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14 - 또다시 페이지를 넘기며

#사고
평생의 친구로 함께할 거라고 믿었던 BMW가 결국 10만 마일을 못 채웠다. 기본적으로 다른 남자들에 비해서 나는 차에는 특별히 관심은 없었지만 내 차에는 나름 커다란 애정이 있었다. 이 차를 사기 전에 처음 봤을 때부터 정말 이쁘다고 생각했고, 이것만 있으면 더 이상 차는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결국은 이런 결과가 나왔다 ㅠㅠ
2년 전쯤에도 한번 큰 사고가 있었지만 그 때는 정지된 차량과 충돌한거고 나도 천천히 움직이고 있어서 수리로 떼울 수 있었다. 돈 걱정은 크게 안했지만 그냥 보험비가 오르는 것 자체는 조금 짜증났던 것 같고, 스스로 운전을 조심해서 하자고 마음을 다잡았지만 결국 2년 만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 너무 속상하다. 나름 융자도 다 갚았고, 차에 별도로 쓴 돈은 많이 없지만 안드로이드오토/카플레이만 따로 돈 주고 달았었다. 얼마전엔 틴트도 했고, 타이어도 바꿀 때가 돼서.. 사고나기 3일 전에 바꿨는데 결국은 이렇다.
사고 나기 직전 모든게 주마등처럼 스쳐가고 있었다. 브레이크 등이 들어와있지 않은 앞차와 거리가 왠지 이상하게 가까워지는걸 느끼자마자 브레이크를 완전히 밟았지만 그냥 모든게 천천히 흘러가며 "아 이건 안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별로 아찔하지는 않았고, "이렇게 끝나는건가? ㅎㅎ" 정도의 감정만이 들었던 것 같다. 뭔가 더 피할 방법이 없고, 어쩔 수 없어서 체념하는 느낌. 그렇게 사고나는 순간을 예상하고, 추돌까지 했는데, 몸은 생각보다 멀쩡했다.
내 차가 마지막으로 나를 지켜준 것 같아서 차에게 미안했고, 충돌 시점에서 느꼈던 체념의 감정이 스스로를 이상하게 만들었다. 예전의 나라면 이것도 힘든 일이어서, 왜 세상은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할까? 등의 생각을 했을 것 같은데.. 이번에는 정말 "씁.. 어쩔 수 없지" 정도의 감정? 나는 내가 죽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내 예상보다도 초연한 채 그냥 경찰과 농담을 하고, 다른 차 사고자들과도 말을 나누고.. 보험회사 직원과도 대화를 하고, 토잉 형과도 농담을 따먹고. 모든 것은 덤덤하게, 그리고 약간의 가벼움까지 섞어가며 차를 견인하고, 렌트카를 픽업하고, 인앤아웃에 갔다가 늦게나마 출근도 했다. 그냥 내 스스로가 신기할 정도로 초연해져서, 아.. 이게 죽음을 한번 거쳐가면 사람들이 이런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식을 알게된 고마운 사람들이 안부를 물어봐줬다. 그렇지만 나는 사고에 대한 기억들이 온전함에도 그저 회사 얘기를 하고 다른 얘기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차를 견인해놓고 어차피 폐차를 해야돼서 물건 챙길걸 다 챙기라고 했다.
"성스러운 방어막 거울의 힘" 카드가 있었다.
성스럽게 살아남은 것 같다.
#스탠포드
나는 30살 쯤 이곳 병원에서 일주일 정도 입원했던 적이 있다. 그 당시 몸이 그냥 갑자기 안좋아져서 Urgent Care에 갔다가 피검사를 하고 집에 가자마자 병원에서 다시 전화를 받고 간수치가 이상하다고, 스탠포드의 ER로 가라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대충 주차장에 차 주차하고 터덜터덜 걸어갔는데 (몸이 정말 안좋긴 했다) 그날로 입원해버리고, 나는 아무것도 없는 채로 뭔가 호텔에 감금된 채 일주일일 지냈었다.
그리고 그 때도 삶에 대해 이것 저것 생각했었다. 만 30살이 되었었고, 가려던 일본을 포기했었고, 정신적으로 좀 몰려서 유흥만 즐기던 시절. 그치만 지금보다는 확실히 생각이나 행동들이 어렸던 것 같기는 하다. 뭔가 겸손하자고 마음먹게 된 시작이었겠지. 그리고나서 건강은 회복됐었고, 일본은.. 합격 통지가 갑자기 날아와서 갑자기 한 번 더 다녀오는 일이 있었다.
일주일 후 간 수치는 정상으로 돌아왔고, 급성 간염? 같은 것일 뿐 암이 아니라는.. "너 이제 가도 돼" 라고 해서 들어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대충 주섬주섬 옷 챙겨입고 차키들고 주차장에 가서 차를 픽업해서 집에 돌아왔었다.
이후에 병원이 어딘지 생각이 안났는데, 이번에 다시 간 곳이 그곳이었다.
생각보다 외상이나 내상은 없었고, 응급실 침대에 누워서 뭔가 정교하게 다리만 엑스레이 사진을 한 번 찍어보고는 집에 돌아왔다.
#커리어
난 정말 할 만큼 다 한 것 같다. 더 이상 다른 할 말은 없다.
분명히 난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했고, 나만의 성과를 냈다.
정신적으로 몰려있는 내 심정을 먼저 이해해주고 나에게 알게 모르게 도움을 준 고마운 분들을 잊지 않을 것.
#환단고기
스레드에는 좀 쓰레기같은 글들이 올라와서, 자꾸 악플러가 되고 싶어진다. 그렇지만 확실하지도 않은 정보를 마치 전문가인양 혹세무민하는게 맞는걸까? 보통 프로필들을 보면 공부를 열심히 안했거나 못생긴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이해는 가지만.. 요즘 뜨는 환단고기 얘기는 정말, 20년 전의 내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고등학생이었고 미국에와서 적응 못하던 나는, 낮아진 자존심을 어떻게든 지키고자 국뽕에 빠지곤 했는데, 그 중 하나가 환단고기였다. 그 때는 인터넷도 아직 초창기고, 정보도 제한적이고, 무엇보다 내 스스로도 어렸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정보가 충분히 퍼져있고, 그게 개소리인걸 충분히 다들 증명을 했는데 왜 지금의 나보다도 나이 많은 사람들이 저런거에 목숨을 걸까?
나도 누군가가 보면 한심하려나?
답답하다 정말 ㅎㅎ
이제 2025년도 곧 끝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