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기/비망록

20210502

by 스프링데일 2021. 5. 3.

해가 떴다.
지붕 근처 둥지를 튼 새들의 날갯짓 소리에 눈을 떴다. 익숙한 하얀색 천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지난 밤을 잘 보낸걸까? 열병같은 같은 감정. 며칠 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이 페이스라면 곧 괜찮아질 것이다. 창문 넘어로 새어들어온 햇빛이 방을 따뜻하게 해주었고, 오랜만에 기분 좋게 아침을 시작했다. 찻잔에 어제 마트에서 사온 믹스커피 2봉지를 넣고 물이 끓기를 기다렸다.

벌써 5월이 시작됐다. 어디를 향해 가는 걸까?

올해의 2/3의 시작 지점이 주말이라는 것이 기뻤다. 아직은 조금 여유를 느낄 수 있었고, 이번 주 미팅 스케줄은 지난 주의 그것과 비교했을 때 다소 적은 것 같다. 물론 빈 슬롯들이 곧 빼곡히 채워지긴 하겠지만, 약간의 긴장을 풀고 한 주를 마주할 생각을 하니 조금은 마음에 여유가 생긴 것 같아 기쁘다. 오랫동안 손대지 않았던 방을 청소하기로 했다. 옷장 위에는 12개의 정육면체 상자들이 있는데 캘린더와는 반대로 꽉꽉 채워져있다. 처음 이 방을 쓰게 되면서 정리하고 나서는 한번도 열어보지 않았고, 그래서 그 녀석들을 먼저 정리하기로 했다.
상자들에는 꽤 많은 과거들이 담겨있었다. 예전에 입던 옷, 예전의 갔던 곳들의 티켓이나 사진, 예전의 친구들에게 받은 편지, 예전에 산 물건의 포장 등 존재 만으로 과거를 기억하게 해주지 않을까 싶어 모아두었던 것들. 이제와서 돌이켜보면 의미가 있는 것도 있고, 의미가 없는 것도 있으며, 근본을 기억할 수 없는 녀석들도 있었다.

편지 묶음을 꺼내보았다. 과거의 인연들로부터 받은 내용들. 그 당시의 상황이나 마음같은 것들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조금은 부끄럽거나 민망한 생각이 들어 모든 내용을 읽지는 않았지만, 그립고 고마웠다. 나의 입학과 졸업을 축하해 준 편지들, 생일을 축하해준 편지들, 나를 응원해준 편지, 나를 생각해준 편지들 등. 내가 정녕 혼자였던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지금의 나는 왜 혼자가 되었을까? 내 옆에 있어준 수 많은 소중한 사람들이 있었다. 나도 그들에게 그런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었을까?

보답할 수 없었던 마음 때문에 미안한 감정
자격지심을 갖고 도망가기만했던 비겁함

그래도 행복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지만, 상냥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나에게도 상냥했지만, 내 주변에 있던 그들은 본질적으로 상냥한 사람들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나쁜 사람은 많이 보지는 못했던 것 같은데, 왜 이제는 편지를 주고 받던 그 시절처럼 가깝지 못할까? 아마도 각자가 추구하는 가치가 달라졌기 때문에, 그리고 다른 길을 걸어가며 그 당시엔 현재였던 것이 각자의 과거에서 어느 한 지점으로 남았기 때문일까? 나는 그것들을 추억이라고 부르고 싶다. 일시적이었고, 언젠가는 끝날 것임을 알았지만, 그래도 함께있는 동안에는 활기가 넘쳤던 사람과 사람 사이의 끈. 絆

나이를 먹어가며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도, 그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이전보다는 조금 더 어려워진 감이 있다. 그래도 나는 내 방식대로 계속 사람들을 이해하고, 사랑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예전의 공부노트들도 꺼내보았다. 일본어 원문을 문장 단위로 번역했던 노트, calculus 시간에 매일 빠짐없이 적었던 노트, poli sci 클래스에서 숙제를 내줘 매일 30페이지 정도를 읽고 적어야했던 노트 등. 예전의 나는 손글씨에 자신있었던 것 같다. 대학교에선 노트북을 갖고 다니긴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필기를 좋아해서 늘 파일럿의 하늘색 샤프펜슬과 공책들을 들고 다녔었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의 나는 공부를 하려고는 했었나보다. 어... 시험이 어려웠던 걸까? 그래도 뭔가 배운 것들이 많이 기억나기는 한다.

이 녀석들을 기념으로 책꽂이에 꽂아넣었다. 앞으로 집중이 안될 때면, 집중을 할 수 있었던 그 때를 떠올려보자.

