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기/비망록

행복의 행방

by 스프링데일 2017. 6. 3.

목숨만 부지하고 살아가는 건 짐승도 할 수 있어.

사람이면 사람답게 살아야지.

난, 네가 계속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지를 물은 거야.


- 이갑연, 가담항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답게 산다는 것의 정의는 분명 사람이 내리는 것일테니, 결국 스스로 정의를 내리고 그 정의에 부합하기 위해 스스로를 변화시켜나가는 것.  어떻게 보아도 자기만족을 위해 자기완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닐까.  사람답게 살아야한다는 것이 무엇이길래, 우리 인간들은 짐승들로부터 스스로를 분리하고 차별하려는 것일까.

그렇다면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고 있다고 말해줄 수 있는 존재는 무엇일까.  "잘 하고 있어," "잘했어" 라는 말들은 응원의 의미일까, 아니면 평가의 의미일까.  응원가 평가가 모두 내포된 말들일지도 모르지만, 역시 그런 말을 해줄 수 있는 존재와, 또 그런 말을 듣고 스스로을 되돌아볼 수 있는 존재 역시 사람이다.  결국 사람답게 산다는 것의 정의 및 평가는 모두 사람이라는 것.  그렇다면 사람답게 산다는 마음을 가지려면 최소한 혼자서 정의와 평가를 할 수 없으니, 곧 혼자서는 모든 것을 짊어질 수는 없다는 말인 것 같기도 하다.

타인을 통해 스스로의 존재감을 느끼는 것과는 별개로 늘 혼자인 것 같다.  좋아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이 생겨도 결국은 혼자였던 삶.  그리고 누구나 그런 마음을 가진 채, "사람을 그래도 서로를 완벽히 이해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는 희망을 가지고 타인과의 접촉을 시도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내 자신도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아마도 그렇게 할 것이니깐.  외로움을 가진 채, 그 외로움의 해소를 위한 타인과의 접촉들의 끝에 마주하게되는 것은 결국 일시적인 행복과 끝 없는 절망.

사라지지 않는 발자국을 남기는 것처럼 시간과 공간은 어긋나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느낌.
왜 나는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왜 행복은 일시적인 것일까?

누구든지 행복하고 싶어하지만, 정작 행복을 마주했을 때 그 행복을 영위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다.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행복은 다른 누군가의 불행을 야기하고, 세상에는 행복한 사람들 만큼 불행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행복은, 이를테면 끝나기보다는 서서히 변해가는 편이 좋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치 사라지지 않는 발자국이 찍힌 땅 위의 모양대로 꽃들이 피어나고, 그 꽃들이 새로운 모습을 형성하고, 결국 그 발자국이 슬픔의 발자국이었더라도 변화되어 미화된 불행의 기억은 행복의 기억으로 남는 것일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도, 추억은 스스로의 곁에 늘 존재한다는 것.  추억이 이어져 가면 서로를 갈라놓은 상처는 아물 수 있을 것이다.  행복했던 얼굴을 억지로 가리는 아쉬움의 비가 계속 내리니, 지금은 비록 일상으로 돌아오더라도, 그리고 그 것들이 일시적인 행복의 기억이더라도, 그리고 인생이 그런 일시적으로 끝나버린 행복의 기억들의 집합체더라도, 먼 훗날 돌아보면 발자국 모양대로 피어난 꽃들을 보며 행복했었던 순간들은 하나의 진실로 존재하기를 바란다.  소중한 것을 하나만이라도 지킬 수 있는 힘이 있었으면 좋겠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많은 고통들이 수반되고, 그리고 그 고통을 극복하며 강해지는 스스로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같은 무게의 고통도 사람에 따라 견뎌낼 수 있는 정도가 다르고, 어떤 고통은 혼자서는 절대 극복하지 못할텐데.  스스로가 사람답게 살고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런 스스로를 구원해줄 수 있는 것은 결국 타인의 존재인 것일까.  그런 타인이 존재한다면 나는 그 타인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고통을 극복하려 할 때, 그 타인의 옆에 있어줄 수 있을 것인가.

아직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지금, 살아간다는 것, 스스로를 가치있게 여기는 방법을 찾기 위해 조금 더 노력해야겠다.  그리고 나를 위해 있어주는 타인에게 나도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도록 노력해야겠다, 서로의 약한 순간을 위해 손을 잡아줄 수 있다면, 그 것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의 정의의 한 방법이 될 수는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끝은 언제나 잔혹한 거야.

마음 속 벚꽃잎은 언제나 춤추고 있다.
그 벚꽃잎에 행복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기를.


우린 오랜 시간 서로에게 둘 뿐이었지.

그 동안 나의 세상이 훌륭했다면 그건 네가 훌륭했기 때문이야.

너는 나의 세상이고, 나는 너의 세상이니까.

우린 세상의 일원이자 그 자체야.


하지만 같은 고통도 사람에 따라 견뎌낼 수 있는 정도가 다르고,

어떤 고통은 개인이 도저히 극복해낼 수 없어.


그 때 우리가 서로의 약한 순간을 위해 손을 잡아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누구나, 언젠가 약할 수 밖에 없는데도, 평생 약해지는 걸 두려워하며 살아야만 해.


- 강명영, 가담항설


'일기 > 비망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希望  (0) 2020.01.10
2018년 상반기  (0) 2018.06.20
꿈, 심층심리  (0) 2017.04.01
글쓰기에 대한 심심한 이야기  (1) 2017.03.05
작은 수레  (0) 2017.03.02