몇명이나 정의라는게 있었을까. 그냥 그런게 멋있어서, 어려워보이는 학자나 작가의 이름을 몇 외우고 있으면 똑똑해보일 것이라는 저급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 나는 진보적인 이야기를 하는 돈 걱정 없는 사람들과는 상성이 맞지 않았던 것 같다.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남한테 들키는게 두려워서 벌벌 떨어. 그러니까 다른 사람하고 똑같은 책을 읽고 모두 똑같은 말을 늘어 놓고 존 콜트레인을 듣고 파솔리니 영화를 보고 감동하는 거야."
확실히 세상은 그런 사람들 투성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 빙긋 웃어주면 자신들의 명예가 침해당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말들을 들으면 단지 어색하고 달리 할 말이 없어서 그런 애매한 표정을 지었던 것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그 상황을 즐기고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미도리 아버지는 텔레비전으로 스페인어를 배우자는 생각은 아예 해 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노력과 노동의 차이가 어디에 있는지도 생각해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그런 걸 생각하기에는 너무 바빴다. 일도 바빴고 집 나간 딸을 데리러 후쿠시마까지 가야할 때도 있었다."
속상하다. 세상에는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아직도 더 많은데. 왜 그런 사람들을 계속 사지로 내모는 사람들도 있는 걸까.
"자신을 동정하지 마. 자신을 동정하는 건 저속한 인간이나 하는 짓이야."
이걸 명대사로 꼽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이건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말이다. 한편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이걸 명대사로 생각한다면, 아마 스스로를 위로하고 동정하기 위해서일까? 자신을 동정하는 것은 그렇게 나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동정의 어감은 조금 부정적이지만, 그렇다면 자신을 위로해주고 동정해줄 사람은 자기 자신을 제외하면 누가 있다는 말일까?
"4월이 끝나고 5월이 왔지만, 5월은 4월보다 더 혹독했다. 5월에 이르러 봄이 한층 깊어지면서 내 마음이 떨리고 흔들린다는 것을 느꼈다. 떨림은 대체로 저녁 어스름에 찾아왔다. 목련꽃 향기가 살포시 풍기는 옅은 어둠 속에서 내 마음은 영문도 모르게 부풀어 올라 떨리고 흔들리고, 아픔이 궤뚫고 지나갔다. 그때마다 나는 가만히 눈을 감고 이를 꽉 깨물었다. 그리고 그것이 지나가 버리기를 기다렸다. 천천히 오랜 시간을 들여 그것을 흘려보내면 둔중한 통증이 남았다."
단지 이런 것들이 앞으로도 살면서 반복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이렇게 너와 헤어지고 싶지 않아. 넌 정말로 얼마 안 되는 내 친구 가운데 한 사람이고 너를 못 만난다는 게 너무 힘들어."
내게 소중한, 소중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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