두 번째 차를 살 때 융자를 하던 준비 서류도 있었다. 처음으로 샀던 차를 몇 달만에 폐차하는 바람에, 급하게 구해야했던 mazda6. 학생이라 돈도 없었고, 딜러에서 융자도 잘 안해줬는데 리서치를 하고 또 해서 협동조합 같은데를 하나 찾았다. 이자율이 6%가 넘어갔지만 어쩔 수가 없었고, 알바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욕심이었던 걸까? 그 차는 물론 비싼 차는 아니었지만... 나는 좀 더 싼 차를 살 수도 있었을 것 같기도 하다. 음, 쓰면서 생각해보면 나는 차는 조금 새 것, 안전한 것을 갖고 싶었던 것 같다. 옛날 구형 미니밴을 타고다닐 때 그 차가 심심하면 망가져서 심정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시동이 안걸리는거나 타이어가 퍼지는건 예사였고, 특히 계기판의 불이 안들어올 때는 정말 무서웠다. 운전해서 어딜 가서 일을 하던지, 목적을 이루어야하는데 차 때문에 나가는 돈과 시간. 나는 필요한 걸 살 때는 아끼지 않거나 형편이 안되면 아예 사지 않겠다는 마음이 생겼던 것 같다.

비슷한 것으로, 나는 큰 침대가 갖고 싶었다. 4학년 때 쯤부터 침대를 썼는데, 중학교에 들어가며 키가 180이 되었지만 내 침대는 커지지 않았다. 늘 손과 발이 삐져나왔고, 편하게 잠을 잘 수 없어 카페트 바닥에서 자기도 했다. 그 뿐이었을까. 늘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 오가는 고성, 그리고 미쳐가는 스스로를 보며 눈물을 훔치거나 집밖으로 도망가곤 했었다. 대학교에 와서 자취를 하며 $50을 주고 큰 사이즈의 중고 침대를 샀다. 누군가가 오랫동안 쓰던 것이었지만 예전의 그 작은 침대보다는 나에게 안정감을 주었던 기억이 난다.

융자 서류를 살펴보며 융자의 절차나 필요한 서류 등을 몰라서 은행들과 딜러 이곳 저곳에 계속 연락했던 기억이 난다. 어디서 도움을 받아야할 지도 몰라서 막막했지만, 차가 너무나 필요했기 때문에 그것들을 다 클리어했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복잡한건 아닐지도 모르는데, 그 때 그런 서류의 처리를 했던 내가 기특했다. 지금의 나는 401k 관련 서류 하나 뽑는 것도 힘든데 예전의 나는 그렇지는 않았나보다.

어쩌면 지금 나는 내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불안함이 가득했던 그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버릴 까봐 쉽게 리스크를 지지 못하는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저녁에는 「나의 아저씨」 라는 드라마를 조금 보았다. 얼마전 유튜브에서 요약을 잠깐 봤던 기억이 나는데, 아이유나 이선균이나, 이선균의 형제들이나 모두 공감갈만한 부분들이 있었다. 노래 가사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아 남기기로 한다.

"옛날 일, 아무 것도 아니야. 네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니야."

고단한 하루 끝에 떨구는 눈물
난 어디를 향해 가는 걸까

아플 만큼 아팠다 생각했는데
아직도 한참 남은 건가 봐

이 넓은 세상에 혼자인 것처럼
아무도 내 맘을 보려 하지 않고 아무도

눈을 감아 보면 내게 보이는 내 모습
지치지 말고 잠시 멈추라고
갤 것 같지 않던 짙은 나의 어둠은
나를 버리면 모두 갤 거라고 oh

웃는 사람들 틈에 이방인처럼
혼자만 모든 걸 잃은 표정
정신없이 한참을 뛰었던 걸까
이제는 너무 멀어진 꿈들

이 오랜 슬픔이 그치기는 할까
언제가 한 번쯤 따스한 햇살이 내릴까

나는 내가 되고 별은 영원히 빛나고
잠들지 않는 꿈을 꾸고 있어
바보 같은 나는 내가 될 수 없단 걸
눈을 뜨고야 그걸 알게 됐죠 oh, oh

나는 내가 되고 별은 영원히 빛나고
잠들지 않는 꿈을 꾸고 있어
바보 같은 나는 내가 될 수 없단 걸

눈을 뜨고야 그걸 알게 됐죠
어떤 날 어떤 시간 어떤 곳에서
나의 작은 세상은 웃어줄까

'일기 > 비망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10506  (0) 2021.05.07
20210504  (0) 2021.05.05
20210421  (0) 2021.04.22
20210419  (2) 2021.04.20
결국 나는  (0) 2021.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