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용서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을 말하지 않는 것이 나쁜 것일까? 타인에게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나 괴로운 일, 슬픈 일, 실패했던 일, 또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 등, 우리가 말하고 싶지 않은 것들은 이 세상에 수없이 존재한다. 이런 것들을 타인에게 털어놓는다는 것은 자신의 가장 약한 부분을 보여준다는 것. 자신의 치부를 드러냄으로써 타인으로 하여금 나를 약하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때때로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자신이 말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말하기도 하는데, 이는 그 사람에게 자신의 약점을 드러낸다는 것, 타인이 모르는 자신만의 비밀을 숨김없이 털어놓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 타인과 자신의 특별성을 강조.
하지만, 분명히 숨김없이 털어놓지 않아도 되는 일과, 숨김없이 털어놓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은 서로 다른 것이다. 물론, 그 약점이 누군가가 저지른 죄일 경우에는, 용서를 구하기 위해 고백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용서를 받는다는 것은, 자신이 저지른 죄를 참회하고 타인에게 인정받는다는 전제가 있지만, 그 반대로도 누군가가 저지른 죄는, 그 죄를 용서할 다른 누군가의 존재라는 전제가 있다. 하지만, 타인에게 고백해서 용서 받은 죄는 더 이상 고백할 필요가 없을까?
죄는 죄이다. 없앨 수 없는 것이다. 평생 등에 짊어질 수 밖에 없으며, 그것이야말로 바로 죄인의 숙명. 따라서, 그 것이 싫다면, 죄를 범하지 않으면 된다. 그렇다면, 이미 죄를 지은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그 사람은 아마도 불행할지도 모른다. 정말로 자신을 불행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사람은, 아마도 필사적일 것이다. 스스로가 처한 상황을 타개하기위해 엄청난 노력을 할 것이고, 그 것이 안된다면 모두에게 도움을 구할 것이다. 그 모두라는 것은 누구를 가리키는 걸까? 나의 경우에는 애인와 친구들이라는 답을 제시하고 싶다. 소중한 사람들은 아마도 누군가가 죄를 지었을 때, 그 사람이 정말로 필사적일 때 무언가 발벗고 나서서 도와주지 않을까?
무조건 같은 편이 되어주는 사람들은 존재할 수가 없다. 만약 존재한다 해도, 그 사람은 자신의 의지라는 것이 없는 사람. 동료라는 것은 즐겁고, 함께 모이는 것으로 아무래도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친구. 하지만 그 동료들이 자신이 괴로울 때 한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자신의 약점을 소중한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는 것을 피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에는 아마도, 동료들에게 "소중한 사람" 들로 인식받는 그 자신이 문제가 있는 것이 확실하다. 타인의 문제가 아닌 자신의 문제. 때때로 자신에게 손을 내어주는 친구들의 애정을 동정따위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래서 현실에서 도망치기도 했다. 나를 향해 내어준 그 손들을 동정이란 말로 애써 치부한 채, 그 것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마음을 닫는다는 것은 결국 관계의 단절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 당시의 나는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것일까? 타인에게 상처받고 싶지 않았다. 타인이 내게 주는 거짓 행복만을 바랬고, 누구나 나에게 상냥하기를, 친절하기를 바래왔던 나날들. 그 속에 남은 것은 거짓된 자신과 이런 나를 진정한 의미로 동정하게된 타인들 뿐이었다.
적어도 블로그에 글을 쓰고 방문자들과 소통할 때 정도는, 즐겁게 보내는 시름이나 고민을 잊기에 좋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모두와 즐겁게 보낼 수 있고, 내 생각을 얼마든지 피력할 수 있는 것은 즐거웠으니깐. 그래도 그 것만으로는 나의 외로움을 해결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찾아왔고, 사랑하는 그녀를 찾았다.
사랑하기 위한 삶.
내가 타인의 입장을 이해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타인이 나의 입장을 이해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사람과 사람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지금의 나는 스스로에게 몇 점 정도의 점수를 줄 수 있을까?
나는 얼마 만큼의 죄를 저질렀고, 또 얼마 만큼의 용서를 받아왔을까?
죄와 용서의 싸이클에서 내가 얻은 것은 너무나 많다. 나는 나를 믿어주는 소중한 사람들을 너무도 많이 만났다. 그래서일까, 내가 저지르는 죄는 내 삶에 있어서 반드시 뒤따르는 것이며, 죄라는 것이 일종의 규제 같은 것. 그리고 그 규제는 나로 하여금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소중한 사람들이 나와 함께하는 평온하고 즐거운, 행복한 나날들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 과정은, 어쩌면 평탄하지만은 않겠지만, 나는 모두와 함께 그 길을 답파해 보일 것이다.
죄라는 것은 결국 나의 가능성의 일부이며, 발전의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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