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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연서

비구름을 그리워하며

by 스프링데일 2010. 8. 5.


일기예보는 이번 한 주간 비가 전혀 내리지 않을 것을 예고했어.

맑은 날이 싫다고 얘기하는게 아니야.
하지만 연일 변함없이 맑음 뿐이 계속되는 나날이라면, 누구라도 비구름이 그리워지게 될 것이 틀림없어.
일주일, 한달, 일년.  언제까지나 단조로운 맑은 하늘이 계속된다면, 누구라도 비구름이 그리워지게 될 것이 틀림없어.

날씨 전문가가 셀 수 없이 많은 과거의 데이터를 몇개나 나열해서, 그것들을 충분히 음미한 후에 발표한 내용이니까.
그 예보는 아마도 간단히는 빗나가지 않을거야.

그런건 나도 잘 알고 있어.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가끔 하루 정도는 그 일기예보가 빗나가주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며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는 거야.

이런 내가 심술궂은 걸까?

기다려도, 기다려도, 비구름이 오지 않는 맑은 하늘의 지루함에 때로는 질식해 버릴 것 같아.
만약, 그런 이유로 질식해서 죽을 수 있다면, 분명 지구상의 인간은 이렇게나 많지 않았겠지.

그건 즉, 이런 일로 질식할 수 있는 것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얘기.

그렇기 때문에,
일기예보조차 예견하지 못한 보통날의 황혼에 갑작스럽게 내리는 소나기에 나는 때론 기뻐하곤 해.

이런 식으로 설명하면, 너에게도 내 기분이 조금은 전해질 수 있을까?

예를 들면, 오늘 밤의 저녁이 카레라이스로 결정되어 있다고 할게.
하지만 정작 식탁에 불려가서 앉았더니, 실은 가지와 피망의 야채볶음이 저녁으로 나와있는 거야.

이건, 아마도 엄마의 그때그때 기분 같은 것이겠지만,
나에겐 그 그때그때 기분 같은 것이 정말로 기뻐.  솔직히 가지와 피망은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기뻐.

오늘 밤은 카레라이스로 되어있던, 예정의 조화가 무너지는게 즐거운 거야.
오늘 밤이라는 날이 만약 100번 반복되어진다면, 100번을 먹지 않으면 안 되었을 카레라이스.

그것이, 오늘 밤은 가지와 피망의 야채볶음으로 바뀐거야.  이런 우연을 즐거워하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

나는 예정된 조화가 싫어.
이미 정해져있는 예정이 정말 싫어.
나는 지루함을 사랑하지 않아.

어떤 사소한 일이라도, 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무언가가 일어나는 것에 기대를 하고 마는거야.

오늘부터 일주일 간, 계속해서 맑은 날일 거라는 것이 결정되어 있어.
일기예보가 그렇다고 결정했고, 날씨의 신께서도 분명 그럴 생각이야.

하지만, 무언가의 변덕으로, 그 사이에 하루 정도는 비구름이 오지 않는다고는 누구도 장담할 수는 없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요소가, 항상 이세계에는 남아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반복되는 예정된 조화에 질식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

내일도 분명히 쾌청하고 꽤 맑은 날이 되겠지.
하지만, 가끔은 그런 예정된 조화가, 1퍼센트 대의 미세한 확율로 가끔은 변해버리고 말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

그 1퍼센트의 무언가를 기대하며, 맑은 날의 처마 끝에 거꾸로 테루테루보즈를 걸어놓는 거야.
나는 결국, 삼라만상에 그런 의외성을 기대하며 살아가고 있어.

어째서 기대하고 있는걸까 하고 문득 생각했어.

어째서 나는 비구름을 기다리는 걸까?
그건 아마도 간단할걸.  그동안 맑은 하늘만을 포식하고 있었으니깐.

그럼 나는 어째서 비구름을 기다리고 있는 걸까?
그것도 간단해, 맑다고 결정된 내일이 지루하니까, 나는 질식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어째서 비구름을 기다리고 있는 걸까?
결국, 내일이 맑던지, 비가 오던지, 사실은 어떻게 되도 상관없는 것일지도 몰라.

결국은, 그런 비구름보다도, 변화를 추구하는 약간의 가능성이 황량한 내 마음속의 지루함을 잠시나마 촉촉히 적셔줄 뿐이야.

그러니까, 나는 줄거리가 정해진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는 것보다도, 하늘을 올려다보는 쪽이 좋아.
그러니까, 나는 애매한 것보다도, 희망을 가지고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는 쪽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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